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해독 속도의 발전
2001년엔 10년 걸려…기술발달 초고속
대량으로 비교·분석하는 정보과학화로
대량으로 비교·분석하는 정보과학화로
“5년 전에 김치 유산균의 유전체(게놈)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분석할 때 4억원이 들었지요. 지금은 수백만원이면 충분합니다. 또 10년 전에 10년 걸리던 게놈 해독이 이젠 며칠 안에 끝나지요. 이건 엄청난 변화입니다.” 미생물과 게놈을 연구하는 천종식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속도가 놀랄 만큼 빨라지면서 실험실 풍경도 바뀌고 있다”며 “생명과학을 잘하려면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새해를 내다보며 여러 생명과학자들이 ‘게놈 빅뱅’을 예견하고 있다.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생물정보연구센터장)는 ‘제2의 게놈 혁명’이라고 했다. 생명과학 실험실에 먼저 찾아온 변화의 원동력은 디엔에이의 A, T, G, C 염기 정보를 더 빠르게 더 싸게 읽어내는 자동화 기기의 급속한 발전이다. 사람의 30억 염기쌍 전체를 며칠 만에 읽어내는 현재의 속도를 넘어, 불과 몇십 분만에 읽는 신기술이 올해 본격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국 생물정보기업들(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 등)은 최근 “수십 분 안에 100달러 비용으로 사람의 염기서열 전체를 해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히면서 제3세대 기술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생물정보학 전문가인 박종화 박사(테라젠 바이오연구소장)는 “염기 A, T, G, C의 서열을 읽는 비용이 떨어져도 그런 염기 정보가 어떤 유전적 의미를 지니는지 분석(판독)하는 데엔 여전히 많은 실비용이 들어간다”며 “그렇더라도 이런 기술 발전은 게놈 빅뱅이 피할 수 없는 길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게놈 해독 기술은 몇 년 새 숨가쁘게 발전해왔다. 2001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가 인간 생명의 청사진인 게놈 지도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만 해도 한 사람의 게놈을 분석하는 데엔 무려 10년가량이나 걸렸다. 그러던 것이 디엔에이를 증폭한 뒤 대량의 정보를 수만 갈래로 병렬처리하는 자동화·전산화 기술이 나오면서, 2007년엔 불과 1주일가량으로 짧아졌다. 요즘엔 다시 2~3일로 줄었다. 박종화 박사는 “엄청난 인간 게놈도 하루 만에 다 해독하는 게 이론상으로 가능함이 이미 1998년께 제시된 적이 있다”며 “기술 발전은 그런 가능성을 실현해온 과정”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본격 등장할 차세대 장비들은 ‘수십분 안에 한 사람의 게놈 해독’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변화는 실험실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생물체 하나의 게놈만 분석해도 의미 있는 연구성과로 여겨졌으나 요즘엔 수십개 게놈을 비교·분석해야 주목받게 됐다. 처리하고 해석해야 할 데이터의 양은 엄청나게 늘었다. 이상엽 교수는 “쏟아지는 대량의 게놈 정보를 누가 어떻게 분석하느냐 하는 분석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과학은 앞으로 정보과학이 될 것”(박종화 박사)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보를 처리하고 간추리고 판독하는 컴퓨터 작업이 많아지면서 연구실엔 컴퓨터 장비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 등에 이어 새로운 게놈 연구기관들도 잇따라 출범한다. 서울대는 내년 3월께 생물정보연구소를 세워 거대 용량의 컴퓨터 장비를 갖추고서 생명과학 연구자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박종화 박사는 비영리 게놈연구재단(가칭)과 연구소를 내년 1월께 출범시켜 기초연구를 본격화한다.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는 최근 게놈 연구 지원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변화는 몇 년 안에 실험실 문턱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5년 안에 상당수 사람들이 자신의 게놈 정보를 갖고 다닐 것” “항암제도 개인의 유전자 염기서열에 나타난 약물 민감도에 따라 맞춤형으로 처방될 것” “보험·취업 등 영역에서 게놈 정보가 이용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구자들은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처하려면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변화의 의미와 부작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여러 과학자의 예측대로 ‘빅뱅’에 걸맞은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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