‘연구실 애환’ 만화로 그리는 신인철·정민석 교수
생명과학·해부학교실 등 실험실 일상 풍경 연재
연구자 고단함 재치로 날려 젊은 과학도에 인기
생명과학·해부학교실 등 실험실 일상 풍경 연재
연구자 고단함 재치로 날려 젊은 과학도에 인기
“교수님!”
“왜? 너도 실험 ‘꽝’ 났냐?”
“6개월에 걸쳐 만든 실험용 쥐가 꼬리를 끊고 도망쳤어요.”
“…괜찮다. 나는 예전에 2년 동안 실험한 쥐 스무 마리를 깜박 잊고 차에 두고 내려 한여름 더위에 모두 몰살시켰단다.”
“우하하하하핫. 너무 웃기다. 2년 동안 키우고 결과도 못 보다니.”
실험실에 한바탕 웃음이 인다. 인기 개그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과 과장된 웃음에는 생물실험실 일상의 고단함과 긴장을 한 방에 날리는 만화의 풍자가 있다.
‘백과사전의 과학’을 소재로 한 학습만화들은 넘쳐나지만, 이처럼 연구현장의 진솔한 모습을 드러내는 만화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 ‘그들의 문화’로 비치던 연구실의 에피소드를 만화로 엮어 전하는 신인철 한양대 교수(생명과학)와 정민석 아주대 교수(해부학교실)의 만화가 도드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교수의 만화를 연재중인 한민족과학자네트워크(kosen21.org)의 웹진 ‘코센’ 기획자 윤정선씨는 “코센의 주된 구독자들은 과학 연구자들인데 이곳에서도 만화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실험실의 애환 ‘포닭 블루스’
“제 만화에 재미가 있다면 아마도 실험실에도 ‘애환’이 있고 ‘생활’이 있다는 점을 보여줘 연구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때문은 아닐까요. ‘별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비치는 과학자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는 것이기도 하고요.”
5년째 속칭 ‘포닥’으로 불리는 ‘박사후연구원’과 학생들이 겪는 고달픈 실험실 생활을 만화에 담고 있는 신인철 교수는 정작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벗어나 지금은 대학교수다.
그는 실험실 생활을 ‘블루스’라는 자조적인 색깔로 그리는 데 대해 “실험실에서 대단한 일을 이루겠다며 출발하는 많은 학생들이 일상에서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너무 쉽게 좌절한다”며 “실험은 거대한 피라미드의 돌을 하나하나 옮기는 생활이고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얘기해준다”고 말했다. 그가 그린 <포닭 블루스>, <대학원생 블루스>, <사랑의 실험실> 등은 그런 이야기들인 셈이다.
신 교수는 10년 전쯤 대학 실험교재에다 우연찮게 만화와 삽화를 그렸던 게 인연이 돼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암의 전이과정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자인 그한테 만화는 취미일 뿐이지만 남다른 의미도 있다. 그는 “외국에선 연구자들이 만화를 그리는 일이 아주 낯선 일이 아니지만 ‘논문 공장’이 되다시피 한 국내에서 만화는 호사스런 취미인 것 같다”며 “만화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톡톡 튀는 해부학 ‘해랑 선생’
“무시무시하고 삭막할 법도 하지만 해부학교실의 일상에도 여유와 농담이 있습니다. 전문가 세계엔 다른 예술 창작자들은 알 수 없는 색다른 창작의 샘물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저의 만화는 해부학 직업인의 세계이면서 나만의 창작 세계입니다.”
10년째 해부학의 학습만화와 명랑만화를 그려온 정민석 교수는 요즘도 어느 자리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를 기발한 해부학 농담과 웃음의 소재를 기록하기 위해 따로 메모용 종이를 갖고 다닌다. “처음엔 학습만화를 그렸지만 그리 반응이 신통치 않았어요. 요즘엔 나만의 개성과 농담이 담긴 명랑만화를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만화는 글에는 도무지 다 담을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을 담아내는 또다른 문화 소통의 도구이지요.”
어릴 적부터 만화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는 “국내에 교수들이 수만 명이나 되지만 만화 그리는 교수가 거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며 “자기만의 전문지식과 전문가만이 아는 경험과 농담, 에피소드가 더 널리 이야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500편가량 작품을 그린 그는 “앞으로 1000편을 채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실험실의 애환 ‘포닭 블루스’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분자세포생물학자 신인철 교수.
‘해부학을 사랑하는 선생’이란 뜻의 만화 주인공인 ‘해랑 선생’ 그림 앞에 선 해부학자 정민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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