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하는 초파리. 출처 Wikipedia commons.
김우재의 ‘파리의 사생활’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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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전학이라는 학문을 대하며 우리가 경험하는 심상은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멘델의 이름을 떠올릴지 모르고, 수도사였던 멘델과 완두콩의 이야기로 유전학을 포장해버리려 할지 모른다. 조금 더 생물학에 익숙한 이들은 전설적인 왓슨과 크릭의 이름에서 마치 그 두 위대한 과학자들이 DNA라는 유전물질을 발견한 것으로 이 학문을 과장할 듯 싶다. 어떤 이들은 2005년 황우석 교수 사태를 회상하며 한번쯤 DNA라는 물질과 클로닝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침 매우 운이 좋아서 그 날의 술자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영화 ‘아바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는 그런 일상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유전학을 느끼지 못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도, 영화 ‘아바타’에도 DNA와 유전학에 관해 잡담할 거리는 참 많지 않았던가.
덕만은 생전 보지도 못한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 신라로 찾아들고, 일란성 쌍생아였던 천명공주는 자신과 같은 점을 지닌 덕만이 친자매임을 한 눈에 알아보지 않았던가. 그 뿐 아니라, 생물학적 족보를 따져 성골과 진골을 가르는 신라 왕족과 귀족의 태도도 바로 유전학이 다루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춘추는 슬피 울고 성골들을 향해 복수를 다짐했던 것 아니겠는가.
’아바타’라는 영화는 또 어떠한가. 인류와 ‘나비’ 부족의 DNA를 합성해 만든 아바타라는 꼭두각시 인형에, 아바타에 DNA를 제공한 드라이버가 신경세포를 이용해 접속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요 소재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바타 드라이버로 훈련 받았던 과학자의 죽음이 다행히 그의 일란성 쌍생아를 통해 보완된다는 설정은, 유전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는 일란성 쌍생아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되어 왔는지를 반증한다. 어디에나 유전학이 있었고, 유전학은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유전학은 생활이다.
# 2.
친할머니가 손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외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더욱 크다. 딸의 자식이니 반드시 자신의 핏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외할머니와, 아들의 자식이긴 하지만 며느리의 외도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친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조리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이러한 유전학적 진실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루 3억 개가 넘는 정자를 만들어내는 남성과, 한 달에 하나의 난자밖에 만들 수 없는 여성의 짝 고르기 행동엔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았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나타나는 생식세포의 불균형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틈만 나면 외도를 꿈꾼다. 남성의 외도는 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양적인 것이다. 물론 외도에 대한 욕망은 남녀평등 사상에 충실하다. 여성도 외도를 한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남자의 29%와 여자의 18.5%가 과거 바람 피운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유전자 친자 확인 검사에서는 약 25% 정도가 친자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배우자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경제력이다. 3억의 정자를 매일 생산하는 남성의 바람기로부터 자신과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들의 심리는 그렇게 진화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기 바라는 자연선택의 잔인함은 여성들이 경제력이 있는 남성을 속여 육체적으로 매력 있는 생물학적 아빠의 아이를 양육하도록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이유로 절대로 그러한 잔인한 자연의 진실에 지배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 인류의 자존심은 킨제이와 이후 발흥한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전학은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학문이다.
어느 학문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학문의 외연이 인간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될 때에만 대중의 관심을 받기 쉽다. 유전학이라는 학문은 멘델의 완두콩과 토마스 모건의 초파리, 그리고 시드니 브레너의 예쁜꼬마선충을 거치며 발전해 왔지만, 실제로 우리 생활 속의 유전학은 여전히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흥미로운 결과들 뿐이다. 과학의 실제적인 발전양상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대중에게 인간은 가깝고 벌레는 멀다. 게다가 유전자조작식품(GMO)처럼 먹거리와 관련조차 없는 벌레들은 유전학에 기여한 성과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유전학은 실은 유전학이 아니라, 유전학을 가장한 화려한 미사여구들뿐이다.
대중 과학 교양서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리쳐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도 시모어 벤저(Seymour Benze)가 누구인지, 알프레드 스터번트(Alfred Henry Sturtevant)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제임스 왓슨이나 프랜시스 크릭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올해 사망한 마샬 니렌버그(Marshall Warren Nirenberg)가 아니었다면 왓슨과 크릭의 연구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1등만 기억하고, 영웅을 제조하는 우리 사회의 암영은 과학계에도 그대로 드리워 있다. 대중은 실제적인 과학발전에 기여한 이들의 이름이 아니라 대중적인 책을 저술한 과학자들의 이름과 몇몇 영웅들의 이름만을 기억하며 그것을 과학이라 생각하게 된다.
# 3.
이 기획연재는 초파리(fruit fly, 학명 Drosophila melanogaster)를 연구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며, 바로 초파리라는 조그만 벌레의 이야기이도 하다. 토마스 헌트 모간이라는 과학자를 제외하고는 별반 유명한 과학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 분야가 유전학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행동에 관한 연구에서 유전자의 역할은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진화론과 관련해서 초파리는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초파리 방(fly room)’이라 불리는 곳에서 별반 대중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면서 연구해온 초파리 연구자들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조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그 작은 크기와 별로 귀엽지 않은 외모로 인해 루저가 되어버린 초파리와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영웅들의 신화 속에 숨겨져 왔던 작은 영웅을 발견하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처럼, 언제나 다양성이라는 미덕보다는 몰아주기에 몰두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이 연재로 인해 조금은 변화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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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은 생전 보지도 못한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 신라로 찾아들고, 일란성 쌍생아였던 천명공주는 자신과 같은 점을 지닌 덕만이 친자매임을 한 눈에 알아보지 않았던가. 그 뿐 아니라, 생물학적 족보를 따져 성골과 진골을 가르는 신라 왕족과 귀족의 태도도 바로 유전학이 다루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춘추는 슬피 울고 성골들을 향해 복수를 다짐했던 것 아니겠는가.
영화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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