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해부학자이면서 만화 작가로도 활동하는 정민석 아주대 교수. 토요일 오전 정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중간중간에 농담을 건네며 여러 모로 미숙한 우리 두 사람을 편하게 대해 주셨다.
■ 이공학도의 진로 탐색 프로젝트- 준과 정현의 인터뷰
(1) ’의대 해부학자’ 정민석 교수가 말하는 ‘의대, 의전원, 이공계’
(1) ’의대 해부학자’ 정민석 교수가 말하는 ‘의대, 의전원, 이공계’
오늘날 의과대학은 이공계의 인재들이 입학하고 싶어하는 대학으로 높은 선호도를 지니면서, 이른바 ‘이공계 인재의 블랙홀”이라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이런 인기의 상승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의대는 최근 10년 넘게 대학 입시에서 모든 이공계 학과 중에 가장 높은 입학 성적을 나타냈으며, 해마다 의대 입시 경쟁률은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비단 고등학생뿐 아니라 이제는 대학생도 대학 졸업 이후에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대 쏠림’ 현상은 이공계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로 자주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의대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학이라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요? 그들은 자기 전공이나 직업에서 어떤 점을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요? 저희 들은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공계인의 다양한 삶을 소개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제로 의과대학의 사람들을 정했습니다.
저희, 김준과 박정현은 아주대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가르치시는 정민석 교수와 서울 지역 대학의 의전원에 재학 중인 한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정 교수는 <해랑 선생의 일기>, <꽉 선생의 일기>를 그린 만화 작가이시기도 합니다. 정 교수에게서 의대와 의전원에 대한 솔직한 생각, 의사와 의학자(과학자)로서 살아가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의전원 쏠림 현상에 대한 두 분의 견해와 의견은 조금씩 달라 흥미로웠습니다(의전원 대학원생 인터뷰는 다음 번에 실을 예정입니다). 저희는 이 인터뷰를 하면서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가려 듣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도 단 하나의 정답을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의학이라는 분야의 서로 다른 환경과 위치에 있는 두 인터뷰이의 삶의 이야기를 담는 데 충실하고자 합니다. 많은 독자 님들께서 인터뷰이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시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공계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의대 또는 의전원으로 진학하기를 꿈꾸는 청소년과 대학생에게는 그 세계를 이해하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이 인터뷰가 우리 이공계의 현실을 세심하게 바라보면서 더 나은 교육과 연구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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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은 의사면허증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왜 의사가 아닌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신 건가요?
A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의사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얘기할게요. 다 알다시피 의사는 돈을 많이 벌어요. 그런데 사실 돈을 쓸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자신한테는 나쁘고 가족한테는 좋은 직업입니다(웃음). 거꾸로 과학인은 상대적으로 돈은 조금 벌지만, 돈 쓸 시간이 많거든요.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자기 시간은 자기가 요리할 수 있어요. 오늘 노는 대신에 내일 밤을 새워 일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의사가 하는 일이 아주 단순합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는 많은 것을 배워야 되고 또 복잡하고 힘들죠. 그런데 의사로 자리를 잡고 막상 진료를 하면 환자들의 증상이 비슷해서 같은 얘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야 해요. 또 의사들은 보기를 들어 아침 일찍부터 회진, 수술 들어가고 또 날마다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해요. 그런 점이 힘들어요. 만약 여행을 좋아해도 마음껏 갈 수 없겠지요. 경우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제가 볼 때에는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경우에 일 자체가 재미있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Q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니, 의사가 되는 길도 고달프고 의사의 일도 고달파, 직업의 소명감이나 자부심이 없다면 힘들 것 같습니다.
A “힘든 직업이긴 하지만, 음… ‘정도’의 문제이겠지요. 이렇게 말하면 쉬울 것 같아요. 모든 의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임상의사가 서울대 의대 임상 교수예요. 서울대병원은 크기에 비해 교수 숫자가 아주 많거든요. 따라서 교수 한 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적어 진료 부담이 적습니다. 그걸 모든 의사들이 부러워한다는 말은 뭐냐 하면, 모든 의사들이 지나친 진료 부담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이죠. 일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지나치면 재미가 없는 거죠. 게다가 의사가 하는 일이 단순 반복이거든요. 물론 임상교수들처럼 깊게 들어가서 세부 전공을 나누다 보면 복잡한 정신노동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은 단순한 육체노동입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Q 요즘은 임상의사인 의과대학 교수들한테도 연구 실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부담이 예전보다 늘었다고 하던데요?
A “네, 맞습니다. 임상 교수들은 진료, 교육, 연구, 세 가지를 합니다. 좋게 말하면 셋 다 잘하는 슈퍼맨들이고, 나쁘게 말하면 셋 다 못하는 바보들이에요. 사실 그 중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데 셋 다 잘하는 것은 정말 어렵거든요. 게다가 임상 의사들은 많은 시간을 진료하는데 쓰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연구하고 논문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도 실제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죠. 예전보다 논문 쓰는 일이 더 까다로워졌거든요. 논문 때문에 승진 못해서 괴로워하는 분들 많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결국엔 이겨내고 하지만, 여러모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Q 이제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A “고등학생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입시공부만 했죠. 외우는 건 무지무지 싫어해서 수학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대 아니면 공대에, 특히 수학을 많이 쓰는 수학과·물리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의대를 갔어요. 첫째 까닭은 요새와 마찬가지인데, 부모님이 시켰죠. 둘째 까닭은, 그때의 제 목표가 서울대 자연대 아니면 서울대 공대였는데 거기가 연세대 의대보다 성적이 높았어요. 지금 와서는 놀라운 이야기죠. 그렇다고 연대 자연대와 공대를 가기에는 성적이 남아서, 그 중간에 있는 연세대 의대를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권유와 성적에 맞춰간 거죠.
그런데 의대는 순 암기라서, 수학을 좋아한 저로서는 힘들었어요. 물론 어떤 학문이든지 이해와 암기가 있어요. 그런데 의학은 너무 넓거든요. 워낙 과목수도 많고 그 아래 세부전공도 많기 때문에 넓어지는 대신에 얕아져서 결국 암기하는 거예요. 의학교육의 별명이 ‘으악’ 교육이에요. 이해할건 별로 없고 암기할 게 많으니, 아, 너무너무 힘들어요. 결국엔 낙제도 한 번 했어요. 의대를 7년 동안 다녔습니다. 성적이 나빴어요.
Q 그렇게 의대 공부가 어렵고 힘들었는데, 게다가 원하던 공부도 아니었고요.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자연대나 공대로 편입할 생각은 없으셨나요?
A “네. 어휴~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공대로 가기는 무서웠죠. 사실 그때는 의과대학 낙제한 애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다닐 당시에는 거의 3분의 1이 낙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제적되는 학생들은 또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졸업은 시켜줬어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중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일단 졸업은 하자고 생각했어요. 졸업은 한 다음에 차라리 다른 과에 들어가서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고 본 거죠.”
Q 그러면 어떻게 해서 지금의 직업을 찾으신 건가요?
A "그러다가 졸업한 다음에 수학과 좀 비슷한 과목이 없나 하고 찾아봤죠. 그래서 찾은 게 해부학이에요. 해부학은 오랜 동안 검증된 오래된 학문이다 보니 앞뒤가 짝짝 잘 들어맞고 아주 논리적이에요. 그리고 또 해부실습을 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거든요. 많은 의학 분야에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가 어려워요. 사실 화학식 같은 것도 맨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해부학은 자신이 직접 보고 만지면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이론과 실제가 짝짝 잘 들어맞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Q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b>A 저 같은 경우는 당연히 낙제죠. 그리고 힘든 건 한마디로 시험이죠. 시신보다 시험이 무서워요. 의대는 시험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치러서 사실 학기 내내 시험기간이에요. 게다가 시험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치르는데 매번 보는 범위가 일주일에 한 번 치르기에도 많은 양이거든요.
Q 시신보다 시험이 더 무섭다는 말씀은 참 신기합니다. 이건 너무 많이 들어보셨을 질문일 것 같긴 합니다만, 정말 시신이 무섭지 않나요?
A "물론 맨 처음 시신을 접했을 땐 약간의 충격을 받죠. ‘돌아가신 분은 처음 봤다’, ‘좀 다르구나’. 근데 의대생들은 해부할 게 너무너무 많고, 그 밖에도 시신 앞에서 할 것도 외울 것도 많거든요. 저희는 시신 앞에서 느끼는 무서움 이런 것을 고급스런 생각이라고 하는데, 그런 고급스러운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
Q 시신이 무서워서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정말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A “네, 전혀 없어요.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라 얼마든지 극복을 해요. 만약에 그런 문제 때문에 의대를 포기하면 안 돼요. 또 시신을 해부하면 사람 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진료할 때는 환자를 보며 ‘얼마나 아플까’ 이런 생각하는 게 아니라 ‘왜 아플까’를 생각하죠. 그렇게 사람 몸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고, 그럴 때 해부학 실습이 도움을 주거든요.”
Q 다른 학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의대에서 공부하는 과정이 꽤 수동적인 것 같습니다. 예과, 본과 지난 이후에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로 들어가서도 이런 배움의 태도가 계속되나요?
A “레지던트를 마치면 전문의가 되는데 이전까지는 수동적이라고 봐야죠. 해마다 배우는 것이 딱딱 정해져 있거든요. 법대 같은 경우에는 저학년이 고학년보다 먼저 사법고시에 붙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의대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보기를 들어서 2학년 꼴등과 1학년 일등을 비교해도 하늘과 땅의 차이예요. 배우는 양부터 현격하게 차이날 뿐더러 학년이 달라지면 아예 새로운 걸 배워서 말이 안 통해요. 레지던트도 각 연차마다 할 수 있는 것이 딱딱 정해져 있습니다. 밑의 연차가 아무리 나이가 많고 학벌이 높아도 꼼짝 못해요. 의대는 학번, 나이, 둘 다 소용없어요. 무조건 학년이에요.
전문의가 되고 나면 이제 동업자라고 얘기하죠. 선배 동업자 후배 동업자. 그때부터 좀 맞먹겠죠. 그런데 사실 전문의가 된 다음에도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또 걸려요. 학교로 간다 해도 전문의를 딴 다음에 바로 전임강사가 되는 게 아니라 그 밑에 연구강사라는 걸 합니다. 연구강사는 다른 과로 따지자면 시간강사와 비슷한 거예요. 전임강사가 되기 전까지는 또 꼼짝 못하거든요. 나이로 치면 35세 정도 될 때까지는 꼼짝 못합니다. 학교에 있지 않아도 어디에 취직했다든지 개업을 했다든지, 역시 몇 년을 또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35세까지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Q 35세에 교수로 부임해도 정교수 전까지 또 다른 힘든 과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35세 교수가 된 다음에 한 10년, 사실은 10년도 더 걸리는 데 간단하게 10년이라고 쳐요. 45세가 되어야지 정교수가 됩니다. 45세가 되면 부교수 아니면 정교수가 되는데 그 때 되면 목에 힘을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논문 때문에 승진이 늦어질 수도 있고 스트레스가 심해요. 그러면 45세 이상이 되면 괜찮나? 제가 지금 50세거든요. 연구 세계에서 유명해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리고 교수는 명예를 먹고 산다고 말하잖아요. 교육·연구·진료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하면 손가락질을 받으니 괴롭죠. 특히 임상의사가 그런데, 그것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어요. 이렇게 해서 정교수가 되면 정년 보장을 받습니다. 그러면 65세까지 아무 탈없이 일을 할 수 있어요. 이때부턴 더 이상 승진할 게 없어서 여유가 생기죠. 전 농담으로 그래요. 정교수 되고 난 다음에 하는 일은 다 봉사활동이라고. 여유가 생기면 오히려 잘되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정교수 된 다음에 논문이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화도 마찬가지고요.”
Q 교수가 되기 전에 생각하던 것과 교수가 된 지금의 삶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A “저는 과학인은 글도 안 쓰고 사람도 안 만나면서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 조교 선생님들이 실험을 해주지 저는 실험을 안 해요. 저는 글 쓰고 사람 만나고 연구비를 따오는 그런 일을 주로 해요. 과학인들은 학회 같은 자리에서 훌륭한 분들과 친해지려고 많이 애씁니다.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만나는 건 친해지려고 하는 것인데, 친해져야 공동연구를 할 수 있거든요.”
Q 선생님, 하루 일정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A “저는 아주 아주 불규칙해요. 근무시간에 자리를 잘 안 지켜요. 보기를 들어서 근무시간에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 하면 항상 가요.”
Q 엇, 그래도 되나요?
A “과학자가 이래서 좋은 거예요(웃음). 자기 시간을 요리할 수 있거든요. 물론 강의나 회의 같은 약속은 당연히 지키지만 약속이 없다면 제 맘이죠. 그리고 외국 출장도 보통 1주 기간이면 되는데 저는 3주 정도 갔다 와요. 나머지 2주는 뭐 노는 거죠. 학회에서 술도 많이 마시면 다음날 학교에 출근 안 한 적도 있어요. 대신 노는 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 돼요. 일할 때는 밤새워 하죠. 휴대전화도 안 받고, 여기 있는 전화도 벨이 안 울리게 해놓고. 논문을 쓸 때는 아주 살벌하게 일합니다. 논문을 하루에 1시간씩 쓰면 절대 못 써요. 실험을 다 해두고 논문만 쓰면 되는 때가 오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일주일 동안 몰아서 써요. 그때에는 사무실이 ‘글 감옥’이죠. 컴퓨터에 앉아서 쓰다가 안 써지면 인쇄해서 손으로 적기도 하고, 안 되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쓰고 그래요. 여기 있는 작은 소파에서 자고, 사람들도 안 만나고, 일부러 밥도 혼자 먹습니다. 마음의 평정 같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쓰고 먹고 자고, 하루를 그렇게 보내죠.
그렇지만 논문을 쓰지 않고 실험할 때에는 ‘초식동물’처럼 지내요. 차분하게 실험만 해서 아주 평화롭고, 밤늦게 남아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요. 아무리 실험 때문에 열불이 나고 힘들어도 논문 쓰는 거에 비하면 평화로워요. 논문 쓰는 일은 전쟁이죠. 육식동물이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것처럼 무식하게 일한다고들 얘기하죠. 이것저것 보고 포기하면서 하다 보면 조금씩 나오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표지논문이 6개예요.”
Q 그런 일이 질릴 때는 없으신가요?
A “사실 이런 일이 질리기도 하지만 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웃음). 나는 직업과 취미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다 마찬가지지만 의학교육도 사실 직업교육이거든요. 만약 이게 취미라면 금방 질렸겠죠. 그러나 직업의 세계죠. 보람도 물론 있지만 돈 버는 게 첫째죠. 고층건물 유리창을 닦는 사람들, 존경하지만 전 정말 무서워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거 할 거 없으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전 합니다. 저뿐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할 거예요. 하하”
Q (두두두두두두...! 인터뷰 중에 건물 밖에서 헬기 한 대가 날아와 대학 교내에 착륙했다) 지금 아주대 안에 헬기가 날아다녀요! 무슨 일이죠?
A “이국종 선생 때문입니다. 하하, 이 이야기도 좀 해볼게요. 이국종 선생이 외과전문의를 마친 다음에 외상외과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외상외과는 병원 수입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환자가 오면 올수록 병원에서 손해를 봐요. 왜냐하면 환자한테 받을 수 있는 돈은 나라에서 딱 정해놓는데, 실제론 환자에게 받는 돈보다 약값, 인건비가 더 들어요. 그래서 병원장이 이국종 선생을 불러다 ‘어떻게 너 하고 싶은 일만 하냐’ 꾸짖었어요. 그래도 하겠대요. 또 한 번은, 이국종 선생이 일하고 있는 외상의학과는 외과와 응급의학과 중간에 있는데, 외과 과장이 불러서 ‘응급의학과에서 할 일을 왜 네가 하냐, 하지 말아라’ 꾸짖었어요.
심지어 레지던트를 안 주겠다는 데도 ‘그래도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문의가 되었는데도 날마다 당직을 서며 병원에서 자면서 일했어요. 마지막으로는 미국에서 총상을 배워오겠다는 거예요. “한국에서 그걸 배워서 뭐하겠냐”, “어떻게 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 면서 이때도 주위의 반발이 심했는데 결국 배워왔죠. 그러다 지난번에 석해균 선장이 다쳤을 때 이후로 이국종 선생이 유명해지고 환자가 무지하게 늘었어요. 학교에서 봤을 때 역적이 영웅이 된 것이죠. 외상 치료를 잘하면 다른 치료도 잘할 것이다 사실 관계가 없는데도 홍보 효과가 있었고 이게 몇 천억 원 수준이라고 해요.
제가 이때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첫째 남다른 일을 해야 한다, 둘째 한 우물을 파야 하는구나. 저는 이국종 선생 보면서 만화를 계속 그려야겠다고 깨달았어요. 지금은 이국종 선생이 애쓴 덕분에 환자와 함께 헬기까지 날아옵니다.”
Q 듣다 보니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예컨대 비싼 의대 등록금을 갚아야 하는 것도 감안하면 기초의학으로 뛰어들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게다가 기초의학을 한다고 해도 나중에 교수가 되어 연구비를 따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가 힘들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맞아요. 연구가 유행을 타요. 보기를 들면 줄기세포, 뇌과학, 그쪽으로 연구비가 쏠려요. 물론 유행인 것을 하면서도 남다른 것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해요. 근데 그게 ‘레드 오션’이에요. 한국에서 유행인 건 미국에서도 유행이고, 미국의 어마어마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연구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연구비에 딸린 소규모 연구비를 노려 많이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그 돈이 커지면서 대단한 사람이 나오기도 하죠. 그런 과정은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블루 오션’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잘 안 하는 것, 물론 연구비를 따기가 어렵지만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제가 해부학 연구를 하는데, 시신을 연속절단한 3차원 영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게 미국에서는 옛날에 하고 지금은 하지 않는 연구라 유행을 타지 않아요. 블루 오션이라 경쟁이 없으니 일등 할 수 있고, 저 같은 경우엔 SCI(과학논문 인용색인) 목록에 오른 학술저널에 논문을 스무 편쯤 꾸준히 쓸 수 있기도 했고요. 어렵긴 해도 설득하는 것이 과학인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어려운 질문이었는데 제가 막 대답한 것 같네요(웃음).
등록금 얘기로 넘어가면, 의대보다는 의전원이 비싸죠. 의대가 연 1000만 원이면 의전원은 연 2000만 원이니까요. 그래도 나중을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부모님 능력에 따라 다르고, 능력이 안 되는 경우에는 갚을 생각하면 심각하죠. 그래도 능력이 있으면 괜찮은 투자라고 생각해요.”
Q 외부 지원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을 때는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사실 기초의학을 하고 싶어서 의전에 가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런 학생의 상당수도 결국 너무 비싼 등록금을 갚기 위해 임상 분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도 있다고 하거든요. 유럽 의대의 등록금은 100만 원이 안 되는 수준이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의사가 된다면 돈 걱정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 흔히 의사에게 강요만 하는 인술을 펼치기 쉬워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개인에게 모두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구조적으로 도움을 줘야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A “맞는 논리에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유럽은 등록금도 싸고 입학도 쉬우나 제적이 아주 많아요. 그리고 돈 얘기를 아주 잘 했는데 어떻게 보면 사실 의대를 졸업하면 뭘 해도 풍족합니다. 제가 의대 졸업생 동기 중에서 가장 조금 법니다. 그렇지만 다른 학과 교수님 수준으로 벌지요. 따라서 결론은 소신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돈과 시간 등등을 모두 따지면 기초의학 하는 게 밑지는 장사 같은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만약 자연대 졸업하고 의과대학 졸업하고 기초의학 전공하면, 많은 걸 겪어봐서 큰 일에서 관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면 늦게 시작한 만큼 큰 일을 할 수 있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더 중요해요. 단점이 있는 것만큼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의전원과 의과대학에 쏠리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저는 의·치전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봐요. 물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게 마땅한데,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흘러가는 게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전원 학생들도 말도 잘 통하고 그래서 예뻐하죠.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쏠림 현상이 문제라고 봅니다. 첫째 까닭은 자연대학을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건 공대, 자연대 졸업생들이 애쓴 덕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계속해서 후속 공학자, 과학자들이 나와야 하는데, 똑똑한 학생들이 모두 의전 쪽으로 너무 몰리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둘째로 돈과 시간의 소모가 너무 큽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등록금이 정말 비쌉니다. 나이도 의대로 들어온 학생보다 보통 5살 많은 상태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러면 거의 마흔 살이 되어야 전문의가 되는 겁니다. 정말 똑똑한 학생들은 공대, 자연대로 가야 합니다. 의대에서는 외우고 적용만 잘 하면 되니까 한 반 40명 중에 5등 정도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저희한테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A “멋있게 살아야 합니다. 의사로 치면 이국종 선생처럼 말입니다. 얼마나 멋있어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훨씬 멋있게 살아야죠. 저도 그렇게 멋있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꿈과 목표를 더 높은 데 두는 겁니다. 꿈을 높은 데 두면 설사 꿈은 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걸 이룰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게 성공이라는 얘기를 들을 겁니다. 그래서 꿈을 높게 가지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사진/박정현, 김준]
▷ '준과 정현의 진로탐색 프로젝트 인터뷰'는 의학계열 관계자 2명, 공학계열 관계자 5명, 자연과학계열 관계자 5명 순으로, 총 12편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김준과 박정현은 <사이언스온>의 과학저널리즘 동아리 '과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정현 대전여자고등학교 3학년
우주가 마냥 경이로워, 천문학도의 꿈을 품고 문과에서 이과의 세계로 발을 담근 여고생. 소통을 꿈꾸며 ‘뭣 모르고’ 지원했다가 ‘얼떨결에’ 사이언스 온 필자가 되었다. 이메일 : jhpark1879314@gmail.com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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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보] 우산의 수난시대
만화 ‘해랑 선생‘ 60화, 임상의사의 직업에 관해.
만화 ‘‘아의 선생‘ 71화, "임상의사의 어려움".
만화 ‘해랑 선생‘ 5화, "시신보다 시험이 더 무섭다".
정민석 교수 연구실에 걸려 있는, 발표 논문이 실린 학회지들. 지금까지 6개의 표지논문을 쓰셨다고 한다. 정 교수가 그린 만화책 도 걸려 있다.
정민석 교수가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올리는 만화 ‘꽉 선생의 일기‘의 제작과정에서 그린 밑그림. 지금까지 그린 만화는 사이언스온뿐 아니라 국립과천과학관에도 전시되고, 만화과 과학커뮤니케이션에 관해 학회에서도 발표하고 논문으로도 발표했다고 한다.
우주가 마냥 경이로워, 천문학도의 꿈을 품고 문과에서 이과의 세계로 발을 담근 여고생. 소통을 꿈꾸며 ‘뭣 모르고’ 지원했다가 ‘얼떨결에’ 사이언스 온 필자가 되었다. 이메일 : jhpark1879314@gmail.com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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