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묵 교수의 책상 위에 여러 연습종이와 공책, 그리고 몽당연필이 널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래를 여는 첨단과학] ② 현대기하학
■ 기하학 연구모임 가보니
수학자들끼리는 어떻게 얘기를 나눌까?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가 젊은 박사후연구원인 우영호, 김호성, 김다노 박사와 함께 매주 한번씩 여는 작은 연구모임은 ‘기하학을 하는 일상 풍경’을 보여준다. 지난 12일 오전 11시께 모임이 열린 서울 홍릉 고등과학원의 4층 세미나실에선 무엇보다 3면이 온통 칠판으로 둘러싸인 방의 독특한 구조가 눈에 뛰었다. 칠판과 분필, 그리고 연습종이와 연필은 수학자들이 즐겨쓰는 연구활동의 도구였다.
우 박사가 칠판 쪽으로 나가 분필을 하나 집어든다. 칠판을 마주하곤 연이어 말없이 수식을 써내려간다. 간간이 나지막한 목소리가 설명을 더한다. 지난 모임 때에 풀었던 기하학 난제 하나를 이번 모임에선 다른 방법으로 풀어보이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20분 넘게 칠판 전체를 두번이나 지우고서 빼곡히 수식을 채운다. 에어컨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발표라 하지만 말없이 수식만을 칠판에 채우고 있었고, 그렇지만 사실 칠판 위의 수식들은 말없는 소통의 언어였다. 점, 면, 곡선, 3차원 같은 말들이 간간이 들리는 것 외에 도형이나 그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현대기하학이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우 박사는 모임이 끝난 뒤에 “기하학 문제 하나를 푸는 데 여러 해법들을 적용해보는 중이고 지난 한 주 동안 다른 방식을 하나 생각해내어 오늘 발표했다”며 “수학자는 모여 연구하지 않고 혼자서 계산하고 해법을 생각해내야 하기에 이런 모임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 수학에선 문제들마다 정해진 해법을 찾아 배운다. 하지만 연구 현장의 진짜 수학은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논증 방법엔 이런저런 허점이 있다”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같은 말들에선 수학이 반복하는 계산 풀이가 아니라 수학의 언어로 이뤄지는 창의적인 논증 전개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론연구소인 고등과학원에서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자유롭게 만나 차를 마시며 생각을 주고받는 공간인 ‘티룸’이 연구소의 명물로 꼽히는 것도 이론연구에서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나눔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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