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브 사막의 모습. 야생 염소와 덤불이 보인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네게브 사막 덤불식물, 가시쥐를 ‘씨앗 도둑’에서 ‘일꾼’으로 만들어
과육과 씨앗에 별도 화학물질 보관, 둘이 만나면 독성물질로 ‘쾅’
씨앗은 식물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들여 만든 소중한 존재다. 이를 위해 식물은 씨앗을 먹음직한 과육으로 감싸 동물을 유인한다. 이때 중요한 건 씨앗을 파괴하지 않고 과육만 먹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쥐는 아주 골치 아픈 존재다. 쥐는 곡물, 즉 씨앗을 좋아한다. 어떤 쥐는 거의 전적으로 씨앗만 먹는다. 이런 쥐들과 상대하기 위해 식물은 아주 독특한 전략을 채택했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는 목서초과의 덤불식물(Ochradenus baccatus)이 산다. 과즙과 당분이 많은데다 연중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에 낙타, 야생염소, 조류, 설치류가 즐겨 찾는다. 이 사막에는 가시쥐가 살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쥐는 평소엔 씨앗을 즐겨 먹는데도 이 열매를 먹을 때면 씨앗을 뱉어내는 특이한 행동을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식물은 마치 이원 화학무기처럼 격리돼 있던 화학물질이 만나면서 독성을 뿜는 정교한 얼개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식물은 과육을 비롯해 식물체 모든 부위에 글루코시놀레이트(GLSs)란 물질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물질 자체로는 아무런 독성이 없다. 그런데 이 물질은 씨앗에 들어있는 마이로시나제란 효소와 만나면 활성화돼 독성물질로 바뀐다. 이 과정은 ‘겨자 기름 폭탄’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은 씨앗의 파괴를 막기 위해 종종 화학적 방어 수단을 동원한다. 칠리 고추가 좋은 예인데, 고추 씨앗에 든 캡사이신이란 매운 성분 때문에 포유류는 먹기를 꺼린다. 반대로 조류는 매운맛을 못 느끼기 때문에 고추 씨앗을 즐겨 먹지만 새들은 씨앗을 으깨어 먹지 않기 때문에 씨앗을 퍼뜨리는 구실만 한다.
가시쥐는 덤불에 올라가 열매를 송이째 딴 뒤 땅에서 먹었는데, 겨자 기름 폭탄이 터지는 걸 막기 위해 과육을 먹다가 씨앗이 나오면 씹지 않고 조심스레 뱉어내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씨앗의 효소가 독성을 일으키지 않도록 처리한 열매를 쥐에게 주었더니 씨앗의 20%만 뱉어냈다. 이는 그런 처리를 하지 않았을 때 씨앗의 73%를 뱉은 것과 대조가 된다. 독성만 없다면 씨앗을 주저 없이 먹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 상태에서 가시쥐는 이 식물의 씨앗을 주로 바위틈에 뱉었는데 이곳은 사막에서 햇빛을 가리고 습기가 있어 식물이 싹트기 좋은 곳이다. 또 새들이 아무 곳에나 씨앗을 흩뿌린 데 비해 가시쥐는 건천(와디)에 주로 씨앗을 버렸는데, 이곳은 식물의 발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다. 다시 말해 식물의 독성물질은 씨앗 도둑인 가시쥐를 씨앗 뿌리는 일꾼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알곡을 먹는 쥐에게서 씨앗을 뱉는 행동을 관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사막 생태계의 핵심종인 가시쥐가 공생관계의 유연성을 보여 주었다”고 적었다.
■ 가시쥐가 겨자 기름 폭탄을 피해 열매만 먹고 씨앗을 뱉는 모습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al Samuni-Blank, Ido Izhaki, M. Denise Dearing, Yoram Gerchman, Beny Trabelcy, Alon Lotan, William H. Karasov, Zeev Arad
Intraspecific Directed Deterrence by the Mustard Oil Bomb in a Desert Plant
Current Biology
http://dx.doi.org/10.1016/j.cub.2012.04.05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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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육과 씨앗에 별도 화학물질 보관, 둘이 만나면 독성물질로 ‘쾅’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사는 가시쥐가 단목서초의 열매를 먹으면서 '겨자 기름 폭탄'이 터지는 걸 피하기 위해 검은 씨앗을 뱉어내고 있다. 이 쥐는 주로 씨앗을 먹는 습성을 지녔다. 사진=미칼 사문디-블랑크, 테크니온-이스라엘공대.
겨자 기름 폭탄을 만드는 목서초과의 덤불식물. 사진=기디온 피산티,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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