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러낸 원두커피에서 김과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곽윤섭
[사이언스온]
미국 연구팀, 40만 명 14년간 조사 “커피, 사망위험 낮춰”
사용된 데이터의 특성, 제한된 해석 볼 때
일반화 섣불러…단정과 과신은 금물!
미국 연구팀, 40만 명 14년간 조사 “커피, 사망위험 낮춰”
사용된 데이터의 특성, 제한된 해석 볼 때
일반화 섣불러…단정과 과신은 금물!
얼마 전에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한 지인이 “커피 매일 마시면 수명 연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아주 반가운 뉴스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 “이롭다” 하여 헛갈리게 하는 연구결과 보도를 많이 봤던 터라,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지 않나 할 정도의 커피 중독자인 나조차도 별다른 반가움이나 기대감 없이 그저 링크를 따라 기사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 보니 이런저런 연구 중 하나이려니 하고 넘겨버리기엔 사뭇 무게가 다르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w England Jornal of Medicine: MEJM)>에 실린 논문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어떤 학술저널이 어느 정도의 공신력과 영향력을 지니는지 평가하는 척도 중에는 피인용지수(impact factor)라는 게 있는데, 이는 최근 2년 동안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평균 인용횟수를 구한 값으로, 과학계에서는 대체로 이 지수가 높을수록 중요한 논문 또는 학술지로 평가된다. 흔히 저명한 학술저널로 널리 알려진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피인용지수가 2011년 기준으로 각각 36.101과 31.364 점인데 뉴잉글랜드 저널의 피인용지수는 53.48 점이나 되니, 이 저널이 얼마나 중요한 논문을 싣는 학술지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50~71세 40만 명의 추적 데이터 활용
그렇다면 이번 연구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해서 뉴잉글랜드 저널에 실릴 수 있었던 것일까?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 연구와 다른 차별성과 우월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기존 연구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연구에서는 50~71세 남녀 40만 2260명을 평균 14년 동안 추적해 관찰한 데이터를 사용했다. 지금까지 조사 대상 수의 최고 기록이 9만 7753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구는 통계적으로 볼 때 훨씬 더 강력한 결과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조사 대상 수가 많을 뿐이라면 통계적 유의성의 지표인 ‘p 값’(p-value)이 높아질 수는 있어도 그 결과가 곧바로 생물학적 실제를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조사 대상자들은 단발성으로 모인 게 아니라, 지난 수 십 년 동안 조사 대상으로서 꾸준히 관리돼온 ‘유용한’ 집단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p값 (p-value): 실험용 쥐 20마리에 암세포를 주입하여 종괴를 만든 뒤에 물질 A를 물에 녹여 만든 용액과 같은 양의 그냥 물을 각각 10마리에 주사했다. 그랬더니, 그냥 물을 주입한 쥐 그룹과 비교할 때 A용액을 주입한 쥐 그룹에서 종괴 크기가 40%가량 줄어드는 효과가 관찰되었다고 가정하자. 만약 이 정도의 크기 감소가 물질A에 항암효과가 없는데도 나타날 확률이 높다면, 당연히 이런 결과는 물질A의 항암효과를 뒷받침할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A에 항암효과가 없는데도 감소 효과가 우연히 나타날’ 확률이 낮을수록 이런 가정의 실험결과는 A의 항암효과를 뒷받침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해석될 수 있다. 바로 이런 확률이 ‘p값’으로, 실험 결과의 통계적 유의성에 대한 지표로 흔히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p값이 0.05보다 작을 때 유의미한 결과로 간주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 연구는 사실 ‘미국 국립보건원-퇴직자협회 공동 식이습관과 건강 조사(NIH-AARP Diet and Health Study)’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수행됐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가 미국퇴직자협회(AARP) 회원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설문지 기반의 연구로, 식이와 생활 습관과 건강의 역학적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1995~1996년에 AARP 회원 중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지역에 사는 50~71세 남녀 350만 명한테 설문지를 보낸 것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이 가운데 56만 명한테서 연구 자료로 쓸 만한 응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설문을 수행하거나, 지역 암등록사업 데이터나 미국사회보장국(SSA) 사망자 데이터베이스(Death Master file)를 이용해 응답자의 사망 여부와 사망 원인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에서 모인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연구 논문들은 무려 160여 편에 달하며, 그 중 일부는 국내 언론에도 흥미로운 뉴스로 다뤄졌는데 “곡물 식이섬유가 사망 위험 크게 낮춘다” “동물성 지방이 췌장암 발병 높인다” “칼슘, 여성암 위험 낮춘다”처럼 건강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제목으로 보도된 바 있다.
‘커피가 사망위험 낮춰’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할 결론
이렇게 믿을 만한 연구자들에 의해서, 충분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규모의 집단을 대상으로 수행되고 신뢰성 높은 학술저널에 발표된 이번 연구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젠 누구나 커피를 마음껏 마셔도 괜찮다는 걸까? 카페인 없는 커피는 상관없는 걸까? 카페인이 든 다른 음료는 또 어떨까? 먼저 이번 연구의 결과를 간략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연구결과 1: 연령, 체질량지수, 인종, 교육 수준, 음주 습관, 흡연 습관 같은 여러 사망 원인 인자로 데이터를 보정했을 때, 하루에 마시는 커피가 많을수록 남녀 모두 유의미하게 사망에 대한 위험비(hazard ratio)가 낮아진다.
☞ 위험비(hazard ratio) : 어떤 신약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서 실험 참여에 응한 환자 2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진짜 신약을 주고 다른 그룹에는 가짜 신약을 주었다고 가정하자. 나중에 사망자를 살펴보니 신약 그룹에서는 2명이었으며 가짜 약 그룹에서는 10명이었다. 이럴 경우에 사망에 대한 가짜 약의 위험비가 1.0이라면, 신약의 위험비는 0.2가 된다. 이는 신약을 복용한 사람이 가짜 약 그룹의 사람보다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20%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 글에서는 사망 위험비가 낮아진다는 것을 ‘사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리고 표현하고자 한다.
□ 연구결과 2: 사망 원인을 세분해 살펴보면 커피 섭취에는 심장 질환, 호흡기 질환, 뇌졸중, 부상 및 사고, 당뇨병, 감염증이나 다른 요인에 의한 사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 연구결과 3: 하지만 암에 대해서는 뚜렷한 경향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관하여 증가시키지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 연구결과 4: 위와 같은 경향성은 카페인이 있느냐 없느냐와는 대체로 큰 상관이 없었다 (참고로 1953명의 참가자를 추출해 상세 설문을 수행해보니, 이들 가운데 79%는 원두커피를, 19%는 인스턴트 커피를, 1%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결과를 보면서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아마도 이번 연구의 결론을 한국에 사는 모든 한국인한테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번 연구는 미국에 사는 50~71세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데이터에서 얻은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20쪽에 가까운 설문지를 착실히 작성해 회신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응답자들은 비교적 여유 있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큰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01년 중간보고서에서 연구자들은 1995~96년 설문지에 응답한 이들의 식이습관 패턴이 미국 전역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이들은 동년배의 전체 국민에 비해 더 적은 지방과 적색 육류를, 그리고 더 많은 식이섬유와 채소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차이는 커피가 인체에 작용하는 과정에도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커피 성분에서 건강에 이로운 어떤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이 백인종보다 황인종한테서 높다면 유효 성분이 미처 작용하기도 전에 분해되어 배설될 테니, 우리 한국인이 이 연구에서 관찰된 바와 같은 커피의 효능을 누리기는 힘들 수도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인종 간 대사 효소 활성의 차이는 현재 임상약리학 분야에서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서구의 임상실험을 기반으로 결정된 적정한 약물 복용량이 아시아인한테는 충분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높아 문제가 되는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얘기했던, 이번 연구 이전에 최대 규모(9만 7753명 대상)로 기록되었던 연구가 일본에서 수행된 것이기에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2011년에 보고된 연구결과는 전체 사망과 암 사망의 두 경우만을 담고 있어, 이번 연구결과와 같은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전체 사망률과 커피 섭취량의 관계를 살펴봤을 때 남자의 경우는 하루 1잔에서 4잔 이상까지 섭취량이 늘어날수록 사망 위험도가 일관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에 여자의 경우는 하루 1잔에서는 감소했다가 2잔부터 다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결과를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4잔 이상 마실 때의 위험도가 마시지 않는 경우보다 낮고 p값이 작기 때문인지 ‘커피가 남녀 모두한테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켰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일본에서 2010년에 발표된 다른 연구결과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여기에선 커피가 여자한테만 사망 위험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결국에는 이런저런 연구결과를 접하는 우리 동양인으로서는 여전히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거야” 하고 물어야 하는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 집단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설문지 기반 연구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누군가 내게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드십니까?’라고 물으면 사실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다. ‘보통 쓰는 머그컵 기준으로 답해주세요’라거나 ‘한 잔은 몇 밀리리터입니다’ 같은 부연 설명을 해주더라도 말이다. 마시는 커피에 카페인이 있느냐 없느냐의 구분도 사실 응답자의 설문에 의해 파악된 것이니, 정확도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자면,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것은 하루 커피 섭취량과 사망 위험 감소 간의 ‘관련성’이지 ‘인과성’이라 할 수는 없다. 물론 관련성은 인과성의 한 증거이기에 이번 연구결과는 더욱 엄밀한 후속 연구를 위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커피가 정말 몸에 좋다’라는 최종 결론의 근거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커피와 건강’ 계속되는 연구, 단정과 과신은 금물
또 한 가지 주의 깊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이 연구에서 규명한 커피의 사망위험 감소 효과가 어디까지나 ‘보정된 결과’라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왜 졸린데도 잠을 억지로 쫓아야 할까? 할 일이 많으니까! 졸려서 집중이 잘 안 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흡연자인 경우에는 자연스레 담배에 손이 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일수록 흡연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본 연구에서는 이에 더해 수면 시간이 더 짧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는 것까지 확인되었다. 이런 인자들을 감안하지 않고 연령으로만 데이터를 보정할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커피 섭취량에 비례해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 우리 현실이 이 쪽에 더 가까울 것은 물론이다. 이 연구의 결론은 우리가 오늘부터 모든 건강 위험 인자를 교정하고 커피만 똑같은 수준으로 마셨을 때에나 재현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장티푸스 백신을 놔주면 도리어 장티푸스에 걸려오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의학자한테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백신을 맞았으니 괜찮아’라는 믿음 때문에, 장피푸스 위험에 경계를 하지 않아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번 연구결과를 잘못 받아들여 ‘커피를 많이 마셔도 괜찮아, 과학자들이 다 밝혀주었잖아’라고 생각하는 분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기사를 준비하며 검색하다 보니 이번 연구결과를 전하는 여러 매체의 뉴스 제목 중에는 “커피가 보약’” “어르신, 커피 많이 드시고 오래 사세요!’”라는 것도 있었는데, 커피의 무해성을 확인하는 안도감보다는 특정 연구결과를 과장하고 과신하는 게 아니냐 하는 불안감이 더 드는 것은 왜일까?
글 유승연 서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사이언스온] 캄캄한 원시우주에 처음 별이 생기던 순간
[화보] 이번 주말 방구석 탈출 해보는 겁니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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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중에도 아마 이런 댓글과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 있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출처/ 네이트
1995~1996년 처음 사용된 설문지의 일부. 조사 대상자의 기본 정보(성별, 연령, 흡연•음주 여부 등)와 함께 음식과 음료의 상세한 섭취 양상에 관한 폭넓은 질문이 16쪽에 걸쳐 담겨 있다. 출처/ NIH-AARP Diet and Health Study, http://dietandhealth.cancer.gov.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미국 국립보건원-퇴직자협회 공동 식이습관과 건강 조사’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여러 주제의 연구들이 수행돼 왔음을 볼 수 있다.
NIH-AARP 연구의 조사 대상자 인종 분포를 보여주는 파이형 그래프. 백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함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조사 대상자의 교육 수준, 체질량지수(BMI), 흡연 여부 같은 상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http://dietandhealth.cancer.gov/profil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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