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글씨만 있는 책보다 그림이 함께 들어간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조건은 있다. 그 그림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최근 읽은 책에선 이 사진 한 컷만으로도 즐거웠다.
보면 반갑지만 그렇다고 보기 아주 힘든 동물도 아니다. 다람쥐다. 하지만, 다람쥐가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켜는, 그러니까 스트레칭하는 모습은 언제 봤겠는가.
책에서 이 사진을 보면서 다람쥐가 어떻게 체조를 하는지 처음 접했다. 뒷다리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잡고 마치 사람처럼 상체를 위로 들어올리는 저 모습.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이 사진은 또 어떤가.
이 새의 이름은 호반새다. 색깔이 아름다워 새 사진 찍는 이들이 즐겨 찍는 새다. 오렌지색 부리는 우리가 보기엔 예쁘지만 이 호반새의 경쟁자들에겐 치명적인 무기이기도 하다. 근데 지금 이 장면은 어떤 순간일까?
호반새의 프러포즈 장면이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법. 맨손으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부리에 먹을 것인 개구리를 물고 있는 녀석이 수컷이다.
하지만, 암컷은 저 녀석이 싫은 모양이다. 예물을 보기를 돌같이 하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책에 따르면 결국 저 커플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구애를 거부당해 머쓱해진 수컷은 암컷 주려던 개구리를 자기가 먹어버리며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이 사진들은 최근 읽은 한 책에 나온다. 그러나 다람쥐나 호반새에 대한 책은 아니다.
제목 그대로 까막딱따구리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보기만 해도 즐거운 저 멋진 사진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읽기 시작하니 사진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까막딱따구리란 평생 접할 일 없는 희귀한 새의 이야기가 곧 사람들 이야기 같고 소설 같고 영화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6종의 딱따구리가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딱따구리가 이 까막딱따구리란다. 바로 이 새가 까막딱따구리다.
날개를 편 모습이 멋지다. 꼬리 부분 깃털 12개가 부채처럼 펼쳐진 것도 아름답다. 까막딱따구리는 이젠 멸종된 크낙새와 비슷하다. 그리고 크낙새처럼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안타까운 새다. 천연기념물 2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책은 이 까막딱따구리 부부가 알을 낳아 새끼들이 독립하게 될 때까지의 육아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부모의 애틋한 사랑, 냉혹한 자연 속 생존경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까막딱따구리의 외모 포인트는 저 정수리의 빨간 무늬. 그런데 적의 습격을 대비할 때 등 예민해지면 저 빨간 부분이 봉긋 솟는다. 바로 이렇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지은이가 김성호 서남대 교수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 책에 앞서 동고비란 새의 육아일기를 그린 책, 그리고 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 그린 책을 펴낸 바 있다. 우리나라 새들의 생태에 대한 책을 꾸준하게 써오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이다. 그리고 학자면서도 글을 아주 쉽고 다정다감하게 쓰기 때문에 정말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새를 전공한 학자가 아니란 점이다. 그의 전공은 새도, 동물도 아닌 식물이다. 식물학자인데 새의 매력에 푹 빠져 우리나라 딱따구리 6종의 생태를 살피는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번째로 쓴 책이 이번 <까막딱따구리 숲>이다.
새를 관찰하는 것은 정말 지독한 노동이자 인내의 극한을 시험하는 작업이다. 멀리서 망원렌즈로 살펴야 도망가지 않고, 위장막으로 은밀하게 숨어야 가능하다. 김 교수는 저 까막딱따구리 부부의 삶을 기록하는데 2년을 바쳤다. 실제 숲 속에 혼자 들어가 사진을 찍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고, 그 결과 저 멋진 사진들이 나 같은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딱따구리라고 하면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딱따구리> 밖에 모르니 이 책을 통해 딱따구리에 대해 참 많은 재미난 사실들을 알게 됐다.
우선, 아버지인 수컷의 자식 사랑이 지극하다는 것. 마치 가시고기나 해마처럼 말이다. 까막딱따구리는 24시간 내내 반드시 부모 중 하나는 남아 자식들을 지키는데, 수컷이 더 오래-주로 밤에 지킨다고 한다. 암컷은 따로 둥지를 구해 밤에는 자기 둥지에서 자고 온다나.
그리고 딱따구리의 혀는 작살 역할을 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날카롭고 뾰족해 벌레들을 혀로 콕 찍어 잡는데, 일단 벌레에 혀가 박히면 그 속에서 끝부분이 펼쳐져 벌레가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고 한다. 오호~.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새들이 실은 아주 호전적이어서 까막딱따구리를 늘 공격하면서 둥지를 호시탐탐 빼앗으려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바로 이 새도 그 중 하나.
깃털 색깔과 무늬가 예뻐 이름도 예쁜 `파랑새‘다. 파랑새는 덩치는 까막딱따구리보다 작지만 빠르고 힘이 세서 늘 까막딱따구리를 괴롭힌다. 바로 요렇게.
딱따구리들은 숲 속의 건축가들이다. 이들이 파는 둥지는 둥지를 직접 파지 못하는 여러 다른 동물들에게 귀중한 집이 된다. 그래서 파랑새도 딱따구리 둥지를 늘 빼앗으려 한다고 한다. 저 사진을 보니 파랑새, 제법 흉악스럽다.
이 까막딱따구리가 파놓고 부화해 새끼가 큰 뒤 떠나는 둥지는 다람쥐나 앞서 개구리 구혼하던 호반새의 둥지로 애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 새들도 둥지로 삼는다고.
원앙이다. 부부 금실 좋기로 소문난 새다. 원앙은 원래 오리과여서 물가에만 사는 것으로 알았는데 알을 낳고 부화할 때는 숲 속 나무 둥지에 터전을 삼는다고 한다. 뜻밖에도 숲과 떼어낼 수 없는 새였다. 가장 좋아하는 먹이도 도토리라고 하니, 원앙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싶었다.
책은 까막딱따구리가 사는 강원도의 한 은사시나무 숲의 생태계도 함께 소개한다. 그래서 저 귀여운 다람쥐와 도토리를 즐기는 원앙이며 아름답지만 난폭한 파랑새 등의 이야기도 함께 펼쳐진다.
김 교수는 정감 어린 필치로 이 진귀한 새의 삶과 자연의 법칙과 숲의 변화를 들려준다. 까막딱따구리가 짝짓고 알 낳고 부화해서 새끼가 날아가기의 과정이라면 얼마나 단순할까 싶지만, 읽어보면 뜻밖의 반전과 위기와 액션 멜로 스토리가 종합선물세트처럼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을 <한겨레> 지면에 기사로 소개한 바 있다.
외국 자연 다큐 못잖은 우리 다큐를 만나고 싶다면, 그리고 사진만 봐도 즐거운 책을 원한다면, 때론 지금까지 읽었던 책과 다른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올 여름에 이 책을 한번 만나보길 권한다. 자기를 사로잡은 것에 모든 것을 바치는 정성과 열정, 장인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글 구본준 기자, 사진 김성호 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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