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이공계 비정규직 연구자들과 노조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비정규직 연구원 문제‘ 토론회. 참석자는 적었지만 토론에서 오간 내용은 깊고도 깊었다. 사진/ 김정현
‘비정규직 연구자와 노동인권 문제’ 토론회
"교과부 산하 출연연 소속 54%가 비정규직, 이중 연구원이 68%"
별정직연구원, 연수생, 인턴, 석박사연구원등 노동인권 관심필요
사람들은 화면에 나타난 문장에 쓴웃음만 지었다. 과학기술인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아무도 공감하는 이가 없는 눈치였다.
토요일인 9월15일 낮, 이공계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또는 정출연)의 비정규직 연구원 문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제협력관 제2회의실에서 열렸다. 주최 쪽인 청년과학기술자모임(YESA)의 김상욱 회장을 비롯해,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구노조 이광오 사무처장, 2030세대를 대표하는 노조인 대전청년유니온 장주영 위원장과 다음 카페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 김종빈 카페지기가 패널로 참석했다. 현장에서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과학기술인의 현황과 피해 사례가 여럿 소개됐다.
지난 2004년, 숨겨져 왔던 연구원들의 열악한 처우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우연찮게 드러났다. 월급 100만원을 받고 날마다 14시간씩 '군대식 문화'의 실험실에서 힘든 노동을 하는 실험실 연구원들의 실상이 보도되며 세간에 충격을 줬다. 당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바이오잡’의 구인 자료를 분석해, 연구원 모집 공고 중 67%가 비정규직이며 68%가 4대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직종이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라 불리는 수준의 일자리가 무려 70%에 가까웠던 것이다.
지금도 상황은 여전한 듯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에 속한 11개 출연연의 비정규직 현황이 이를 말해준다. 제17대 국회였던 2011년 8월, 당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전 의원은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 전체 인력 중 54%가 비정규직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학연학생, 연수생, 인턴을 제외하고 비정규직 비율을 38.3%라 발표했는데, 권 전 의원은 이를 포함해 집계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의 비정규직 중 연구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68.4%라고 발표했다. 비록 정부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나, 비정규직의 상당 비중을 고학력 연구직이 차지하고 있다는 결과는 무척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인 지난 10일에도 이상민 의원은 27개 출연기관을 연구회별로 나누어 비정규직 비율을 분석한 결과,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14개 기관이 43%,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13개 기관이 54%로 나타났다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했다. 특히, 비정규직 비율이 60%을 넘는 기관은 산업기술연구회에선 생산기술연구원이 유일했으나, 기초기술연구회에선 생명과학연구원 71%를 비롯해 13개 중 6개 기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기초기술연구회 쪽의 비정규직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토론회의 주최 쪽인 YESA는 이런 과학기술계의 열악한 노동 상황에 주목, 토론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YESA는 지난해 생긴 신생 단체로, 대학원생과 젊은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다. 김상욱 회장은 “전공뿐 아니라 사회에도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 공감하여 모였다”며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과제 중 하나이며, 과학기술자로서 이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모품 취급, 데이터 도용, 노동인권 실종 등 피해사례에 “일상 일이죠” 김상욱 YESA 회장은 이날 그동안 인터뷰한 비정규직 연구원 6명의 사례를 공개했다. 별정직 연구원, 학연학생과 포닥, 석사후 연구원들의 심경이 묻어나는 답변이 화면에 나타났다. 임금은 정규직의 2분의 1인 월 89만~200만원, 수당이 없는 야근이 일상화한 데다 ‘복지카드’는 구경도 못해 봤다는 말엔 쓰디쓴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고 소모품처럼 취급받는 처우에 대부분 실망한다는 인터뷰 문장이 화면에 나타난 뒤에 논문저자 제외, 데이터 도용, 편법적인 재계약 등의 사례들이 줄이어 소개됐다. 당혹스러운 느낌도 잠시, 한 참가자가 “일상적인 일이죠”라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담담한 반응이었다.
두 번째로 나온 공공연구노조 이광오 사무처장은 “피눈물이 나는 이야기다.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가 현장에 있다”고 말을 뗐다. 그가 이어서 말한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휴가를 내려고 했더니 관리책임자가 “아버지 어머니도 아니고 친할머니도 아닌데 무슨 휴가를 가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눈물을 삼키며 연구실에서 파이펫을 만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사무처장은 시종일관 정출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법과 정부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법적으로 노동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였다. 실제 권영길 전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923명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별정직(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직) 등의 간접고용 형태로 고용됐으며, 연구과정 학생(산업연수생)으로 분류된 이들도 1625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므로,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2년 이상 계약직 고용을 금지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노동3권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함)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4대 보험도 받지 못한다.
또, 이 사무처장은 “정부의 정책도 문제”라며 “GDP 대비 연구개발(R&D) 예산이 늘어나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인데, 정규직이 늘어나는 속도는 1%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예산이 늘어나면 연구 인력도 늘어나는데, 그만큼을 다 비정규직으로 뽑았다는 의미다.
노동기본권 무시하기 일쑤인 이공계 정부출연연구소들 장주영 대전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담담히 전해주었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이공계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처음 근무할 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월급 이외에 추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로 연구소에서 작성한 예산안에도 인건비가 포함돼 있어, 그는 125만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월 89만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국가프로젝트는 인건비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내게 안내해주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언니, 그건 언니가 잘못한 거에요’라고 할 때부터 분노가 시작됐다”고 털어놓았다. 담담하게 말하려 했으나 울먹이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그가 2030세대를 대표하는 세대별노조 청년유니온에 들어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노동기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겪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바로 노동조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뭇 가라앉은 분위기는 다음 카페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의 김종빈 카페지기가 “난 작년에 정규직이 됐다”고 농담을 섞어 소개하면서 잠시 분위기가 밝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생명공학, 특히 의료계통에서 상황은 앞서 말한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하면서 점차 흥분하는 듯했다. 그는 “카페지기로서 접했던 비정규직 연구자들 중에서 교수님과 계약서를 써본 연구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이런 처지를 바꿔보려고 2005년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와 언론을 통한 접촉을 늘려나갔고 여러 노력을 했지만, 은근히 탄압이 들어왔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YESA는 향후에도 관련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지만, 정확한 일정과 계획은 논의 중이라고 한다. 한편 오는 22일에는 한겨레 <사이언스온>과 생물학연구정보센터, 그리고 가칭 ‘한국 과학의 자생적 생태계를 위한 현장 과학기술인 모임’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디모스가 주관하는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2차 타운미팅(대토론회)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다. 현장에서는 정출연의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현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부 학부생
생명과학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거친 학보사(건대신문) 기자라는 경험으로 ‘기자’라는 새 목표를 얻은 풋내기 학부생. 이공학도들의 놀랍고 재밌는 이야 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제보 메시지와 현장 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jhkim33770@gmail.com
"교과부 산하 출연연 소속 54%가 비정규직, 이중 연구원이 68%"
별정직연구원, 연수생, 인턴, 석박사연구원등 노동인권 관심필요
| |
소모품 취급, 데이터 도용, 노동인권 실종 등 피해사례에 “일상 일이죠” 김상욱 YESA 회장은 이날 그동안 인터뷰한 비정규직 연구원 6명의 사례를 공개했다. 별정직 연구원, 학연학생과 포닥, 석사후 연구원들의 심경이 묻어나는 답변이 화면에 나타났다. 임금은 정규직의 2분의 1인 월 89만~200만원, 수당이 없는 야근이 일상화한 데다 ‘복지카드’는 구경도 못해 봤다는 말엔 쓰디쓴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노동기본권 무시하기 일쑤인 이공계 정부출연연구소들 장주영 대전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담담히 전해주었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이공계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처음 근무할 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월급 이외에 추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로 연구소에서 작성한 예산안에도 인건비가 포함돼 있어, 그는 125만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월 89만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국가프로젝트는 인건비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내게 안내해주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언니, 그건 언니가 잘못한 거에요’라고 할 때부터 분노가 시작됐다”고 털어놓았다. 담담하게 말하려 했으나 울먹이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그가 2030세대를 대표하는 세대별노조 청년유니온에 들어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노동기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겪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바로 노동조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뭇 가라앉은 분위기는 다음 카페 ‘생명공학 비정규직 연구원 모임’의 김종빈 카페지기가 “난 작년에 정규직이 됐다”고 농담을 섞어 소개하면서 잠시 분위기가 밝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생명공학, 특히 의료계통에서 상황은 앞서 말한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하면서 점차 흥분하는 듯했다. 그는 “카페지기로서 접했던 비정규직 연구자들 중에서 교수님과 계약서를 써본 연구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이런 처지를 바꿔보려고 2005년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와 언론을 통한 접촉을 늘려나갔고 여러 노력을 했지만, 은근히 탄압이 들어왔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YESA는 향후에도 관련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지만, 정확한 일정과 계획은 논의 중이라고 한다. 한편 오는 22일에는 한겨레 <사이언스온>과 생물학연구정보센터, 그리고 가칭 ‘한국 과학의 자생적 생태계를 위한 현장 과학기술인 모임’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디모스가 주관하는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2차 타운미팅(대토론회)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다. 현장에서는 정출연의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현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부 학부생
생명과학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거친 학보사(건대신문) 기자라는 경험으로 ‘기자’라는 새 목표를 얻은 풋내기 학부생. 이공학도들의 놀랍고 재밌는 이야 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제보 메시지와 현장 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jhkim33770@gmai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