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6)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 온 바로가기
지난 5월 첫 주에 세계 과학기술의 요람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창립 150주년을 맞이해 여러 행사를 열었다.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가벼운 행사도 있었으나, 이 창립 기념일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MIT에서 진행된 여러 학술심포지엄이었다. 그 중에서도 학교본부가 학교 차원에서 대표적 심포지엄으로 지원한 6대 심포지엄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이 대학의 뇌·인지과학(BCS)학과 중심으로 열린 ‘뇌, 마음, 기계(Brain, Mind, & Machine)’ 심포지엄이었다.
MIT 심포지엄 ‘두뇌, 마음, 기계’
이 심포지엄은 MIT의 미래지향적인 학술 기획 프로그램(Initiative)인 ‘I²@MIT’(지능 이니셔티브, I²는 Intelligence Initiative의 줄임말)의 일환으로 진행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능 이니셔티브는,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인 인지과학,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지능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을 융합하여, 새로운 관점과 틀에서 ‘지능’의 문제를 연구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MIT 교수들의 믿음에서 출발한 기획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된 대학 창립 심포지엄들의 하나인 이 ‘두뇌, 마음, 기계’ 심포지엄에서 강연자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의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연구의 경과를 회고하고 미래의 추세를 조망하였다. (이 ‘마음, 기계’ 심포지엄 관련 요약이 이곳 링크에서 볼 수 있다. 강연 영상의 일부도 볼 수 있다.)
심포지엄에서는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언어와 인지과학을 연결한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최근 언어 관련 연구를 중심으로 인지과학 연구와 진화 연구를 연결하며 각광을 받은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80년대에 로봇 연구에 새바람을 일으켰던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 등이 강연하였고 2011년 현재 나이에 이른 이들의 얼굴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인이 된 민스키와 촘스키의 얼굴을 보면서 50여 년 전에 인지과학, 인공지능 영역을 열은 사건과 이후의 인지과학과 인공지능의 변화 추세가 겹쳐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심포지엄의 핵심 주제 하나는 ‘로보틱스 재구성하기(Revisiting Robotics)’였다. 1950~1970년대에는 모든 것을 다 할 듯 여겨졌던 인공지능(AI) 연구가 1980년대 이후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2011년 지금에 와서 다시 로보틱스와 연결됨을 통하여 인공지능 연구가 인지과학 이론과 응용의 중심으로 되돌아오며 미래 인류 과학기술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심포지엄에 참가한 인지과학 전문가들의 미래 조망이다.
로봇이 모르는 사람의 지능과 마음 MIT의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는 최근 ‘컴퓨팅’ 섹션에서 이 심포지엄에서 저명한 인지과학자들과 인공지능학자, 로보틱스 학자들이 논한 미래지향적 관점을 요약해 보도했다. 이 보도에 필자의 생각을 보태서 재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인공지능 연구, 로봇 연구들은 잘못 진행되어 왔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연구가 무엇이든지 다 해낼 듯이 한참 발전하였지만,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잘못된 틀로 진행되어 왔다. 50여 년 동안 연구가 진행되면서 비행기를 자동 조절해 착륙시키는 일은 가능해졌지만, 사람처럼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꺼내거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고 행하는 일을 그대로 해내는 인공지능, 로봇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가, 그리고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장된 로봇의 연구가 과거에 무엇이 잘못되었었는가? 그동안의 연구는 너무 편협한 주제영역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제한된 연구비 지원에 맞춰 좁은 영역을,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을, 해외의 잔재주 피우는 로봇과 비교하여 초등·중학생 수준의 기호에 맞춰서 그 정도 수준의, 또는 그보다는 한 수 위인 재주를 보여주는, 그러한 낮은 수준의 로봇을 연구해 왔다. 잔재주는 보여주지만 그 로봇들이 과연 더 똑똑해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지능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갔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MIT의 인공지능연구실을 거의 30여 년 동안 운영했던 패트릭 윈스턴 교수에 의하면, 그동안의 인공지능, 로봇 연구가 너무 편협한 영역에서 낮은 수준의 기계적인 문제 중심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깊은 수준의 근본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았다. 인간이 영장류 동물과 차이를 보이는 그러한 지능(더 나아가서는 마음)의 본질 문제 중심으로 연구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특성은 언어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이해한다는 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지능의 더 근본적인, 본질적인 특성의 주제 영역으로 돌아가 연구해야 한다.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로보틱스를 연결해. 이 심포지엄의 다른 연사들도 이에 공감하는 주장을 전개했다. ‘잔재주 로봇’ 연구만으론 로봇기술 미래 없다 그러면 왜 지금이 인공지능, 또는 로보틱스 연구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서, 1950년대 초기의 포부를 살려 과감히, 참 ‘지능’ 구현에 도전하여야 할 시점인가? 그것은 이제야, 마음을 연구하는 ‘인지과학’, 두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지능의 기계화를 연구하는 ‘컴퓨터과학, 인공지능, 로보틱스’의 세 분야가 더 근본적이고 원대한 목표를 향하여 수렴되고 융합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학기술의 추세들이다. 분산컴퓨팅, 신경컴퓨팅 등을 포괄하여 컴퓨터의 계산 파워가 지금 급증하고 있고, 인지과학 이론도 1세대,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들어서고 있고, 뇌의 국지적 위치-기능을 밝히는 연구를 주로 하던 신경과학이 이제는 뇌의 여러 영역이 함께 수렴되어 기능하는 것을 연구 중심에 두는 시스템신경과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발전하고 있다. 다른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시드니 브래너가 말한 것처럼,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지능’의 본질, 그리고 그것을 기계로 반영하는 지능적 로봇의 구현에 새로운 이론적 틀로, 더 큰 계산 파워로 접근할 마당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뇌, 마음, 기계의 연구가 정말로 융합되어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새로운 미래 기술을 개발할 마당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즈음에 과거 20세기의 인공지능, 로보틱스 연구의 목표였던 ‘재주 부리는’ 로봇 연구로 미래 기술을, 세계적 기술을 창조할 수 있을까? 재주부리는 로봇만 연구해서는, 그런 연구만 지원해서는, 세계적 과학기술로 나아가려는 한국 로봇 연구의 미래는 없는 것 같다. 이정모 “지난 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보다도 더 큰, 그러나 과학에 든든히 바탕을 둔 패러다임의 변화, 발상의 대전환이 지금 21세기 초엽에 이루어지고 있다.”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인지과학). 여러 인지과학 관련 포럼과 세미나 운영 또는 참여 중. 홈페이지 http://cogpsy.skku.ac.kr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이 연 특별 심포지엄에 연사로 참석한 마빈 민스키(왼쪽)와 노엄 촘스키가 행사 시작을 기다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MITnews, http://web.mit.edu/newsoffice/2011/mit150-brain-ai-symposium.html
로봇이 모르는 사람의 지능과 마음 MIT의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는 최근 ‘컴퓨팅’ 섹션에서 이 심포지엄에서 저명한 인지과학자들과 인공지능학자, 로보틱스 학자들이 논한 미래지향적 관점을 요약해 보도했다. 이 보도에 필자의 생각을 보태서 재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인공지능 연구, 로봇 연구들은 잘못 진행되어 왔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연구가 무엇이든지 다 해낼 듯이 한참 발전하였지만,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잘못된 틀로 진행되어 왔다. 50여 년 동안 연구가 진행되면서 비행기를 자동 조절해 착륙시키는 일은 가능해졌지만, 사람처럼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꺼내거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고 행하는 일을 그대로 해내는 인공지능, 로봇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가, 그리고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장된 로봇의 연구가 과거에 무엇이 잘못되었었는가? 그동안의 연구는 너무 편협한 주제영역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제한된 연구비 지원에 맞춰 좁은 영역을,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을, 해외의 잔재주 피우는 로봇과 비교하여 초등·중학생 수준의 기호에 맞춰서 그 정도 수준의, 또는 그보다는 한 수 위인 재주를 보여주는, 그러한 낮은 수준의 로봇을 연구해 왔다. 잔재주는 보여주지만 그 로봇들이 과연 더 똑똑해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지능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갔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MIT의 인공지능연구실을 거의 30여 년 동안 운영했던 패트릭 윈스턴 교수에 의하면, 그동안의 인공지능, 로봇 연구가 너무 편협한 영역에서 낮은 수준의 기계적인 문제 중심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깊은 수준의 근본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았다. 인간이 영장류 동물과 차이를 보이는 그러한 지능(더 나아가서는 마음)의 본질 문제 중심으로 연구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특성은 언어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이해한다는 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지능의 더 근본적인, 본질적인 특성의 주제 영역으로 돌아가 연구해야 한다.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로보틱스를 연결해. 이 심포지엄의 다른 연사들도 이에 공감하는 주장을 전개했다. ‘잔재주 로봇’ 연구만으론 로봇기술 미래 없다 그러면 왜 지금이 인공지능, 또는 로보틱스 연구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서, 1950년대 초기의 포부를 살려 과감히, 참 ‘지능’ 구현에 도전하여야 할 시점인가? 그것은 이제야, 마음을 연구하는 ‘인지과학’, 두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지능의 기계화를 연구하는 ‘컴퓨터과학, 인공지능, 로보틱스’의 세 분야가 더 근본적이고 원대한 목표를 향하여 수렴되고 융합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학기술의 추세들이다. 분산컴퓨팅, 신경컴퓨팅 등을 포괄하여 컴퓨터의 계산 파워가 지금 급증하고 있고, 인지과학 이론도 1세대,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들어서고 있고, 뇌의 국지적 위치-기능을 밝히는 연구를 주로 하던 신경과학이 이제는 뇌의 여러 영역이 함께 수렴되어 기능하는 것을 연구 중심에 두는 시스템신경과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발전하고 있다. 다른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시드니 브래너가 말한 것처럼,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지능’의 본질, 그리고 그것을 기계로 반영하는 지능적 로봇의 구현에 새로운 이론적 틀로, 더 큰 계산 파워로 접근할 마당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뇌, 마음, 기계의 연구가 정말로 융합되어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새로운 미래 기술을 개발할 마당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즈음에 과거 20세기의 인공지능, 로보틱스 연구의 목표였던 ‘재주 부리는’ 로봇 연구로 미래 기술을, 세계적 기술을 창조할 수 있을까? 재주부리는 로봇만 연구해서는, 그런 연구만 지원해서는, 세계적 과학기술로 나아가려는 한국 로봇 연구의 미래는 없는 것 같다. 이정모 “지난 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보다도 더 큰, 그러나 과학에 든든히 바탕을 둔 패러다임의 변화, 발상의 대전환이 지금 21세기 초엽에 이루어지고 있다.”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인지과학). 여러 인지과학 관련 포럼과 세미나 운영 또는 참여 중. 홈페이지 http://cogpsy.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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