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황제펭귄. 사진/ Wikimedia Commons
미국 동물보호단체 연구팀, ‘펭귄 밤눈 어둡기 때문’이란 통념 뒤집어
“어둔 바닷속 먹이사냥 능숙..포식자 공포 회피 더 많은 먹이사냥 포기”

“어둔 바닷속 먹이사냥 능숙..포식자 공포 회피 더 많은 먹이사냥 포기”
남극 펭귄들은 새벽녘에 집을 떠나 바다에서 먹이 사냥을 하고는 어둠이 내리기 전에 서식처로 돌아오는 규칙적인 행동 습성을 지니고 있다. 또 남극 겨울철에는 먹이가 더 풍부한 곳을 포기하고 짙은 어둠을 피해서 조금 더 밝은 북쪽으로 집단이주를 한다. 이런 행동 습성을 두고서 남극 펭귄들의 밤눈이 어두워 어둠 속에서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들이 나오곤 했다.
그런데 남극 펭귄들은 밤눈이 결코 어둡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둠 회피 습성의 이유는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과학논문이 나왔다. 미국 야생동물보호단체인 ‘피아르비오 보존 과학(PRBO Conservation Science)’의 연구팀이 지난 6월 과학저널 <극지 생물학 (Polar Biology)>에 낸 리뷰 논문에서 “기존 문헌들을 검토하고 아델리펭귄의 다이빙 데이터를 새로 분석해보니 남극 펭귄들은 3.4룩스 이하의 어둠 속에서도 먹이를 성공적으로 포획하는 능력을 지녔다”며 어둠 회피의 이유가 시력 탓이 아니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남극에 사는 아델리펭귄들한테 수심과 햇빛을 감지하는 추적꼬리표를 달아 2만2천여 건의 다이빙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이 데이터에선 펭귄들이 대부분 초저녁의 밝기를 띠는 수심 50~100미터 바닷속에서 크릴 같은 먹이의 사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다른 연구에서 남극의 황제펭귄들은 칠흑 같은 어둠의 상태인 수심 500m까지도 내려가 먹이 사냥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으니, 남극 펭귄의 시력은 의심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펭귄들이 오히려 먹이 사냥에 더 유리할 법한 밤중을 피해 일부러 한낮에 사냥을 하는 이유는 포식자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행동 습성일 것이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펭귄의 포식자인 바다표범이 대체로 한낮에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펭귄들이 먹이 사냥을 마치고서 서식처로 돌아올 때에도 서식처에서 멀리 떨어진 데에서 뭍으로 올라와 집까지 걸어오기도 하는데, 이런 습성도 역시 포식자의 공포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수께끼였던 남극 펭귄들의 계절 이주 패턴도 마찬가지로 이런 포식자의 공포로 설명된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여름이 끝날 무렵에 서식처를 떠나 북쪽으로 이주하며, 아델리펭귄도 짙은 어둠이 깔리는 남극 겨울철에는 조금 더 밝은 곳을 찾아 북쪽으로 이주하는데, 일부러 먹이가 훨씬 적은 곳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두 펭귄 종의 이런 이주 습성은 포식자의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런 펭귄들의 행동 습성은) 먹이사냥의 터전을 정할 때에 잡아먹힐 위험 때문에 먹이사냥에서는 손해를 보는, 다른 해양 동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거래’ 가설(trade-off hypothesis)에도 부합하는 것”이라며 “이런 행동들은 그동안 남극 바다의 먹이 그물망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나 남극 펭귄들의 수수께끼 같은 이주 패턴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오레곤주립대학의 윌리엄 리플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뉴스 보도에서 “이런 연구결과는 공포의 생태학이 자연에 얼마나 폭넓게 퍼져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며 “포식자, 그리고 포식자가 만드는 공포는 생태계의 모습을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논문의 앞에 실린 초록 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오철우 기자
아델리펭귄. 사진/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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