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스페이스의 내부. 사진제공/ 임성원
“직장인, 학생, 은퇴 과학자도 유전자 실험 하는 생물학 대중화 목표로”
“나쁜 바이오크래커 경계, 윤리·책임 갖춘 착한 바이오해커 양성필요”
“합성생명체 유출, 합성생물학 오남용 등 부작용 우려, 대책 마련해야” “해커는 직위나 명예에는 관심 없이 자신이 탐구하는 분야에서 대가(mastery)가 되어 보겠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 해커 정신의 기본에는 모든 정보를 공유해서 더 빨리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이 있죠. 바이오해커(biohacker, 또는 biopunk)는 그런 해커 정신을 생물학 시스템에도 적용하려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임성원, 젠 스페이스 공동설립자) 이런 바이오해커 정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여 지난 12월10일 미국 뉴욕 시내에 ‘열린 공동체 실험실(community lab)’ 공간을 열었다. 미국 뉴욕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임성원(22)씨를 비롯해 생물학자, 예술가, 엔지니어, 작가들이 모여, 대학과 연구소 울타리 바깥에 만든 비영리의 ‘열린 생물 실험실’이다. 이 공간엔 유전자와 공간/우주의 뜻말을 합쳐 ‘젠 스페이스(GenSpace)’ 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욕 시내 브루클린 거리 건물의 7층에 자리 잡은 이 실험 공간에는 유전체(게놈)를 설계, 조립, 제작하는 합성생물학을 비롯해 여러 생물학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임씨는 ‘사이언스온’과 주고받은 세 차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본적인 분자생물학 기기는 다 구비해두고 있다”며 “2년 전부터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에서 여러 실험 장비와 화학물을 기증 받았으며 (정부가 인정하는) 생물안전성 레벨1 등급을 받을 정도로 오랜 시간 계획해 만든 실험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사무장(executive secretary)’ 역할을 하면서 자신만의 실험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뉴욕 시내에 등장한 바이오해커 공간
젠 스페이스에서는 갖가지 장비들을 이용해 웬만한 생물 실험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요즘 생물 실험실의 기본장비인 디엔에이(DNA) 증폭기 피시아르(PCR)나 염기서열 분석용 전기영동기, 또 그밖에도 원심분리기, 냉동기, 인큐베이터, 진공챔버, 마이크로피펫 같은 실험도구와 갖가지 화학물들이 갖춰져 있다. 이런 실험도구들은 사회를 위해 연구하고자 하는 은퇴한 과학자이건, 퇴근길의 일반 직장인이건,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는 학생이건 뜻을 지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종의 ‘공동체 공방’인 셈이다.
임씨는 “누구나 이곳 실험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식 과학과 비공식 과학의 분리를 될수록 없애자는 게 젠 스페이스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스물한 살 이상의 직장인한테서는 월 100달러의 회비를 받고 있으며, 미성년자와 학생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젠 스페이스의 관계자들은 의무적으로 회비를 낸다. 자문위원과 멘토로는 현직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여러 분야의 기성 과학자들이 자문위원회에 참여하거나 학생들의 개인 멘토가 되는 형식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매서추세츠공대(MIT), 코넬대학, 콜롬비아대학, 뉴욕대학의 교수들이 현재 젠 스페이스의 위원회에 참여하고 계시지요.”
젠 스페이스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점을 갖추고 있다. 먼저 전문 연구자들만의 전용공간이던 실험실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대중화했다. 이곳에서는 전문가 능력이 대학이나 연구기관 소속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도 독특하다. 그래서 이곳의 활동가들은 생물학 연구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세 명의 전문 생물학자들이 있고 물리학 대학생이 저 한 명, 그리고 미디어 아트를 하는 누나 한 명, 수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미술을 공부하는 분 한 명, 프리랜서 과학 저술가 한 명, 건축가 한 명 등이 있지요.”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생물 실험실의 문화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그들의 실험 성과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또한 실험 행위의 주체들이 자신의 필요와 동기에 따라 연구 계획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통상의 실험실과 다르다. 임씨는 최소의 생명 요건을 갖춘 인공세포를 만들고 대기 성층권에 사는 고공 미생물을 채집해 염기서열을 분석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는 인공 세포막을 만들고 그 속에 세포의 단백질 표현 요소를 조립해 집어넣어 원시적인 인공세포를 만들고자 합니다. 또 고도 30km까지 성층권에 풍선을 띄워 그곳의 미생물을 채집한 뒤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각지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추진할 계획도 세우고 있고요.” 다른 참여자들이 세운 실험 계획에는 ‘상대방의 대장균 군을 먼저 없애 승부를 가리는 미생물 체스게임 개발’ 같은 것처럼 전통적인 실험실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구상들도 있다.
젠 스페이스는 문을 열자마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는 긴 기획기사로 “새로운 스스로 하기 생물학 실험실”인 젠 스페이스의 창립 사실을 전했다. 과학기술 전문잡지 <와이어드>는 “뉴욕에 문을 연 DIY 생명공학 해커 공간”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스스로 하기 생명공학(do-it-yourself biotechnology)의 혁명이 시작됐다”며 “과학 활동가들이 연 젠 스페이스는 정부의 협조를 받은 세계 최초의 공동체 생명공학 실험실”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안보당국은 생물테러나 마약 제조에 악용될 위험을 우려해 바이오해커의 활동에 우려를 표명해왔으며, 이 때문에 젠 스페이스의 설립 과정에도 연방수사국(FBI)이 관여해왔다. 젠 스페이스의 대표인 엘런 조르겐센(Ellen Joergensen, 생물학자)은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FBI와 뉴욕경찰 당국에서 난색을 표했으나 여러 차례 만나 결국에는 이런 실험실의 좋은 취지를 설득해냈다”고 말했다. 임씨는 ‘사이언스 온’ 인터뷰에서 “생물안전성과 관련해 FBI와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성생물학 계기로 조명받는 DIY 과학
젠 스페이스 같은 새로운 형식과 성격의 실험 공간이 일반인의 생활공간에서 생겨난 데에는 ‘스스로 하기 과학(Do-It-Yourself Science)’이라는 새로운 과학문화의 배경이 있다. 줄여서 ‘DIY 과학’이라고도 부르는데, 특히나 생물학 분야에서 ‘DIY 생물학(DIY biology) 또는 DIY 바이오’의 이런 흐름이 점점 커졌다. 좀 더 좁혀 들어가 보면 생물학 분야에서 DIY가 주목받은 배경에는 합성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등장이 있다.
젠 스페이스의 공동설립자인 임성원씨의 개인 경험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젠 스페이스의 설립 배경에는 합성생물학이 있습니다. 합성생물학은 기본적으로 공학적인 접근방법을 살아 있는 생물체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신생 분야입니다. 굳이 유전체(게놈) 코드가 생명체 내부에 일으키는 모든 화학반응을 다 이해할 필요 없이 한 객체씩의 ‘바이오-벽돌(bio-brick, * 특정 기능을 하는 유전자 하나 또는 유전자 세트를 말한다- 사이언스 온)’을 만들고 그런 한정된 객체의 특성을 알 수 있다면 레고 조립하듯이 복잡한 생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하는 분야이지요. 합성생물학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방대한 양의 염기서열 분석과 합성을 값싸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각 유전자 벽돌을 모델, 실험, 기록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컴퓨터 계산 능력입니다. 합성생물학이 생긴 뒤 얼마 되지 않아 값싼 염기서열 분석과 컴퓨터 계산 능력이 훨씬 더 값싸지고 더 강해진다면 일반 대중도 거대한 기업 연구실이나 대학 연구실 바깥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생물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DIY 바이오(DIY-bio)’라는 단체이지요. 이런 생각을 접하고 2년 전부터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준비해 이룬 것이 바로 젠 스페이스입니다.” 그러니까 ‘바이오해커’의 정신은 곧 ‘DIY 바이오’의 정신과도 많이 겹치는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합성생물학의 등장으로 유전자를 다루는 여러 간편한 표준 방법들이 생겨나고 유전자 정보가 ‘부품’ ‘모듈’ ‘시스템’ 단위의 공학적 조작의 대상이 되면서, 오랜 교육과 훈련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도 예전에 비해 훨씬 쉽게 생물체의 설계, 제작 실험에 참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DIY 과학을 하는 사람들(DIYer)은 몇 해 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많이 생겨났으며, 여러 언론매체에서도 전통적인 실험 공간인 연구소에서 벗어난 새로운 과학활동으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물론 과학 실험이 개인의 손에 쥐어지게 되면서 경계와 우려의 시선도 함께 쏠렸다. 2009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자기 집 차고에 실험실을 차려놓고서 유용한 미생물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객관적 관찰자 시점으로 보도하면서도 이런 개인의 생물 실험이 안전할지에 관한 경계의 목소리를 함께 전했다.
2010년 9월 과학저널 <네이처>는 ‘생명의 해커’라는 제목의 취재기사를 실어 이런 연구자의 고민과 한계, 열정을 전하면서 집 거실에, 차고에, 지하실에 실험실을 차리는 일이 이제는 대략 수 백 만원 정도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섭씨 37도를 유지하는 인큐베이터 대신에 연구자의 겨드랑이를 이용하고, 웹카메라를 개조해 현미경으로 사용하고, 믹서나 전동공구의 회전력을 이용해 원심분리기로 쓰는 식으로 주변 생활도구를 실험기기로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여러 실험장비의 값 자체가 낮아진 데다 중고 장비의 온라인 유통이 활발해 비교적 값싸게 필수 실험장비를 개인이 살 수 있는 여건이 됐다는 점도 ‘스스로 하기 연구’를 촉진하는 요인이 됐다. 원가가 10달러 정도인 PCR 장치도 손쉽게 제작하거나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최인걸 고려대 교수). <네이처>는 같은 해 10월에 ‘차고 과학(garage science)’ 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직업전문가들은 집에서 실험 활동을 하는 아마추어 과학을 환영해야 한다’며 DIY 과학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전했다.
가장 큰 DIY 바이오 단체인 ‘DIY 바이오’의 메일링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 대략 2천명에 이르지만 이런 단체에 속하지 않은 단순 DIY 바이오의 아마추어 과학자는 그 수를 헤아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DIY 바이오가 활발해지는 데 기여한 배경에는 유전자 부품을 조립, 설계해 새로운 기능을 하는 미생물의 생명 시스템 만들기를 겨루는 국제 경연대회도 한몫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열리는 ‘국제 유전공학 기계(iGEM: international Genetically Engineering Machine) 대회는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대학생도 참여할 수 있는데, 표준적인 유전자 부품을 재료로 삼아 진기하고 유용한 기능을 하는 미생물을 만드는 팀에 상을 주는 경연대회이다. 합성생물학의 대중화를 위해 2003년부터 해마다 한번씩 11월쯤에 열고 있다.
사실 DIY 과학은 생물학 분야 뿐만이 아니다. 로봇, 로켓, 인공위성, 전자기기를 직접 개발하려는 여러 개인들과 다른 해커 집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임성원씨는 DIY 과학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이유와 DIY 과학이 얼마나 폭넓게 행해지고 있는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DIY라는 것 자체가 이미 있었는데 미디어를 통해 최근에 널리 알려진 게 계기가 되어 일종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인식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합니다. 인공위성, 로봇, 생물학, 비행기 이런 모든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합작품입니다. 그 전문가들이 자신의 집에 돌아와 친구와 가족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들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DIY였던 게 아닐까요? 다만 미디어, 대량 정밀 생산, 교육, 기술 등의 발전과 그로 인한 가능성들의 증가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 세상 속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느낄 수 있다면… 결국 이 세계 자체가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정밀 부품·도구들이 어디서 어떻게 싼 값에 대량 생산, 배달되는지 생각해 보면 이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단순히 값비싼 도구를 가지고 흥미 있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과학의 사고체계(system of thought)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로켓이나 합성 단백질을 만들어 파는 것과는 달리 그것들이 자신의 힘으로도 가능하다 생각하고 그 미래를 향해 치밀하게 고민하고 계획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와 과학적 엄격성(scientific rigor)은 경제 원리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iGEM 참여 확대, 그리고 DIY의 꿈
합성생물학의 등장과 더불어 DIY 바이오가 활발해지고 있는 흐름은 국내에서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iGEM 경연대회에 참여하는 국내 대학생들의 모임은 완전한 DIY 바이오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 흐름과 함께하고 있다.
고려대 iGEM 참여 준비팀을 이끌고 있는 최인걸 교수는 “iGEM 팀은 지도교수나 조교 같은 전문가의 감독과 지도를 받아야 하고 연구실에서 제공되는 재료와 실험장비를 쓰기 때문에 DIY 바이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iGEM 팀에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까지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수행하는 DIY 바이오와 비슷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iGEM 경연대회 참여는 2009년에 고려대 팀과 충북대 팀이 참가하면서 처음 이뤄졌다. 2010년에는 카이스트 팀이 추가돼 3팀이 참여했으며, 본선 경쟁과 상관없이 일정한 수상기준 요건을 갖추면 상을 주는 부문에서 고려대 팀은 은상을, 충북대 팀은 동상을 수상했다. iGEM 대회의 참가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최인걸 교수는 “iGEM이 올해부터는 참가팀이 많아지면서 아시아나 유럽 같은 지역 예선을 거쳐 통과한 팀만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국내 참가 팀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볼 때에 합성생물학의 연구 활성화와 iGEM 대회 참여 확대에 따라, 국내에서도 점차 DIY 바이오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인걸 교수도 ‘열린 DIY 실험실’을 구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합성생물학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오래 전부터 DIY 바이오에 관심을 두어왔고, 이와 관련해 열린 실험실(DIY bio open lab)을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린 실험실에서는, 예들 들어 표준화한 DIY 프로토콜을 제공해 누구라도 자신의 특정 유전 정보를 확인하는 실험을 쉽게 하게 한다던지 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표준화한 생체 부품의 개발, 보존을 위한 ‘한국 생물학 부품 소재 은행(Korea Registry of Standard Biological Parts and Devices)’이 현재 구축되고 있다.
그는 “전문화한 DIY 바이오는 궁극적으로 생명공학 기술의 영역 확대와 다양한 응용, 기술 개발을 통해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생체 회로나 부품들은 극히 제한적이고, 설령 다양한 생체 부품을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전자부품을 갖고서 가전제품 같은 복잡한 기계를 만들기 힘들 듯이 여전히 DIY 바이오로 할 수 있는 대상이나 응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애초 의도와 달리 오남용과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예측되는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물테러, 생태계·환경파괴 우려 상존
솔직하게 바라보자. 합성생물학과 DIY 바이오에 따라붙는 시선은 늘 기대와 불안이 겹쳐 있다. 합성생물학은 쓸모 있는 유전자들을 잘 조립해 백신이나 희귀약물, 바이오연료를 더욱 효율적으로 더 많이 분비하는 새로운 미생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나쁜 의도를 지닌 DIY 바이오 연구자라면 독성 물질을 생산하는 독거미 유전자나 사람한테 치명적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를 조립해 넣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만들어 생물테러(bio terror)를 일으킬 수도 있고, 이런 나쁜 의도는 없었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생물에러(bio error)를 초래해 사람과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합성생물학은 신생 분야라 본격적인 윤리 논란이 크지 않았지만, 지난해 5월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연구팀이 상당한 규모의 합성생물체 박테리아를 실제로 만들어 제시하면서 점점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두고서 눈에 띄는 공방이 있었다. 지난 12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 산하 생명윤리위원회가 합성생물학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명하며 ‘합성생물학이 가져올 혜택과 위험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연구개발은 계속되어야 하되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감독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이른바 ‘중간의 길’ 정책을 권고하는 정식 보고서를 펴냈다.
그런데 영향력 있는 국제 시민단체그룹인 ETC가 이런 정책방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생명윤리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에서 ETC는 이번 평가보고서가 권고하는 정책 방향을 비판하면서 합성생명체가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끼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합성생물학의 안전성에 관한 이해가 더 충분해질 때까지 합성생물체의 방출과 상업적 이용에 대해 금지 조처(moratorium)를 내려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런 공방은 앞으로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합성생물학을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보여주는 예고편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ETC는 DIY 바이오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도 표명했다. 생명윤리위원회가 합성생물학에 대해 원칙적으로 ‘자율 규제(self-regulation)’ ‘자치(self-governance)’의 정책 방향을 권고한 데 대해, ETC는 “현재의 자치 상태로 인해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합성유기체를 만들어내고 온라인에서는 합성 제작된 DNA를 구매할 수 있다”며 이런 자율과 자치 원칙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런 잠재적 위험에 대해 합성생물학 전문연구자나 DIY 바이오 연구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이런 위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들도 대체로 다 인정하고 있다. 최인걸 교수는 “물론 소프트웨어 크래커(cracker)와 유사한 나쁜 DIY 바이오 과학자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사공학자인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는 예전에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의 책임성과 윤리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합성생물학의 안전성 우려 때문에 뉴욕에 문을 연 공동체 실험실 젠 스페이스에서도 안전성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임성원씨는 “모든 젠 스페이스의 회원들은 안전성 교육 표준과정을 통과해야만 실험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소개했다.
“과학문화 긍정효과와 안전성 위험효과 구분해야”
DIY를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DIY 바이오가 내건 취지나 바이오해커의 정신은 전통적인 전문가의 과학 활동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DIY 바이오가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실험장비가 값싸지고 실험 설계와 절차가 간편해졌으며 무수한 유전자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돼 미생물의 대사 설계가 쉬워졌다는 점들이 한몫했다. 임성원씨는 “그밖에도 해커 윤리에서 볼 수 있는 철학적인 이유도 있다”며 “막대한 비용을 연구가 아닌 마케팅이나 소송에 쏟아붓는 기존의 생명공학 회사들의 행태, 그리고 교수가 될 때까지 개인의 연구를 용납하지 않는 대학과 과학계에 대한 반발도 DIY 바이오 출현의 배경이 된다”며 ‘과학을 위한 과학’을 가로막는 현재 문제들을 꼬집었다.
그에게는 생물학을 독점 지식이 아니라 좀 더 넓게 나누고자 하는 꿈이 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젠 스페이스가 전문 과학자들을 만나기 힘들고 연구 환경을 쉽게 접할 수 없는 뉴욕의 저소득층 학생들이 이런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알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닐까요? 당연히 어떻게 되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좋은 것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에서 DIY 바이오 연구자들이 얘기하는 ‘(합성)생물학 실험이 대중화하는’ 세상은 너무도 급진적이고 여전히 낯설다. “뉴욕 시내의 아이들이, 혹은 관심 있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유전자 합성된 식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해와 체계가 잡힌 그런 세상의 모습”(임성원)이나 “효소를 이용해 벌이는 박테리아 체스 게임”을 개발하려는 젠 스페이스 회원의 재기발랄한 연구계획이나 퇴근길에 유전자 합성 실험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은 일반 생활인이 마음에 그려보기에는 너무 먼 곳에 놓여 있다. 그래서 DIY 바이오의 ‘낯선’ 출현은 합성생물학을 악용해서 생길 수 있는 생물테러의 우려와 겹쳐 공포와 경계심을 자아내는 게 현실이다(신문사의 한 기자는 합성생물학과 DIY 바이오 얘기를 듣고서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사이버 해커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요”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런 반응이 아마도 보통 사람들의 솔직한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DIY 과학활동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현대 과학이 낳은 새로운 조류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생물학 지식은 간편한 표준 부품과 설계회로를 제공하는 공학적 변환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실험 도구와 재료는 이제 의지만 있다면 자신의 차고에, 거실에, 주방에 실험실을 차리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 시대다. 마치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 컴퓨터는 거대 시설이고 소수의 전문가만 다루는 장치였지만,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고 들고다니는 컴퓨터인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지금 시대에 컴퓨터가 이제는 일반인의 생활 도구이면서 좋은 해커와 나쁜 크래커의 놀잇감이 되는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실제로 많은 합성생물학 연구자나 바이오해커들은 지금의 흐름을 이렇게 해석하곤 한다.
이런 흐름에 대한 시선도 복잡하다. ‘합성생물학의 도구를 무분별하게 사용했을 때에 초래되는 잠재적 위험은 너무도 엄청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한 합성생물학의 출현과 사용이 가능해질 때까지 그 사용은 엄격하게 규제하자’는 게 시민그룹의 주장이라면, ‘이미 시작된 생물학 대중화를 되돌릴 수는 없기에 생물학을 안전하게 잘 활용할 수 있는 대중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며 생물학 지식은 더 널리 공유되어야 한다’는 게 바이오해커들의 주장이다.
DIY 바이오가 과학문화의 새로운 조류로 자리잡을지,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과학계에 어떤 새로운 논의들을 던져줄지 주목할 일이다. 연구자들이 자주 말하듯이 합성생물학은 1970년대 유전공학 논쟁이나 지금의 GMO 논쟁과 다를 바 없는 이슈인지 아니면 생물학의 공학적 사용이 더욱 간편해진 지금 시대에 잠재적 위험의 영향력 규모로 볼 때에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이슈인지도 더 논의돼야 한다. 또 나쁜 바이오크래커의 출현을 어떻게 어느 수준에서 막을 수 있을지에도 구체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비영리적인 연구와 상업적 이용은 또 어떻게 구분하고 어떻게 다르게 대할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는, DIY 바이오의 대중화로 더 많아질 수 있는 유전자 합성(변형) 미생물체의 자연 방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실제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회와 과학계에서 책임감 있는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DIY 바이오는 이런 논의 속에서 자라날 것으로 보인다.
오철우 기자
* 임성원 님과 최인걸 교수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은 정리해서 다른 글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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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바이오크래커 경계, 윤리·책임 갖춘 착한 바이오해커 양성필요”
“합성생명체 유출, 합성생물학 오남용 등 부작용 우려, 대책 마련해야” “해커는 직위나 명예에는 관심 없이 자신이 탐구하는 분야에서 대가(mastery)가 되어 보겠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 해커 정신의 기본에는 모든 정보를 공유해서 더 빨리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이 있죠. 바이오해커(biohacker, 또는 biopunk)는 그런 해커 정신을 생물학 시스템에도 적용하려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임성원, 젠 스페이스 공동설립자) 이런 바이오해커 정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여 지난 12월10일 미국 뉴욕 시내에 ‘열린 공동체 실험실(community lab)’ 공간을 열었다. 미국 뉴욕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임성원(22)씨를 비롯해 생물학자, 예술가, 엔지니어, 작가들이 모여, 대학과 연구소 울타리 바깥에 만든 비영리의 ‘열린 생물 실험실’이다. 이 공간엔 유전자와 공간/우주의 뜻말을 합쳐 ‘젠 스페이스(GenSpace)’ 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욕 시내 브루클린 거리 건물의 7층에 자리 잡은 이 실험 공간에는 유전체(게놈)를 설계, 조립, 제작하는 합성생물학을 비롯해 여러 생물학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임씨는 ‘사이언스온’과 주고받은 세 차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본적인 분자생물학 기기는 다 구비해두고 있다”며 “2년 전부터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에서 여러 실험 장비와 화학물을 기증 받았으며 (정부가 인정하는) 생물안전성 레벨1 등급을 받을 정도로 오랜 시간 계획해 만든 실험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사무장(executive secretary)’ 역할을 하면서 자신만의 실험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젠 스페이스의 내부. 사진제공/ 임성원
젠 스페이스의 공동설립자인 뉴욕대학 물리학도 임성원씨. 사진제공/ 임성원
‘DIY 바이오‘ 단체의 포스터. 출처/ DIYbio.org
젠 스페이스의 활동가들. 생물학자는 물론이고 엔지니어, 예술가, 작가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이들이 생물학 대중화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제공/ 임성원
2010 iGEM 참가 고려대 팀. 사진제공/ 고려대 계산 및 합성 생물학 연구실
젠 스페이스 안. 사진제공/ 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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