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김영훈 기자
2020을 보는 열 가지 시선 ⑩ ‘노벨상 콤플렉스’와 우리 기초과학
몇년 전 우리 대학을 방문한 노벨화학상 수상자한테 한 학생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나요?” 대답은 간단했다. “노벨상을 탈 목적으로 연구한다면 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호기심과 열정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노벨상을 탈 수도 있겠지요.” 1901년 첫 노벨상 시상이 이뤄진 이래 지금까지 802명의 개인과 20개 단체가 노벨상을 받았다. 이웃 일본은 2008년 한 해에 4명이 과학상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 모두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과학 분야 노벨상은 한 명도 없다. 왜 그럴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에서 한국은 이미 과학 경쟁력 3위, 기술 경쟁력은 8위, 그리고 과학인용색인(SCI) 논문 수로 12위에 오를 정도인데 말이다. “노벨상 목적으로 연구해서야…”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분석한 여러 연구들에서 나온 ‘튼튼한 기초과학 없이 노벨상은 불가능하다’는 분석 결과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은 1987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나카소네 당시 총리가 ‘인간 프론티어 과학 프로그램’(HFSP)을 제안한 것이 기초과학 정책의 전환점이 됐다. 인간 생명에 대한 국제 공동의 기초연구를 일본이 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과는 매우 컸다. 지원을 받은 연구자 중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을 혁명적 변화는 아직도 기초과학에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한 해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도 2009년을 ‘기초 과학력 강화의 해’로 선포하고 ‘5대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향후 10년 간 연구개발 예산을 두 배로 늘리고, 특히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과 젊은 연구자 육성, 기초연구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럽연합(EU)도 2008년에 향후 2년 동안(2009~10)에 320조원을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다.
획일 교육에선 ‘진짜 영재’ 없다 우리 정부도 기초연구에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그런데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단기 목표로 삼아서는 기초과학의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장기 관점에서 안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노벨상은 30대 연구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나서 평균 18년 동안 여러 연구자들한테 그 결과가 널리 인용되거나 사용된 뒤 50대 중반이나 돼서야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한 나라에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창조성과 독창성을 갖춘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인재를 교육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호기심이 많다. 그런 것에 호응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자연을 이해하려면 법칙만을 익혀서는 안 된다. 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토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대입 준비용인 객관식 답 맞추기라는 획일적 훈련으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정답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틀에 박힌 훈련을 강요하는 영재 교육이라면 기대할 게 없다. 교육은 어려서부터 인간과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해야 한다. 수학·과학은 억지로 하는 과목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초등학교 교실부터 근원적인, 도전적인 질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필요하다. 교육과 과학의 철학과 비전을
민경찬 연세대 대학원장(수학), 과실연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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