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안 쓰는 날을 제안합니다
과학향기
얼마 전만 해도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손수건으로 코를 풀며, 행주로 식탁을 훔쳤다. 그리고 세탁해 다시 사용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는 천 대신 휴지와 냅킨, 키친타월을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천보다 종이를 쓰는 게 더 위생적이라고 믿을 뿐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훨씬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티슈 사용량이 종이의 소비부문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숲에서 나무가 벌목되어 종이를 만들고 매립지에서 완전히 분해될 때까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종이 1톤당 6.3톤이다. 전 세계 종이의 생산량이 연간 3억 3500만톤이므로 해마다 21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셈이다. 종이를 제조하는 과정에도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있다. 바로 표백 과정이다. 펄프공장으로 옮겨진 나무는 열과 화학처리를 거쳐 ‘목섬유세포’ 단위로 잘게 부서지고, 목섬유세포는 여러 차례 물로 희석된 뒤 뭉쳐져 하나의 종이가 된다. 이때 만들어진 종이는 본래 누런색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흰색을 선호하기 때문에 염색과 표백을 거쳐 새하얀 종이로 탈바꿈한다. 표백과정에는 염소가 사용되는데, 1톤의 종이를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45~70kg의 염소가 필요하다. 나무와 같은 유기물이 염소와 결합하면 다이옥신을 비롯한 유기화합물이 방출되고, 표백처리과정에서 나온 폐수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된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종이, 공해 없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하고 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종이공예가 조앤 가이르(Joanna Gair)가 만드는 종이 ‘루 푸(Roo Poo)’는 원료가 캥거루의 똥이다. 또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엘크, 아프리카 사람들은 물소 똥으로 종이를 만든다. 나아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코끼리 똥에서 추출한 식이섬유로 만든 ‘엘리 푸 페이퍼(Ellie Poo Paper)를 판매하며, 그 수익금으로 코끼리 보호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소비하는 종이를 나무가 아닌 동물의 똥으로 만들려면 많이 가축이 필요하다. 숲을 벌목해 초원을 만들어 가축을 방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오히려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숲의 기능을 악화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종이를 만드는 것이 더 값어치 있는 일이다. 미국 노스웨스트대 화학생명공학과 바르토츠 그리지보프스키(Bartosz Grzybowski) 연구팀은 ‘스스로 지워지는 종이’를 개발했다. 이 종이는 자외선으로 인쇄되고 가시광선으로 지워진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시광선에 의해 종이에 인쇄된 내용이 지워지기 때문에 종이를 무한 반복해 쓸 수 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화학분야의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Angewante Chemie)’ 2009년 9월 7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금과 은 나노입자를 아조벤젠 분자로 얇고 균일하게 코팅한 뒤, 유기 겔(gel) 필름에 넣어 합성시켰다. 합성된 필름에 있는 아조벤젠 분자들은 자외선을 받으면 구조적 대칭성이 깨지는데, 이때 나노입자를 끌어당기는 전기적 극성이 만들어진다. 이 힘이 나노입자들을 새로 조립하므로 필름 표면이 색상을 띠게 된다. 반면 이 필름에 가시광선을 쪼여주면 나노입자들이 본래의 대칭성을 지닌 구조로 되돌아가 점차 색상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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