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강 스키 슬로프에 자리잡은 들메나무 거목.
우이령사람들, 동계올림픽 스키 슬로프 식생조사서 거목과 희귀군락 대거 발견
사시나무, 왕사스레나무, 백작약 등…스키장 예정지 인근엔 국내 최대 신갈나무도 “와~” 눈앞을 막아선 거목 앞에서 조사단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디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큰 들메나무 두 그루가 작은 시냇가에 서 있었다. 수피가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는 한 그루는 어른 세 명이 팔을 벌려야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굵었다. 가슴높이 지름이 무려 110㎝에 높이는 25m에 이르는 큰 나무였다. 나란히 선 지름 54㎝의 거목이 오히려 아담해 보였다. 나무는 1.5m 높이에서 세 갈래로 갈라졌지만 옆으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위로 쭉 뻗어 당당해 보였다. 가지에는 어른 손목 굵기의 다래 덩굴이 네댓 개 휘감겨 있었다. 이 다래나무가 타고 오른 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사라졌을 것이다. 동행한 이병천 국립수목원 박사(식물분류학)는 “80살쯤 되어 보인다”고 했다. 일제가 가리왕산을 벌목해 숲에 틈이 생겼을 때 선구 종인 들메나무가 들어와 싹을 틔웠을 것이라고 이 박사는 추정했다. 선구 종은 수명이 짧아 대개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나무 중간이 갈라져 목재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이 들메나무는 유례없이 천수에 가깝게 살아남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그 운도 다한 걸까? 들메나무가 선 강원도 정선군 숙암리 계곡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스키 코스임을 알리는 노란 리본을 매단 들메나무 수피에 빗방울이 흘러 눈물처럼 반짝였다.
환경단체 우이령사람들은 지난 15~19일 동안 가리왕산에서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예정 구간을 답사하면서 벌채될 수목의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단이 경사가 급한 스키 슬로프 예정지를 직접 걸으면서 확인한 것은 우리나라 어디서도 보기 힘든 거대한 나무와 희귀한 수목 군락이 곳곳에 펼져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자 활강코스의 임도 아래 숲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밖인데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목이 잘 보존된 곳 못지않은 임상을 보였다. 가슴둘레 지름이 50㎝가 넘는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무리지어 나타났고 굵은 거제수나무, 물박달, 물푸레나무, 다릅나무, 마가목이 키재기를 했다. 지름 42㎝의 개벚지나무 거목은 비에 젖어 마호가니처럼 광택이 나는 수피를 자랑했다.
지름 41㎝, 높이 22m의 사시나무를 비롯해 지름이 30㎝가 넘는 초대형 사시나무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병천 박사는 “보존이 잘 된 계방산에도 이렇게 굵은 사시나무는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백두산 등에 많이 자라는 사스레나무와 거제수의 교잡종인 왕사스레나무도 가리왕산의 명물이다. 사스레나무의 잎과 거제수나무의 수피를 한 이 나무는 은회색 껍질이 벗겨져 거친 질감의 독특한 수피를 이룬다. 가리왕산의 스키 코스 곳곳에서 왕사스레나무 거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 활강경기장의 출발점인 하봉 정상 아래에는 지름 82㎝인 개체를 비롯해 신갈나무 거목이 즐비했다. 그 아래엔 대규모 철쭉 군락이 펼쳐졌다.
다시 고도를 낮추면 함박꽃나무와 희귀식물인 백작약의 무리를 만난다. 이어 주목과 피나무 거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상희 우리령사람들 전 회장은 “스키장이 건설되면 폭 30~40m 구간에 있는 모든 거목과 희귀식물은 모두 베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스키 선수가 활강을 하면서 통과하는 기문 하나하나마다 거목의 생명이 스러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리왕산에는 중봉과 하봉 사이에 남자용과 여자용 그리고 각각의 예비용 등 모두 4개의 활강 스키 슬포프가 건설된다. 그렇지만 스키 경기장의 악영향이 공사가 이뤄지는 슬로프에만 국한된다는 보장은 없다.
애초 산림청이 가리왕산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할 때 핵심구역으로 상정했던 상봉과 중봉 사이의 고산지대는 희귀식물의 보고이다. 높은 습도와 너덜지대의 풍혈 덕분에 북방계 식물 등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식물이 다수 분포한다. 스키장 건설이 이곳의 미기후를 교란했을 때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현재까지 전혀 조사된 적이 없다.
장구목이에서 숲으로 들어서자 돌 위를 주단처럼 뒤덮은 초록색 이끼와 넘어진 고목이 원시림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주목은 어린 개체부터 고목까지 두루 자라고 있었고 북방계인 거대한 분비나무가 이채로웠다.
북방계 식물이어서 설악산 정상이나 백두산의 2000m 이상 고지에서나 볼 수 있는 만년석송이 큰괭이밥과 함께 냉기가 스며 나오는 풍혈 위에 돋아나 있었다.
잣나무는 두만강과 극동 러시아에 자연림을 이루고 한반도에선 점봉산이 남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선 조림한 것이 아닌 천연 잣나무가 직경 57㎝의 거목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 정도 크기면 100년은 넘게 자라야 한다.
숲 안으로 더 들어가자 아마도 가리왕산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신갈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옹이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자란 이 신갈나무의 가슴높이 지름은 무려 130㎝로 어른 네 아름에 가까웠다.
이병천 박사는 점봉산에서 1979년 지름 150㎝짜리 신갈나무를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 등과 함께 발견했으나 이듬해 벼락을 맞아 죽은 일이 있다며, 이 거목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갈나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중량감을 느끼게 하는 이 거목은 이끼와 지의류로 덮여 있었고, 나무 중간엔 다른 나무와 일엽초가 자라고 있어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수령은 약 220년으로 추정됐다.
임도 주변엔 가는잎쐐기풀이 마치 숲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려는 듯 독물이 든 날카로운 가시를 벼르고 있었다. 가리왕산의 멋진 나무와 드문 생태계가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망가지는 것을, 작은 풀일망정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정선/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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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활강장 슬로프를 표시한 리본.
지름 110㎝의 들메나무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끼에 뒤덮인 스키장 인근의 풍혈지대. 희귀 북방계 식물이 많이 산다.
국내 최대 신갈나무로 추정되는 지름 130㎝의 신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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