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23일 서울교육대학 종합문화관에서 연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사회로 국가 연구개발 예산 투자 방향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국과위 제공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은 23일 이번 정부 들어 잇따라 구축이 결정된 가속기들이 “공론화 없이 정치인들이 결정해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대학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위원장 김도연) 주최의 ‘과학기술 100분 토론회-정부와 민간 연구개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행사에서 패널로 참석해 “가속기들이 예비타당성 검토에서는 통과했지만 과학자들이 공론화해서 필요하다고 했는지는 의문이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과학계에서 ‘가속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번 정부 들어 대형 가속기 구축사업이 잇따라 추진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 왔지만 정부 산하 중요 연구기관의 책임자가 공개석상에서 비판 발언을 하기는 이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구축됐거나 추진되고 있는 가속기는 모두 6개로 투자액만 1조4847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1994년에 구축된 포항방사광가속기(1500억원)와 경주에 방사성폐기물처분장과 함께 유치돼 올해 완공되는 경주양성자가속기(1837억원)를 제외한 포항방사광가속기 업그레이드(1000억원),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4000억원), 기초과학 중이온가속기(4560억원), 동남권 원자력의학원 중입자가속기(1950억원) 등 1조151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가속기 사업은 이번 정부 들어 잇따라 추진됐다. 특히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작동원리가 기존 방사광가속기와 깊은 연관성이 없는데도 포항으로 유치돼 지역을 고려해 구축이 결정된 ‘형님 가속기’라는 뒷공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이연희 서울여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는 “생명과학 쪽에서는 몇억원짜리 전자현미경만 있어도 행복해한다”며 “공동 연구장비 사용을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신청을 해야 하고 인터넷 신청은 개시하자마자 마감이 되는 현실과 비교해 몇백명에 불과한 사용자를 위해 수백억원짜리 가속기를 구축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현순 시티오(CTO)클럽 회장도 “이렇게 많은 가속기가 필요한지, 지역별 분산형태가 필요한지 궁금하다”며 “미국·독일·일본에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고 가속기의 운영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는지, 미래성장동력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오세정 원장은 “가속기는 성격과 쓰임이 다 다른 것으로 중입자 가속기는 의료 쪽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며 “포항가속기의 경우도 현재는 화학·물리보다 생명과학 쪽에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반론을 폈다. 그는 또 “외국으로 연구장비를 빌려쓰러 가면 실패 안할 것만 가지고 가게 돼 실패 확률은 높지만 성공할 경우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없었다”면서도 “정치하는 분들이 가시적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것만 추구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대기업과 정부 출연연에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현순 회장은 “국내 대기업들이 연구비가 부족해 국가 연구개발비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협업하는 협력업체들이 개발하는 부품들에 대한 지원 성격으로 받아 완성 뒤 구매해주는 프로세서로 진행된다는 것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세정 원장은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연구개발비를 직접 받기를 바라기도 하고, 대기업 통해 받으면 억매인다는 의견도 있다”며 “대기업에 직접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문제는 재고해봐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현재 국가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대기업에는 9%가 지원되고, 중소기업에는 12%가 지원되고 있다.
신미남 (주)퓨얼셀파워 대표이사는 “기업 연구개발 지원은 대기업·중소기업의 구분보다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며“대기업에는 조세 지원 위주로, 중소기업이나 창업 분야는 직접 투자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45%가 지원되고 있는 공공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과 관련해 신미남 대표는 “몇몇 기업 빼고 출연연은 여전히 부러운 집단이지만 민간 연구개발비의 1.3%만이 연구소에 지원돼 1.7%가 가는 대학보다도 적다”며 “훌륭한 인력이 많은데도 투자를 안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연연은 아이디어가 좋은 것,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것을 해볼 수 있도록 데드라인이 느슨한 연구소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연희 교수도 “중국과학원(CAS) 산하 100여개 기관은 더이상 과학논문인용색인(SCI)을 중요한 잣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고, 급여의 3분의 1은 고정으로, 3분의 1은 기술료로, 3분의 1은 자체 사업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우리도 연구비를 지원했으면 인력 채용까지 허용해주고 실패도 용인하는 열린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6s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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