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엠비시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 이공학도의 진로 탐색 프로젝트- 준과 정현의 인터뷰
(2) 어느 의전원 대학원생의 '솔직담백한 고민, 현실, 꿈'
“공생은 지곡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포스코(捕手固) 밑에 닿으면, 고속버스 터미널 위에 언덕이 서 있고, 경주를 향하여 포항공대가 있는데, 그 근처 학생들은 밋딧릿에 관심만 있었다.” – “공생(工牲)전 :장인 공, 희생할 생” 중에서 “외상환자를 외면하는 걸, 의사들 개인이나 일개 병원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돼요. 의대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사명감이 넘치는 친구들 많아요. 그걸 못 갖춘 우리나라 시스템이 문제지.” - 엠비시 드라마 <골든타임> 중에서 박지원의 <허생전>을 패러디한 '공생전'은 공대생(工大生)이 아닌, 희생한다는 의미의 공생(工牲)을 제목으로 하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씁쓸한 현실의 이공계를 묘사한 공생전은 2008년 뭇 이공계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죠. 그리고 4년이 지난 현재에도 상황은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공계 인재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밋딧릿핏[의전원 입학시험(MEET), 치전원 입학시험(DEET), 법전원 입학시험(LEET), 약학대학 입문자격 시험(PEET)]이라 불리는 각종 시험을 치르며 과학기술계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이공계에 다니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과학기술에 매진할 것을 종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공계 자체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공계 대학생들은 대체 이공계의 어떤 문제 때문에 의전원 등으로 향하는 것일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의대 관계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주의 깊게 들었던 부분은, 직업의 안정성과 연구의 자율성이었습니다. 저 또한 금전적인 문제로 한 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특히 와 닿았습니다. 또한 기술, 더구나 과학까지도 경제성장의 도구로 바라보는 상황은 연구의 자율성을 저해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분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상이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문제점입니다. 여건 상 드라마 <골든 타임>에서 볼 수 있던 의료계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편협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인터뷰로 인해 조금이나마 이공계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질문1 – 과거
Q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전공하셨더군요. 색다른 이력이 놀라운데,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왜 그 두 학과를 정하셨나요? A “아버지께서 요새 말로 ‘얼리어답터’이셔서 컴퓨터를 빨리 접했습니다. 여덟 살 때 286 컴퓨터, 그 다음 해에는 컬러 모니터가 달린 386컴퓨터, 그 다음 해엔 PC 통신을 시작했을 정도니까요. 어릴 때부터 접하다 보니 어쩐지 친숙해졌고 해커나 프로그래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됐죠. 그런 마음에 불을 지른 게 드라마 <카이스트>였습니다. 공부, 토론, 해킹 모두 치열하게 하며 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멋있었어요. 중학교 2학년 즈음 방영했는데 ‘앞으로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참 많을 시기여서인지 속된 말로 확 꽂혀버렸습니다. 저 학교 컴퓨터공학과에 가야겠다, 하고요. 친숙했던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잘 하고도 싶었고, 졸업하면 취직도 잘 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실제로 포스텍과 카이스트 중에서 포스텍으로 정한 이유도 홈페이지에 ‘취업률 100%’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에요.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요.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생명과학에 꽂혀버렸어요. 포스텍은 1학년 때 학과에 상관없이 물리, 수학, 화학, 생명 등을 전부 다 배우는데, 일반생명과학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고등학교 땐 생물은 암기과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대학교에 와보니 세포부터 군집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를 넘나들며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일반생명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과 수업들도 역시나 재미있었고요. 생명과학과로 전과를 할까 고민했지만, 복수전공이 멋있기도 하고 차별성 등의 이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같은 융합 학문 이야기도 많이 나오던 때여서 복수전공을 하게 됐죠.” Q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배우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 있나요? A “처음에 힘들었던 건, 컴공과 생활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였어요. 보통 ‘컴퓨터공학’하면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프로그램 짜는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건 ‘기술’일 뿐, 교수님들께서 강조하시던 수학이나 철학에 가까운 학문으로서의 컴퓨터공학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가령 프로그래밍 방법론에 대한 원론적인 수업을 하다가, 정작 숙제로는 느닷없이 게임을 짜오라고 해요. 수업에서 배운 개념으로 설계는 할 수 있지만, 그림을 넣고 움직이게 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배우지 않고 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그래도 전부 혼자 자료 찾아가면서 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고생 끝에 완성했을 땐 정말 짜릿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진 너무 막막하고,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니 마음 고생이 정말 심했습니다. 제 머리 탓도 하고, 실력도 계속 탓하게 되는 등 자괴감만 깊어졌죠. 그에 비하면 생명과는 착실히 수업 듣고, 교재 읽고, 궁금한 게 생기면 논문이나 다른 책 찾아가면서 공부하면 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실험은 힘들었어요. 생명과 실험은 살아 있는 세포나 1 μL (1 mL의 1000분의 1) 정도의 아주 미세한 양의 시료를 다루는데, 그렇다 보니 굉장히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조교님들께서 도와주시긴 하지만, 잘못하면 일주일 동안 했던 실험이 말짱 도루묵이 되기도 하거든요.” Q 현재는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계신데, 학부 때는 대학원 갈 생각이었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려고 했나요? A ”원래는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을 잘 접목시켜보고 싶었는데, 국내보단 학제간 융합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미국 쪽의 선택지가 훨씬 다양했거든요. 보통 그 둘을 같이 한다고 하면 마이크로 어레이 데이터(Microarray; 많은 수의 유전자에서 각각이 발현되는 정도 등을 측정하는 기술)나 네트워크 분석하는 쪽을 많이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님 밑에서 실험실 생활을 하고 실험 수업을 들어보니, 이쪽은 생명 관련된 자료를 다룰 뿐 실제 하는 일은 수학이나 통계학에 가깝더라고요. 대신에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구조 예측 쪽이었어요. 후생유전학(Epigenetics) 또는 진화 쪽에서 서열 수준으로 생각했을 땐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구조 수준에서 보면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런 건 막연한 생각이어서 실험실 찾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대학 진학은 바로 그 ‘대학’을 고르는 건데 대학원 진학은 ‘실험실’을 골라야 하니까요. 제가 아는 분께서 ‘생명과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일반생명과학책 전체를 즐겁게 읽은 사람이 어떤 단원, 어떤 소제목 하에 실려있는 문장 하나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셨어요. 워낙 깊고 좁게 연구하다 보니 어떤 실험실을 고를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하는 거죠. 물론 박사과정은 어차피 연구자로서 역량을 쌓는 수련 과정이니,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는 박사 학위를 딴 다음부터라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하실 수도 있어요. 사실 당시의 제게 그런 이야길 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더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선택한 길이 나만 재미있을 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하나를 택해서 깊게 파고들어간 다음에도 지금처럼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 견지에서 넓게 볼 수 있을까? 내가 단순히 책 읽고 이해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학부식 공부가 아닌 직접 연구 주제 잡아가며 맨땅에 헤딩하는 대학원식 공부에 적합한 사람인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일자리를 잡을 수는 있을까?’ 온갖 고민이 넘쳐났고 그만큼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졸업논문 쓰면서 입시 준비를 병행하니 유학 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결정적으로 장학금도 떨어졌어요. 결국엔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이럴 때 대개 유학 가는 사람들은 일단 석사를 가거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데, 저는 의전 진학을 택했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솔직히 저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한 과학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돼요. 제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좀 인정해줬으면 좋겠고, 돈도 좀 벌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는 생명과학이 좋고, 정말 재미있어요. 이 두 개를 접목시키려면 결국은 의생명과학 쪽이거든요. 그렇다면 직접 배워본 뒤에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보험 성격도 있어요. 제가 연구자 체질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제가 생명과학을 좋아한다는 게 그냥 일반생명과학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연구자를 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라도 어쨌든 의전 졸업하고 국시(의사국가시험)를 치면 적어도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잖아요. 일반 대학원이었다면 아마 조금 더 막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방금 ‘보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 같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쪽에선 실패했을 때 뒤에서 받쳐줄 만한 최저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이 거의 없잖아요. 예컨대 어떤 새로운 연구에 도전한 연구자가 아무리 성실히 연구를 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는 거고, 성실히 했다는 것이 입증되면 실패했더라도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해주는 체계가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도입하려는 것처럼요. 그런데 정부출연연구소에서도 이런 제도의 도입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추세이며, 더욱이 대학에서는 그런 얘기가 잘 없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대학원생으로서 도전적인 연구를 한다면 저에게 주어지는 건 오히려 1, 2년 늦춰지는 졸업. 정말 새롭고 궁금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연구비를 따오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은 둘째 치더라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A “물론 대학원생이 아닌 학부생으로서 1년 반의 실험실 생활 동안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에 지나지 않아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낀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구를 이만큼 돈 넣으면 이만큼 결과 나오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있는 것 같아요. 과학과 기술을 하나로 묶어서 얘기하고, 둘 모두를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서 인식하고요. 그렇다 보니 연구비를 딸 때 문제가 되죠. 실험실에서 귀동냥해보면 맨날 과제 쓴다 그러거든요. 실제로 하는 실험은 세포가 내뿜는 게 무엇인지 연구하는 수준이어도 연구 제안서에는 이걸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쓰죠. 물론 말도 안 되게 대단한 주제여서 썼다 하면 CNS(영향력이 큰 학술저널인 <셀>, <네이처>, <사이언스> 제호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에 나올 것 같은 주제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CNS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CNS에 나오는 연구만 소중한 게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CNS 쓰는 실험실이 아니라 기초적인 자료를 연구하는 곳에 있다면, 졸업하고 나서 좋은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의전은 어쨌든 졸업하고 국시 붙으면 의사 면허증 나오잖아요. 의사도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과가 무지무지 많아서 연구도 다양하고요. 기초뿐 아니라 임상 쪽 교수님이라고 해도 중재연구(Translational research; 분자생물학 등 기초 연구에서 이뤄진 성과를 임상에서 쓸 수 있도록 응용하는 연구)를 중요시하면 따로 실험실 운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똑같은 기자여도 의사 면허 가지고 있으면 의학전문기자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게 의대치대법대약대 등을 졸업해서 가질 수 있는 전문직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또 나중에 기초 쪽으로 가거나, 의대 교수 되어서 연구실 운영하면, 결국에 하는 일은 생명과 쪽이나 이쪽이나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요새 물리 화공 소재 등에 다 생명 연구 하는 사람 있는 것처럼 돌아가는 길 중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봐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또 당장에 제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거고요.” Q 의전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공무원 시험 치는 생각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학부 때 동기들 중에서 컴공과 동기는 회사나 대학원 많이 간 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다 의전 치전 약전 로스쿨 변리사 공무원 등으로 빠졌죠. 기본적으로 좀 더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고 보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몰리는 건, 특히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옛날부터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인데 뭔가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공계에 불리한 소리란 건 인정하지만 현실이 그렇잖아요. 의대와 의사집단이 제공하는 것 같은 견고한 체계를 화학 생명 이쪽 커뮤니티는 제공하지 못할 테고, 국가 차원에서도 해줄 의지가 없어 보이니까요. 저는 이런 보험적 성격에 더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나서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 의전을 택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저는 이공장(이공계 국가 장학금) 받고 학교를 다닌 뒤 의전으로 ‘먹튀’한 사례지만요. 사실 등록금을 안 냈기 때문에 컴공과 생명 복수전공 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제 꿈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하고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네 병원 가서 성형외과 차리면 욕먹어도 싸겠지만, 저는 앞으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제가 해왔고, 앞으로도 밟을 커리어는 독특하기에 효용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Q 듣다 보니, 생명과학 연구의 매력을 감소시킨다는 불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결국 생명과학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의전원으로 간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A “첫 번째에 대해선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이란 얘기밖에 할 게 없네요. 제가 그게 불러일으킬 파급 효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할 지위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사람이 하는 소리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겠어' 싶으면 무시하면 되는 거고요. 두 번째에 대해서는, 의전 간 사람은 결국 의사되러 간 거라는 생각은 편협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에 저만 해도 의전에서 지금까지 새로 배운 것들 덕분에 생명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새로운 비전이 생겼으니까요. 다시 말해 생명과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의전에 간 게 아니라, 제대로 하고 싶어서 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질문2 – 현재
의대생과 의전생 모두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을 다니지만, 의전은 본과부터 바로 시작하게 됩니다. 흔히 나이에 상관 없이 의전 입학 시험을 치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요. 인터뷰이의 말에 따르면, 의대생과 의전생의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나진 않으나, 보통 상위와 하위에 의대생이 분포하고 의전생은 골고루 분포한다고 합니다. Q 대학 시절과 비교해서, 또는 그때 예상했던 의전에서의 생활과 비교해서, 현재 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A “저는 사전 지식 없이 왔어요. 월화수목금 매일 수업이 있는 고등학교 시간표라는 것도 몰랐을 정도니까요. 정말 고등학교처럼 교실에 앉아 있으면 160명 앉아 있으면 교수님만 바뀌며 들어와요. 시간표는 고등학교처럼 50분 수업하고 10분 쉬게 되어 있어요. 보통 오전에 3교시 수업을 하고, 오후에 수업이나 해부, 실험을 4-5시까지 합니다. 학업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요. 포스텍에서 4년 동안 인쇄한 분량과 비슷한 정도로 작년 한 해에 인쇄했을 정도니까요. 그나마 처음에는 종이 한 장에 네 쪽을 인쇄하다가 여덟 쪽에 양면인쇄까지 한 수준인데도 그렇더라고요. 잉크 카트리지 값이 너무 많이 들어 2학년 때 무한잉크를 쓸 수 있는 프린터를 새로 살 정도니까요. 그래도 진심으로 재미있게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만약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대부분 어떻게든 따라가는 것 같지만 이렇게 공부를 해도 유급하는 사람은 있어요. 한 학년 160명 중에 두세 명은 나오는 것 같고 중간에 휴학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합치면 대여섯 명 정도로. 그만큼 힘들죠.” Q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배우면 제대로 익히기 힘들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시험 끝나면 머릿속에서 다 빠져나가긴 하는데, 일단 한번 봤던 건 최소한 어디서 찾아봐야 할지 알고, 다시 봤을 때 더 잘 이해되니까 의미가 없진 않죠. 요새는 외우기만 할 필욘 없다고 생각해서 커리큘럼 변화시키려고 하는 교수님도 많고요. 그리고 의사를 교육시킨다는 목적이 있고, 역사가 오래된 학문인 만큼 커리큘럼이 훨씬 체계적이에요. 이론과 실습의 연계도 강하고, 믿고 따라가면 뭔가 될 수 있다는 든든함도 듭니다. 이처럼 커리큘럼도 탄탄하게 짜여 있고, 확고하게 보이는 미래가 있어요. 바로 옆에 병원이 있고, 거기서 환자 보고 계신 교수님께서 수업에 들어오시니,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뭘 할 수 있겠구나, 딱 느껴지죠. 반면 학부 때는 막막했어요. 이를테면 의대 교수가 하는 일은 병원이라는 크고 견고한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반면, 생명과에서 교수가 되려면 똑같은 교수가 될 순 없는 거잖아요. 새로 실험실을 꾸미며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해야 하는 걸 테니 아무런 길잡이가 없어 막막할 것 같았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의대 의학과 생명과학이 다를 수밖에 없는 차이겠죠. 계속 연구를 하다 보면 그것도 뻔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그런 새로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이 없던 것도 대학원을 택하지 못한 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의사 되면 대부분 기존에 배운 대로만 일을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지루하고 하는 일도 단순하다고 하던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제가 아직 의사가 아니니까 의사가 되어서 하는 일에 대해서 뭐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의대 공부가 되게 수동적이고 많이 외워야 되는 건 맞아요. 그런데 학부 때도 그리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수업을 받아본 적은 없거든요. 생명과는 어차피 책 읽고 시험 쳤고, 컴공과는 계속 코드 짜고 코드 짜고 코드 짜고. 어차피 공부는 혼자 하는 거 아닐까요? 반면 의전에서 하는 공부는 맥락도 있고, 하다 못해 합목적성이라도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외우긴 좋아요. 물론 외우는 양은 훨씬 많습니다. 예컨대 생명과에서는 생화학 책 한 권을 두 학기 동안 배우는데, 여기서는 책 한 권을 두 달 반 만에 다 끝내니까요. 또 제 생각엔, 이제 의사가 더 이상 단순히 테크니션(기술직)만은 아닌 듯 합니다. 요새는 생명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덕분에 나날이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고, 그에 따라 치료방침도 개선되고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오늘날의 의사는 단순히 이전에 배웠던 치료법을 시행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본인의 임상경험을 체계화해서 치료방침 개선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네 병원이랑 대형 병원 의사 간에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요. 암 같은 경우엔 특히 그러합니다. 암이란 게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부위마다 다 다르고 또 같은 부위에 생긴 암이라도 형태적•분자생물학적 분류에 따라 다른 자연 경과 및 치료 반응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그러니 암환자를 치료한다고 하면 그게 절대 단순 반복 작업일 수가 없는 거죠.” Q 그렇다면 의전에서 기초의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A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 학년에 한두 명씩은 반드시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의 경우 본과 4학년 마치고 인턴 들어가는 일반적인 방법 외에 의전생 대상으로 운영하는 Md. Ph.D 프로그램이 있어요. 본과 2학년까지 수업 들은 다음 몇 년 간 풀타임으로 실험실에서 생활하며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그 뒤에 3-4학년 실습을 도는 거죠. 그러면 졸업할 때 MD랑 Ph.D 동시에 주는데 선배들은 한 학년에 한두 명씩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질문3 – 미래
Q 현재의 목표, 꿈은 무엇인가요? A “일단은 유급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전공의 과정은 병리과에서 하고 나중에 병리과 교수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면서 학생들 교육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병리학은 환자의 조직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암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암 덩어리인 것처럼, 조직은 어떻게 보면 그 질병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리학은 어떻게 보면 질병의 본질을 보는 학문이란 생각도 들고요. 조직의 거시적/미시적 구조 및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최선의 치료방침을 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병리과가 하는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짜인 틀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렇게 수행한 연구 결과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환자분들께 도움되는 방향으로 적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또 앞에서도 언급한 이공장은 세금에서 온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갚고 싶어요. 의대 병원이라는 곳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니까, 제가 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자체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외에도 글 쓰고 봉사 다니는 등 다방면으로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저는 제가 받은 많은 은혜와 도움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거니까, 저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러한 밑바탕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돈에 관한 질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의학전문대학원의 등록금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일반적으로 국립대가 사립대보다 저렴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선 서울대 의전이 가장 등록금 부담이 덜한 축에 속하고요. 하지만 등록금만으론 뭐라 말하기 힘든 게, 장학금 수여 비율이 학교마다 다 다릅니다. 이를테면 재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교도 있거든요. 자세한 정보는 대학정보공시센터(http://www.academyinfo.go.kr/)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그런 문제 외에도,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의 비싼 등록금 등이 졸업 후 임상의학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걸림돌이 되진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A “글쎄요, 그런 문제에 대해선 제가 아직 뭐라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초에 가고 싶은데 등록금이 부담되어서 임상을 간다는 사례도 아직까진 주위에서 들어본 적이 없고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셨으면 합니다. A “만약에 본인이 굉장히 생명과학을 좋아하고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들, 내가 배운 반응이 왜 그리고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또 우리 몸 모든 세포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등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본과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의대에서 접하는 환자는 질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당연히 인간에 대한 윤리가 필요하겠죠. 어쨌든 별다른 목적의식 없이 의사될 생각만으로 의전에 들어오면 학업량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고, 반대로 확고한 생각이 있다면 기회의 땅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겁게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 실제 환자 분들을 대할 일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받았던 그 이상을 이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김준]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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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 의전원 대학원생의 '솔직담백한 고민, 현실, 꿈'
“공생은 지곡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포스코(捕手固) 밑에 닿으면, 고속버스 터미널 위에 언덕이 서 있고, 경주를 향하여 포항공대가 있는데, 그 근처 학생들은 밋딧릿에 관심만 있었다.” – “공생(工牲)전 :장인 공, 희생할 생” 중에서 “외상환자를 외면하는 걸, 의사들 개인이나 일개 병원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돼요. 의대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사명감이 넘치는 친구들 많아요. 그걸 못 갖춘 우리나라 시스템이 문제지.” - 엠비시 드라마 <골든타임> 중에서 박지원의 <허생전>을 패러디한 '공생전'은 공대생(工大生)이 아닌, 희생한다는 의미의 공생(工牲)을 제목으로 하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씁쓸한 현실의 이공계를 묘사한 공생전은 2008년 뭇 이공계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죠. 그리고 4년이 지난 현재에도 상황은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공계 인재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밋딧릿핏[의전원 입학시험(MEET), 치전원 입학시험(DEET), 법전원 입학시험(LEET), 약학대학 입문자격 시험(PEET)]이라 불리는 각종 시험을 치르며 과학기술계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이공계에 다니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과학기술에 매진할 것을 종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공계 자체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공계 대학생들은 대체 이공계의 어떤 문제 때문에 의전원 등으로 향하는 것일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의대 관계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주의 깊게 들었던 부분은, 직업의 안정성과 연구의 자율성이었습니다. 저 또한 금전적인 문제로 한 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특히 와 닿았습니다. 또한 기술, 더구나 과학까지도 경제성장의 도구로 바라보는 상황은 연구의 자율성을 저해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분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상이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문제점입니다. 여건 상 드라마 <골든 타임>에서 볼 수 있던 의료계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편협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인터뷰로 인해 조금이나마 이공계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료사진. 가톨릭의대 의학전문대학원의 2012년도 입학미사와 착복식 장면. 이 대학에서 착복식은 의학도한테 의사를 상징하는 흰 가운을 처음 입혀주는 행사로 치러진다. 출처/ 카톨릭의대 의학전문대학원 홈페이지에서, 사용 허가를 받아 게재함
질문1 – 과거
Q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전공하셨더군요. 색다른 이력이 놀라운데,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왜 그 두 학과를 정하셨나요? A “아버지께서 요새 말로 ‘얼리어답터’이셔서 컴퓨터를 빨리 접했습니다. 여덟 살 때 286 컴퓨터, 그 다음 해에는 컬러 모니터가 달린 386컴퓨터, 그 다음 해엔 PC 통신을 시작했을 정도니까요. 어릴 때부터 접하다 보니 어쩐지 친숙해졌고 해커나 프로그래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됐죠. 그런 마음에 불을 지른 게 드라마 <카이스트>였습니다. 공부, 토론, 해킹 모두 치열하게 하며 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멋있었어요. 중학교 2학년 즈음 방영했는데 ‘앞으로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참 많을 시기여서인지 속된 말로 확 꽂혀버렸습니다. 저 학교 컴퓨터공학과에 가야겠다, 하고요. 친숙했던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잘 하고도 싶었고, 졸업하면 취직도 잘 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실제로 포스텍과 카이스트 중에서 포스텍으로 정한 이유도 홈페이지에 ‘취업률 100%’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에요.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요.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생명과학에 꽂혀버렸어요. 포스텍은 1학년 때 학과에 상관없이 물리, 수학, 화학, 생명 등을 전부 다 배우는데, 일반생명과학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고등학교 땐 생물은 암기과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대학교에 와보니 세포부터 군집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를 넘나들며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일반생명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과 수업들도 역시나 재미있었고요. 생명과학과로 전과를 할까 고민했지만, 복수전공이 멋있기도 하고 차별성 등의 이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같은 융합 학문 이야기도 많이 나오던 때여서 복수전공을 하게 됐죠.” Q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배우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 있나요? A “처음에 힘들었던 건, 컴공과 생활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였어요. 보통 ‘컴퓨터공학’하면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프로그램 짜는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건 ‘기술’일 뿐, 교수님들께서 강조하시던 수학이나 철학에 가까운 학문으로서의 컴퓨터공학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가령 프로그래밍 방법론에 대한 원론적인 수업을 하다가, 정작 숙제로는 느닷없이 게임을 짜오라고 해요. 수업에서 배운 개념으로 설계는 할 수 있지만, 그림을 넣고 움직이게 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배우지 않고 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그래도 전부 혼자 자료 찾아가면서 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고생 끝에 완성했을 땐 정말 짜릿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진 너무 막막하고,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니 마음 고생이 정말 심했습니다. 제 머리 탓도 하고, 실력도 계속 탓하게 되는 등 자괴감만 깊어졌죠. 그에 비하면 생명과는 착실히 수업 듣고, 교재 읽고, 궁금한 게 생기면 논문이나 다른 책 찾아가면서 공부하면 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실험은 힘들었어요. 생명과 실험은 살아 있는 세포나 1 μL (1 mL의 1000분의 1) 정도의 아주 미세한 양의 시료를 다루는데, 그렇다 보니 굉장히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조교님들께서 도와주시긴 하지만, 잘못하면 일주일 동안 했던 실험이 말짱 도루묵이 되기도 하거든요.” Q 현재는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계신데, 학부 때는 대학원 갈 생각이었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려고 했나요? A ”원래는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을 잘 접목시켜보고 싶었는데, 국내보단 학제간 융합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미국 쪽의 선택지가 훨씬 다양했거든요. 보통 그 둘을 같이 한다고 하면 마이크로 어레이 데이터(Microarray; 많은 수의 유전자에서 각각이 발현되는 정도 등을 측정하는 기술)나 네트워크 분석하는 쪽을 많이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님 밑에서 실험실 생활을 하고 실험 수업을 들어보니, 이쪽은 생명 관련된 자료를 다룰 뿐 실제 하는 일은 수학이나 통계학에 가깝더라고요. 대신에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구조 예측 쪽이었어요. 후생유전학(Epigenetics) 또는 진화 쪽에서 서열 수준으로 생각했을 땐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구조 수준에서 보면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런 건 막연한 생각이어서 실험실 찾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대학 진학은 바로 그 ‘대학’을 고르는 건데 대학원 진학은 ‘실험실’을 골라야 하니까요. 제가 아는 분께서 ‘생명과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일반생명과학책 전체를 즐겁게 읽은 사람이 어떤 단원, 어떤 소제목 하에 실려있는 문장 하나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셨어요. 워낙 깊고 좁게 연구하다 보니 어떤 실험실을 고를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하는 거죠. 물론 박사과정은 어차피 연구자로서 역량을 쌓는 수련 과정이니,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는 박사 학위를 딴 다음부터라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하실 수도 있어요. 사실 당시의 제게 그런 이야길 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더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선택한 길이 나만 재미있을 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하나를 택해서 깊게 파고들어간 다음에도 지금처럼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 견지에서 넓게 볼 수 있을까? 내가 단순히 책 읽고 이해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학부식 공부가 아닌 직접 연구 주제 잡아가며 맨땅에 헤딩하는 대학원식 공부에 적합한 사람인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일자리를 잡을 수는 있을까?’ 온갖 고민이 넘쳐났고 그만큼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졸업논문 쓰면서 입시 준비를 병행하니 유학 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결정적으로 장학금도 떨어졌어요. 결국엔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이럴 때 대개 유학 가는 사람들은 일단 석사를 가거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데, 저는 의전 진학을 택했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에는 ‘지금의 나는 너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솔직히 저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한 과학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돼요. 제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좀 인정해줬으면 좋겠고, 돈도 좀 벌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는 생명과학이 좋고, 정말 재미있어요. 이 두 개를 접목시키려면 결국은 의생명과학 쪽이거든요. 그렇다면 직접 배워본 뒤에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보험 성격도 있어요. 제가 연구자 체질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제가 생명과학을 좋아한다는 게 그냥 일반생명과학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연구자를 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라도 어쨌든 의전 졸업하고 국시(의사국가시험)를 치면 적어도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잖아요. 일반 대학원이었다면 아마 조금 더 막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방금 ‘보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 같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쪽에선 실패했을 때 뒤에서 받쳐줄 만한 최저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이 거의 없잖아요. 예컨대 어떤 새로운 연구에 도전한 연구자가 아무리 성실히 연구를 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는 거고, 성실히 했다는 것이 입증되면 실패했더라도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해주는 체계가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도입하려는 것처럼요. 그런데 정부출연연구소에서도 이런 제도의 도입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추세이며, 더욱이 대학에서는 그런 얘기가 잘 없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대학원생으로서 도전적인 연구를 한다면 저에게 주어지는 건 오히려 1, 2년 늦춰지는 졸업. 정말 새롭고 궁금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연구비를 따오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은 둘째 치더라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A “물론 대학원생이 아닌 학부생으로서 1년 반의 실험실 생활 동안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에 지나지 않아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낀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구를 이만큼 돈 넣으면 이만큼 결과 나오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있는 것 같아요. 과학과 기술을 하나로 묶어서 얘기하고, 둘 모두를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서 인식하고요. 그렇다 보니 연구비를 딸 때 문제가 되죠. 실험실에서 귀동냥해보면 맨날 과제 쓴다 그러거든요. 실제로 하는 실험은 세포가 내뿜는 게 무엇인지 연구하는 수준이어도 연구 제안서에는 이걸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쓰죠. 물론 말도 안 되게 대단한 주제여서 썼다 하면 CNS(영향력이 큰 학술저널인 <셀>, <네이처>, <사이언스> 제호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에 나올 것 같은 주제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CNS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CNS에 나오는 연구만 소중한 게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CNS 쓰는 실험실이 아니라 기초적인 자료를 연구하는 곳에 있다면, 졸업하고 나서 좋은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의전은 어쨌든 졸업하고 국시 붙으면 의사 면허증 나오잖아요. 의사도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과가 무지무지 많아서 연구도 다양하고요. 기초뿐 아니라 임상 쪽 교수님이라고 해도 중재연구(Translational research; 분자생물학 등 기초 연구에서 이뤄진 성과를 임상에서 쓸 수 있도록 응용하는 연구)를 중요시하면 따로 실험실 운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똑같은 기자여도 의사 면허 가지고 있으면 의학전문기자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게 의대치대법대약대 등을 졸업해서 가질 수 있는 전문직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또 나중에 기초 쪽으로 가거나, 의대 교수 되어서 연구실 운영하면, 결국에 하는 일은 생명과 쪽이나 이쪽이나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요새 물리 화공 소재 등에 다 생명 연구 하는 사람 있는 것처럼 돌아가는 길 중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봐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또 당장에 제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거고요.” Q 의전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공무원 시험 치는 생각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학부 때 동기들 중에서 컴공과 동기는 회사나 대학원 많이 간 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다 의전 치전 약전 로스쿨 변리사 공무원 등으로 빠졌죠. 기본적으로 좀 더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고 보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몰리는 건, 특히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옛날부터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인데 뭔가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공계에 불리한 소리란 건 인정하지만 현실이 그렇잖아요. 의대와 의사집단이 제공하는 것 같은 견고한 체계를 화학 생명 이쪽 커뮤니티는 제공하지 못할 테고, 국가 차원에서도 해줄 의지가 없어 보이니까요. 저는 이런 보험적 성격에 더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나서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 의전을 택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저는 이공장(이공계 국가 장학금) 받고 학교를 다닌 뒤 의전으로 ‘먹튀’한 사례지만요. 사실 등록금을 안 냈기 때문에 컴공과 생명 복수전공 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제 꿈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하고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네 병원 가서 성형외과 차리면 욕먹어도 싸겠지만, 저는 앞으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제가 해왔고, 앞으로도 밟을 커리어는 독특하기에 효용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Q 듣다 보니, 생명과학 연구의 매력을 감소시킨다는 불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결국 생명과학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의전원으로 간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A “첫 번째에 대해선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이란 얘기밖에 할 게 없네요. 제가 그게 불러일으킬 파급 효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할 지위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사람이 하는 소리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겠어' 싶으면 무시하면 되는 거고요. 두 번째에 대해서는, 의전 간 사람은 결국 의사되러 간 거라는 생각은 편협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에 저만 해도 의전에서 지금까지 새로 배운 것들 덕분에 생명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새로운 비전이 생겼으니까요. 다시 말해 생명과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의전에 간 게 아니라, 제대로 하고 싶어서 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질문2 – 현재
의대생과 의전생 모두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을 다니지만, 의전은 본과부터 바로 시작하게 됩니다. 흔히 나이에 상관 없이 의전 입학 시험을 치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요. 인터뷰이의 말에 따르면, 의대생과 의전생의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나진 않으나, 보통 상위와 하위에 의대생이 분포하고 의전생은 골고루 분포한다고 합니다. Q 대학 시절과 비교해서, 또는 그때 예상했던 의전에서의 생활과 비교해서, 현재 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A “저는 사전 지식 없이 왔어요. 월화수목금 매일 수업이 있는 고등학교 시간표라는 것도 몰랐을 정도니까요. 정말 고등학교처럼 교실에 앉아 있으면 160명 앉아 있으면 교수님만 바뀌며 들어와요. 시간표는 고등학교처럼 50분 수업하고 10분 쉬게 되어 있어요. 보통 오전에 3교시 수업을 하고, 오후에 수업이나 해부, 실험을 4-5시까지 합니다. 학업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요. 포스텍에서 4년 동안 인쇄한 분량과 비슷한 정도로 작년 한 해에 인쇄했을 정도니까요. 그나마 처음에는 종이 한 장에 네 쪽을 인쇄하다가 여덟 쪽에 양면인쇄까지 한 수준인데도 그렇더라고요. 잉크 카트리지 값이 너무 많이 들어 2학년 때 무한잉크를 쓸 수 있는 프린터를 새로 살 정도니까요. 그래도 진심으로 재미있게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만약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대부분 어떻게든 따라가는 것 같지만 이렇게 공부를 해도 유급하는 사람은 있어요. 한 학년 160명 중에 두세 명은 나오는 것 같고 중간에 휴학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합치면 대여섯 명 정도로. 그만큼 힘들죠.” Q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배우면 제대로 익히기 힘들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시험 끝나면 머릿속에서 다 빠져나가긴 하는데, 일단 한번 봤던 건 최소한 어디서 찾아봐야 할지 알고, 다시 봤을 때 더 잘 이해되니까 의미가 없진 않죠. 요새는 외우기만 할 필욘 없다고 생각해서 커리큘럼 변화시키려고 하는 교수님도 많고요. 그리고 의사를 교육시킨다는 목적이 있고, 역사가 오래된 학문인 만큼 커리큘럼이 훨씬 체계적이에요. 이론과 실습의 연계도 강하고, 믿고 따라가면 뭔가 될 수 있다는 든든함도 듭니다. 이처럼 커리큘럼도 탄탄하게 짜여 있고, 확고하게 보이는 미래가 있어요. 바로 옆에 병원이 있고, 거기서 환자 보고 계신 교수님께서 수업에 들어오시니,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뭘 할 수 있겠구나, 딱 느껴지죠. 반면 학부 때는 막막했어요. 이를테면 의대 교수가 하는 일은 병원이라는 크고 견고한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반면, 생명과에서 교수가 되려면 똑같은 교수가 될 순 없는 거잖아요. 새로 실험실을 꾸미며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해야 하는 걸 테니 아무런 길잡이가 없어 막막할 것 같았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의대 의학과 생명과학이 다를 수밖에 없는 차이겠죠. 계속 연구를 하다 보면 그것도 뻔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그런 새로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이 없던 것도 대학원을 택하지 못한 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의사 되면 대부분 기존에 배운 대로만 일을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지루하고 하는 일도 단순하다고 하던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제가 아직 의사가 아니니까 의사가 되어서 하는 일에 대해서 뭐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의대 공부가 되게 수동적이고 많이 외워야 되는 건 맞아요. 그런데 학부 때도 그리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수업을 받아본 적은 없거든요. 생명과는 어차피 책 읽고 시험 쳤고, 컴공과는 계속 코드 짜고 코드 짜고 코드 짜고. 어차피 공부는 혼자 하는 거 아닐까요? 반면 의전에서 하는 공부는 맥락도 있고, 하다 못해 합목적성이라도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외우긴 좋아요. 물론 외우는 양은 훨씬 많습니다. 예컨대 생명과에서는 생화학 책 한 권을 두 학기 동안 배우는데, 여기서는 책 한 권을 두 달 반 만에 다 끝내니까요. 또 제 생각엔, 이제 의사가 더 이상 단순히 테크니션(기술직)만은 아닌 듯 합니다. 요새는 생명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덕분에 나날이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고, 그에 따라 치료방침도 개선되고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오늘날의 의사는 단순히 이전에 배웠던 치료법을 시행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본인의 임상경험을 체계화해서 치료방침 개선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네 병원이랑 대형 병원 의사 간에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요. 암 같은 경우엔 특히 그러합니다. 암이란 게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부위마다 다 다르고 또 같은 부위에 생긴 암이라도 형태적•분자생물학적 분류에 따라 다른 자연 경과 및 치료 반응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그러니 암환자를 치료한다고 하면 그게 절대 단순 반복 작업일 수가 없는 거죠.” Q 그렇다면 의전에서 기초의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A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 학년에 한두 명씩은 반드시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의 경우 본과 4학년 마치고 인턴 들어가는 일반적인 방법 외에 의전생 대상으로 운영하는 Md. Ph.D 프로그램이 있어요. 본과 2학년까지 수업 들은 다음 몇 년 간 풀타임으로 실험실에서 생활하며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그 뒤에 3-4학년 실습을 도는 거죠. 그러면 졸업할 때 MD랑 Ph.D 동시에 주는데 선배들은 한 학년에 한두 명씩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질문3 – 미래
Q 현재의 목표, 꿈은 무엇인가요? A “일단은 유급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전공의 과정은 병리과에서 하고 나중에 병리과 교수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면서 학생들 교육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병리학은 환자의 조직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암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암 덩어리인 것처럼, 조직은 어떻게 보면 그 질병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리학은 어떻게 보면 질병의 본질을 보는 학문이란 생각도 들고요. 조직의 거시적/미시적 구조 및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최선의 치료방침을 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병리과가 하는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짜인 틀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렇게 수행한 연구 결과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환자분들께 도움되는 방향으로 적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또 앞에서도 언급한 이공장은 세금에서 온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갚고 싶어요. 의대 병원이라는 곳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니까, 제가 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자체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외에도 글 쓰고 봉사 다니는 등 다방면으로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저는 제가 받은 많은 은혜와 도움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거니까, 저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러한 밑바탕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돈에 관한 질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의학전문대학원의 등록금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일반적으로 국립대가 사립대보다 저렴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선 서울대 의전이 가장 등록금 부담이 덜한 축에 속하고요. 하지만 등록금만으론 뭐라 말하기 힘든 게, 장학금 수여 비율이 학교마다 다 다릅니다. 이를테면 재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교도 있거든요. 자세한 정보는 대학정보공시센터(http://www.academyinfo.go.kr/)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그런 문제 외에도,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의 비싼 등록금 등이 졸업 후 임상의학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걸림돌이 되진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A “글쎄요, 그런 문제에 대해선 제가 아직 뭐라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초에 가고 싶은데 등록금이 부담되어서 임상을 간다는 사례도 아직까진 주위에서 들어본 적이 없고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셨으면 합니다. A “만약에 본인이 굉장히 생명과학을 좋아하고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들, 내가 배운 반응이 왜 그리고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또 우리 몸 모든 세포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등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본과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의대에서 접하는 환자는 질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당연히 인간에 대한 윤리가 필요하겠죠. 어쨌든 별다른 목적의식 없이 의사될 생각만으로 의전에 들어오면 학업량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고, 반대로 확고한 생각이 있다면 기회의 땅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겁게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 실제 환자 분들을 대할 일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받았던 그 이상을 이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김준]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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