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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유전자, 조작 넘어 인공으로 만든다

등록 2009-12-15 19:39

미생물 신진대사 회로 재설계해 합성
맞춤 ‘세포공장’서 산업·의료물질 생산
“자연이 써놓은 유전자를 ‘읽는’ 시대에서 이젠 인간이 직접 유전자를 ‘쓰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자연의 유전자를 일부 조작하는 단계를 넘어 자연에 없는 유전자를 설계하고 합성해 값비싼 물질을 대량생산하는 미생물을 만드는 시대라 할 수 있겠지요.”

이상엽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똑같이 포도당을 먹고도 플라스틱이나 다른 진귀한 고분자 물질을 대량으로 분비하는 산업·의료용 미생물을 개발하고 있다. 미생물의 신진대사 회로를 다 파악한 뒤 유전자를 조작해 대사 회로를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미생물 몸 안의 ‘화학공정’을 바꾸는 일이다. 최근에 그는 자연에 없는 효소 유전자들의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설계·제작한 뒤 이 인공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 까다롭고 값비싼 화학공정이 대장균 몸 안에서 저절로 이뤄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성과는 미국 <시엔엔> 온라인판에 한때 머리기사로 보도됐다. 이 교수는 “유전자를 설계하고 합성하며 조립하는 합성 생물 기술이 생명공학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5월께 미국 질병통제센터가 신종 인플루엔자(H1N1)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국내 생명공학기업 바이오니아는 그 염기서열 정보에서 양성 반응 진단에 쓸 수 있는 500염기쌍 길이의 유전자 부분을 찾아냈고 A·T·G·C 염기 재료를 써서 유전자를 직접 합성했다. 신종 플루의 바이러스 실물을 확보하기 힘든 전염병 발생 초기에 이곳에선 이렇게 유전자 합성기로 만든 인공 유전자를 대상으로 불과 2주 만에 ‘신종 플루 진단키트’를 개발했다. 박한오 대표는 “덕분에 국내에선 국산 진단키트가 7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성생물학이 ‘생명의 분석과 이해’를 넘어 ‘생명의 설계·합성’으로 나아가는 새 흐름의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합성생물’이란 말은 미국 유전체학자 크레이그 벤터 박사 연구팀이 바이러스·박테리아 수준의 미생물을 실험실에서 인공 합성하려는 연구를 추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해, 이젠 합성생물학이라는 학문 분과까지 자리 잡았다. 최근엔 벤터 연구팀이 여러 미생물의 몸을 빌려 인공 게놈을 합성하는 데 성공해 <사이언스>에 발표했으며, 이름난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합성생물학을 이달치 특집으로 다뤘다. 지난달 말엔 미국 정부가 유전자 합성을 악용한 생물테러를 우려해 ‘유전자 합성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해 공시했다.

국내 생명공학기업 바이오니아가 최근 개발한 유전자 자동합성 기기. 바이오니아 제공
국내 생명공학기업 바이오니아가 최근 개발한 유전자 자동합성 기기. 바이오니아 제공

국내에서도 지난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내 연구자들이 모여 ‘합성생물학 콘퍼런스’를 열었다. 콘퍼런스에선 유전자를 합성해 맞춤형 기능을 수행하는 미생물 ‘세포공장’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광합성을 일으켜 친환경 연료나 먹는물, 식품을 생산하고 약물과 고분자를 분비하는 미래의 미생물 산업을 전망했다. 김지현 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이 분야의 세계 산업과 시장이 급속히 커지는 추세”라며 “국내에서도 경쟁력 있는 연구자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는 “유전자 90여종을 동시 합성하는 자동화 설비를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며 “자동화가 본격화하면 합성 단가도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합성 유전자의 주된 고객은 대학과 기업·정부 연구소들인데, 합성 단가는 2002년엔 염기 1쌍당 10~20달러나 됐으나 지금은 0.3~0.4달러로 떨어졌다. 1000개 염기쌍으로 짜인 유전자 하나를 주문하려면 45만원 안팎이 들어간다. 박 대표는 “단가가 0.3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자연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보다 염기를 설계된 순서대로 하나씩 이어붙여 합성하는 게 더 싼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을 중심으로 어디에나 쉽게 갖다 붙여 조립할 수 있는 ‘표준 유전자 부품’의 목록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유전체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표준 유전자 부품들을 이리저리 간편하게 조립해 신기능의 대장균을 설계·합성해내는 일반 대학생들의 국제 경연대회(iGEM)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에서 열리고 있다.

대전/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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