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주 이화여대 약대 교수
결혼·육아로 현장 떠나는 여성
우리 사회가 관용에 인색한 탓
여성과학인 네트워크화 힘쓸것
우리 사회가 관용에 인색한 탓
여성과학인 네트워크화 힘쓸것
여성생명과학상 이공주 교수
“우리나라 과학이 발전하려면 텃밭을 넓혀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 몇 명만으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입니다. 노벨상 받을 사람이라고 키워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로레알코리아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는 제11회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공주(57·사진) 이화여대 약대 교수(대학원장)는 25일 “바둑에 여러 급수가 있듯이 과학기술도 다양해져야 한다”며 “스티브 잡스만 보지 말고 그가 잘할 수 있게 된 환경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생명과학상은 국내 여성 과학기술인 가운데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2002년 제정돼 해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이 교수는 프로테오믹스(단백질분석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암 전이나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연구해 약물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새로운 활성산소종 신호전달체계를 발견했다. 또 지난해부터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이누에스·INWES) 회장을 맡는 등 세계 여성 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누에스 회장 3년 임기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여성과학기술인대회(ICWES)를 준비하기 위해 케냐에서 열린 여성 과학기술인 지역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들이 기아와 에이즈를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회적 차별, 육아 등 세계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공동으로 부닥치는 문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아 엔지니어의 10%만이 여성이고, 이들의 절반은 무자녀, 나머지 대다수도 한 자녀뿐입니다. 반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여성 과학자 신분이면 하녀들이 몇 명씩 됩니다. 지역적 특성에 맞춘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교수는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결혼과 육아 문제로 연구 현장을 떠났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관용을 베푸는 데 인색하고 유연하지 못해서”라며 “훈련과 교육이 잘돼 있는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훌륭한 연구성과를 내기 때문에 사회가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 교수에게 도전이자 기회가 됐다. 이화여대 약대 졸업 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남자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지원하면 행정고시 합격에 준하는 3급을 줬지만 여성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도교수의 권유로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연구자로 인생의 향로를 바꿨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후과정(포스닥) 때 출산을 했는데 지도교수의 배려와 남편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며 “연구생활 중 아이를 키우는 걸 부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즐거운 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많이 들여다보기 때문에 생긴다. 남성에게도 생명, 아이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남성이 변하고 사회가 바뀔 것”이라며 “스웨덴이 육아휴직을 1년4개월 주면서 남녀가 절반씩 쓰도록 한 취지를 알 것 같다”고 했다.
미국에 남으라는 지도교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한 그에게 다가온 것은 여전한 차별이었다. 남편과 각각 다른 연구소에 지원했는데 남편은 선임연구원으로 뽑힌 반면 이 교수에게는 ‘박사후과정’을 거치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 교수는 “어렵사리 한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당시 원장님께 포스닥을 또 하라 한다는 불평을 털어놓자 ‘한국이 이만큼 잘하는 것은 누군가가 일한 것 때문이다.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마라. 우습게 보면 그때부터 추락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며 “그동안의 연구성과나 여성 과학인 모임 활동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생명과학상 시상식은 26일 오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다.
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한국로레알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