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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실험실습비 어때?’ 캠퍼스여론 들어보니

등록 2012-06-15 13:38수정 2012-06-15 13:42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이공계 등록금, 인문계보다 비싼 이유 ‘실험실습비’?
하지만 실험실습에 대한 불만과 무관심 상당히 높아
“대학교의 실험 수업이 고등학교보다 못한 걸 봤을 때 그 충격이란…” 대학교의 이공계열 학과에 합격한 뒤에 대개 한 번쯤은 대학에서 이뤄질 실험 활동에 대해 환상을 품게 된다. 하얀 실험복을 입고서 피펫을 만지며 멋지게 실험하는 과학자의 모습…. 하지만 ‘충격’을 받았다는 한 공과대 학생에게 꿈과 현실은 사뭇 다른 듯하다. 사실,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실험·실습 수업에 많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수도권의 주요 대학에 다니는 이공계 학생들한테서 실험실습에 관해 들은 여론은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등록금 값을 못한다”와 같은 것들이었다.

‘실험실습 수업료 내역’ 공개하는 대학 없어

실험실습에 대한 불만이 등록금 문제와 연관되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비싼 대학 등록금이 사회 문제로 제기된 적이 있다. 이공계 대학생은 인문계열이나 사회계열 학생의 등록금보다 더 비싼 ‘차등 등록금’을 내고 있다. 그런데 이공계 등록금이 더 비싼 이유 중 하나로 이공계에서는 실험실습 수업료가 추가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2010년에는 고려대에서 “차등 등록금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학교에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행동을 이끈 ‘애주가’라는 단체의 자료를 보면, 학생들은 “실험실습 수업의 질과 비교할 때 이공계 등록금이 비싼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항의를 주도한 ‘애주가’ 단체의 조우리(25·토목공학)씨는 “학교 본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얻은 정보에서 실험실습비는 연간 20만여 원 남짓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씨는 “당시 학교 쪽은 차등 등록금의 근거로 △이공계에선 교원 1인당 학생수가 적고 △실험실습 수업료가 있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를 제시했는데, 교원 1인당 학생수에도 다른 계열과 큰 차이는 없었고 적은 실험실습비에 비해 등록금 차이는 부당하게 크다고 봤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당시에 학교 본부에 정보공개 청구로 받았다고 밝힌 고려대 학생지원부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 자료에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고려대의 이공계열 학생 1인당 실습비 평균은 20만9638원, 인문계열은 2만9550원으로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고려대 쪽은 그런 자료를 건넨 적이 없으며 자료 내용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대학이 공개하는 예·결산 내역에는 실험실습 수업료 항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대학의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다른 대학들도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박호진 건국대 공과대 학생회장은 “문과대에 비해 등록금이 120만 원 정도 비싼데, 분명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생 1인당 실험실습비가 15만~20만 원으로 책정된다고 공과대 관계자한테 들었다”며 “(등록금 차등액 중) 남는 금액은 어디로 간 것인지도 학교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준 한양대 공과대 학생회장은 “실험실습비가 비싼 실험기자재를 공동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고 들었다”며 “그러나 교수님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어 많은 학우들이 실험 수업을 듣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의 이공계열 단과대학 학생회에서는 이런 불만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별다른 움직임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조우리씨는 “대학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꺼려 움직임에 나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한 대학 공과대학 학생회장도 “솔직히 요구한다고 해서 학교가 들어줄지도 미지수다”며 “예전에 요구를 해 본 회장들도 있었지만 매번 상황이 같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겪는 실험실습에 대한 불만은 어느 정도일까? 실제로 학생들이 체감하는 실험실습의 상황은 어떨까? 물론 실험실습 수업이 잘 이뤄지고 있다며 만족하는 학생들의 반응도 꽤 있었다. 어느 대학에서는 정부 지정 연구프로젝트를 따와 최신 실험연구 장비를 풍부하게 갖추어 학생들한테 질 높은 실험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또 실험이 필요 없는 몇몇 전공(수학, 건축학 등)의 경우에는 설계나 수학, 공학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연습하는 실습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난하다는 반응이었다.

실험실습에 대한 불만과 무관심 상당히 높아

그러나 ‘실험 활동’으로 상징되는 이공계 대학에서 정작 실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례들도 있었다. 다음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공계 학생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실험 장비가 너무 오래되고 낡아 제대로 실험을 못할 때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 전공 실험이 한 학기에 6, 7번 정도 있는데, 실험을 못할 정도로 장비가 노후해서 실험 한 번을 아예 못한 적도 있어요. 그 주는 그냥 자료조사 정도로 때웠죠. 실험비용 때문에 등록금에 차이가 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돼요.”(성균관대 공과대학 ㅅ아무개씨)

“실험 수업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전공은 아니라 2학년 때 한 번 (실험 수업을) 들었습니다. 장비들 때문에 제대로 실험하지 못한 기억이 나요. 전선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 한두 줄뿐이고 나머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죠. 조교들도 학부생들한테 수업을 사실상 맡겨버려요. 학부 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던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한양대 공과대학 ㅇ아무개씨)

올해 4학년이라고 밝힌 ㅇ씨는 “이런 사정 때문에 웬만하면 실험을 듣지 않고 졸업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도 “과제가 많고 손이 많이 가는데다가 이수학점도 적어 굳이 들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ㅇ씨의 전공에서는 실험 수업이 전공 필수 과목이 아니었지만, 2009학년도 신입생부터 공학인증제도가 시행돼 실험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듣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올해 등록금이 2.5% 인하되었는데, 갑자기 2학년 실험 수업 하나가 폐지되었습니다. 수업이 폐지된 다른 연유가 없고 등록금이 내린 것밖에 없어서 다들 등록금 인하를 (실험 수업 폐지의)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항공기를 만드는 ‘감’을 기르는 데에는 이론만 듣기보다는 실험 경험이 중요해요. 저도 실험 수업에서 했던 과제를 통해 모형 비행기를 날리는 수업을 받으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교육과정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건국대 공과대학 ㄱ아무개씨)

같은 학과 연구실로 대학원 진학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ㄱ씨는 항공기를 만드는 동아리에 속해 있다고 한다. 그는 새로 동아리에 들어오는 후배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 동기들을 보면 다른 스펙이 낮더라도 학교에서 했던 실험과 프로젝트 활동 덕분에 취업문을 뚫는 걸 보는데, 수업은 실험 비중이 줄어들고 후배들은 스펙에만 몰두하니 무척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실험실습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학생들의 수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다수 학생들이 실험 수업에 만족한다고 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더 비싼 등록금의 가치를 다하지 못한다” “만족스럽지도 불만스럽지도 않고 별 관심 없이 그냥 들어왔다”고 답했다. 방문했던 모든 학교들에서 ‘(실험 장비인) 저울이 부족해 돌려썼다’ ‘시약이 모자라다’는 얘기도 꼭 한 번씩은 나왔다.

‘내실있게 쓰고, 투명하게 공개’ 왜 안 되지?

일정 수준의 실험실습 수업을 보장하는 제도로는 주요 대학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공학인증제(ABEEEK)가 있다. 공학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학인증’을 받고 졸업하려면, 정해진 학사과정에 맞춰 실험 수업을 의무로 일정 시수 이상 들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 대기업이 가산점제도를 폐지한 이후에 공학인증 포기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건국대 공과대 ㅇ아무개씨는 “커리큘럼이 너무 혹독한데다가 취업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크지 않아 공학인증 신청을 포기했다”며 “주변에도 공학인증을 취득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실험실습 수업의 상황은 전공별로, 그리고 학교별로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잘 이뤄지는 곳부터 부실과 불만이 심각한 곳까지 그 범위가 넓었다. 그러나 같은 단과대학에 속한 여러 학과 학생들은 이런 개별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모두 다 똑같은 액수의 등록금을 내고 있었다. 적어도 우리 이공계 대학생들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학교가 투명하게 알려주고 설명해주어야지 이런 현상에 대한 불만과 의문이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김정현
건국대 생명과학과 학부생, 건대신문 사회부장(2011)
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과학을 하고 싶어하는 풋내기
블로그 ddobagimedia.tistory.com 페이스북 jhkim.gak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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