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오전 경기 과천시 막계동 서울대공원 돌고래묘기장에서 '제돌이' 등 불법포획된 국제 보호종 남방큰돌고래를 살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고래의 노래> 동물권 생각할 맞춤한 교양서
고래 관광이 바람직한 미래, 그 전에 문화가 바뀌어야
고래 관광이 바람직한 미래, 그 전에 문화가 바뀌어야
▷ ‘착한 고래’ 먼저 멸종…고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제주도 연안에 살다 불법 포획돼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를 하던 ‘제돌이’가 무사히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나라 동물보호 운동에서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물론 야생 방사가 성공하려면 야생 적응 훈련을 잘 마치는 등 해결할 과제가 적지 않다.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제돌이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산 채로 묻혔을 때도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인권에 이어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제돌이 논란’은 연간 백만 명이 찾아오던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쇼가 임시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손꼽는 즐거운 구경거리가 이제 추억으로만 남은 채 영영 사라질 것인지를 두고 시민의 의견이 분분하다.
아쉽다는 견해도 있지만, 다수는 그저 행복해 보였던 돌고래가 사실은 갑갑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찬 생활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으니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이제 사람처럼 지능이 높은 고래라는 동물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우리 사회도 물을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상황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고래에 관한 맞춤한 교양서가 나왔다.
<고래의 노래>(남종영 지음/궁리/ 2만 5000원)는 이 분야 책으로는 드물게 고래의 생태와 분류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고래의 오랜 역사와 문화까지 두루 짚은 책이다.
<한겨레>의 환경 담당 기자이기도 한 지은이는 기후변화 취재를 위해 남극과 북극, 적도 등을 취재하면서 그 여행 경로가 바로 고래의 회유로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 아이슬란드 등에 다니면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지은이가 이 책 서문에서 “고래를 좋아했지만 고래에 대한 정보는 부족해 목마름을 느꼈다”고 밝히고 있듯이 일반인이 고래에 관한 정보를 얻기는 매우 힘들다, 이 책은 고래에 관해 일반인이 궁금해 할 만한 정보는 거의 망라해 놓았다. 고래의 종류와 진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포경의 역사와 에피소드, 고래 보호운동의 전개과정, 고래 관광과 돌고래 쇼에 관한 최근의 상황까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포경이 아니라 고래관광에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멸종위기종인 고래의 보호를 논외로 치고 경제적인 이득만 따지더라도 포경보다 고래관광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죽은 고래보다 산 고래가 인간에게 더 이득이 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과연 그런 세계적인 추세가 적용될까. 지은이는 울산 장생포 고래 단지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실감한다. 이곳에는 고래 생태와 포경 유물을 전시한 고래 박물관과 살아있는 큰돌고래가 전시되고 있는 고래 생태체험관, 국내 유일의 해양포유류 연구소인 고래 연구소, 고래 관찰 투어의 출발지 등 고래 관련 시설이 한 데 몰려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고래 복합단지이다. 그런데 이곳엔 세계 어디에도 보기 힘든 시설이 있으니, 바로 17곳에 이르는 고래 고기 전문 음식점이다.
장승포에서 고래 관찰 투어 선박을 탄다고 해도 고래를 본다는 보장은 없다. 승객의 70~80%는 고래 구경을 왔는데 정작 고래 꽁무니도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 큰돌고래가 수조 속에서 헤엄치는 고래 생태체험관이다. 제돌이를 방사한다면서 울산 남구가 ‘고래 학살’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일본 다이지의 돌고래를 사들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고래 관광객의 욕구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고래고기를 맛보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래고기는 관광 요소이다.
지은이는 장생포 고래 관광객의 의식을 조사하는 아내의 연구에 참여해 얻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소개한다. 울산에서 포경이 재개됐을 때 다시 울산에 고래 관찰을 하러 올 거냐는 질문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은 19%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스코틀랜드에서는 79%가 다시 오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오겠다’는 답은 16%, ‘올 것 같다’는 43%에 이르렀다. 포경과 고래 관찰이 양립 가능하냐는 질문에도 가능하다는 대답은 36%에 달했다.
사실 포경과 고래 관찰이 모두 괜찮다고 보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고래 관광 국가인 아이슬란드도 포경을 재개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동물을 먹지만 동시에 그 동물을 사랑하기도 하는 아시아의 문화적 특수성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개고기 논란에서 볼 수 있는 모순된 태도가 그것이다.
사실 동물을 사랑(존중)하면서 먹는 행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누이트와 같은 전통사회가 고래를 보는 시각이 그렇다. 지은이는 “고래를 사랑하면서 먹는 행위는 근대 상업 포경이 출현하기 전인 평화로운 바다의 시대에나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요즘처럼 첨단장비로 고래를 쫓고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상황은 지속가능한 포경이 가능했던 전통 사회와는 전혀 다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고래고기에 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문화는 바뀔 수밖에 없다. ‘제돌이’는 그런 변화의 신호탄일지 모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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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노래〉남종영 지음/ 궁리/ 2만 5000원
물 밖을 내다보는 귀신고래. 한반도를 회유하던 서태평양 귀신고래는 캄차카 반도 일대에 소수만 살아남아 있다. 사진=고래연구소.
물을 내뿜는 귀신고래. 1964년 5마리가 잡힌 것을 끝으로 한반도 근해에선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사진=고래연구소.
소형 고래인 상괭이. 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살고 있다. 사진=국립공원연구원.
울산의 고래고기 전문점. 사진=박미향 기자.
고래 고기 요리. 지속가능한 전통사회의 고래 사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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