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2009년 11월18일 새벽 4시께 태양 주변을 33년 주기로 도는 ‘템펠 터틀’ 혜성의 잔해가 궤적을 그리며 소백산천문대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2009년에는 지구가 1466년과 1533년 사이 이 혜성이 남기고 간 잔해 사이를 통과해 여느 해보다 많은 유성을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소백산 천문대가 내려다보이는 연화봉에서 각각의 별똥별을 찍은 여섯 장의 사진을 합쳐 한 장으로 만든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2009년, 소백산/김명진 기자)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7)
"형은 천문학 박사 되고 졸업하면 뭐하세요?"
"형은 천문학 박사 되고 졸업하면 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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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에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고향에 다녀왔다. 어렵사리 구한 고향 가는 기차표는 추석 연휴 하루 전날인 금요일 정오 출발이었지만 교수님과 상의해서 연구 일정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고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출근 일정을 직장인보다는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은 대학원 생활이 주는 몇 가지 장점 중 하나이다. 올해 추석이 예년에 비해 더욱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결혼하고 만나기 어려웠던 고향 친구들과 후배들을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후배들은 하나둘씩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며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이 친구들은 고등학교에서 아마추어 천문학 동아리를 하면서 만난 사이다. 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 있는 밤이면 거의 언제나 함께 모여서 밤하늘을 바라보던 사이라서 그런지 나에겐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이 동아리는 내가 졸업한 이후로도 몇 년간 이어지다가 지금은 사라졌는데, 그 사이에 동아리에 참여했던 100여 명의 학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 천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점은 나에겐 약간 아쉬움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물론 그들에겐 오히려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 넘도록 학교에 남아 있는 내가 신기해 보일 테지만.
모처럼 만난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후배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형은 그럼 졸업하면 뭐하세요? 교수가 되는 건가요?”라고. 이 질문을 받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으면 교수가 되겠지?”라고 말이다. 사실 이런 질문은 내가 속한 곳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이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대답을 거의 이런 식으로 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그저 천문학을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꼭 교수라거나 하는 명예욕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조금 모호하긴 하지만 내 꿈은 그저 좋은 천문학자가 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온 뒤에야 내가 생각하던 ‘좋은 천문학자’가 되는 길 중 하나가 교수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교수는 스스로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교육을 담당하게 되고, 이를 통해 제자들도 역시 스스로 연구를 진행해 나가게 된다. 자신과 제자들의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서 교수 자신이 생각하는 ‘큰 그림’을 다른 연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쉽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포함해서 주위 대학원생들을 살펴봤을 때 교수가 되려 하는 이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 모두가 교수가 될 수 있을까?
졸업 하면 정말 무엇을 하나 위 질문에 대답을 하기에 앞서서 우선 천문우주학을 전공한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정말로 졸업 뒤에 무엇을 하는지 간단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다(참고로 이 과정은 연구자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모든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이 겪는 과정과 비슷하다). 여기 한 대학원생이 있다. 열심히 연구한 끝에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기나긴 사투 끝에 박사학위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독립된 천문학자로서 새로운 인생이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 분야에 막 진입한 ‘신입’ 천문학자에게 바로 교수직을 제의하는 호기 넘치는 이들은 당연히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박사 후 연구원(post-doctor)’이라는 신분으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살아가게 된다. 쉽게 말하면 계약직(비정규직) 연구원이다. 일반적으로는 대학의 학과나 독립적인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연구를 수행한다. 이 시기에는 어느 연구기관에서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와 같은 선택에 따라 본인이 대학원 시절에 연구했던 분야를 이어갈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관심 있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수행할 수도 있다. 박사 후 연구원의 시기에 대해 대부분의 선배들과 교수님들이 강조하는 것은, 이 시기에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에 수행하는 모든 연구는 거의 대부분이 개인 역량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출판되는 연구 결과를 통해 독립된 천문학자 한 사람의 연구 능력을 학계에서 검증받는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라 천문학자 개인의 평판이 생겨난다. 물론 좋은 평판을 얻으면 이는 곧 좋은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되고, 좋은 추천서는 박사 후 연구원 이후의 과정에서 중요한 레퍼런스로 쓰인다. 여기에서 박사 후 연구원 이후의 과정이란 ‘정년 트랙(tenure-track; 언젠가는 종신 재직이 가능한)’에 놓여 있는 교원 및 정규직 연구원을 뜻한다(박사 후 연구원의 기간이 지나고 ‘비정년 트랙’의 교원 단계를 거치는 경우들도 있다. 비정년 트랙의 교원은 일종의 계약직 교수이다). 이 중에서 정년 트랙의 교원이 앞서 이야기했던 대학 교수를 의미한다. 대학에 남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사 후 연구원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겨주는 것은 아마도 ‘불확실한 미래’일 것이다. 비정규직 신분은 그 신분이 가져다주는 불안정함 때문에라도 한 개인이 완전히 만족하며 생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역시 불안정한) 대학원생에게는 졸업이라는 단기 목표라도 있지만, 이러한 비정규직 연구원 신분을 언제 마칠 수 있는지 전혀 끝이 보장되지 않는 점도 역시 불안함을 더한다. 어떤 이들은 운 좋게도 2년 뒤에 정규직 신분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훨씬 더 긴 세월을 버텨내야 할 수도 있다. 대학원 시절에 전도유망했던 선배들조차(심지어 교수님들조차) 박사 후 연구원 기간에 정말 진지하게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고민하고 있다고(혹은 고민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시기를 버텨내는 것이 천문학자로 평생 살아남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일 것이다.
정년트랙 교원으로 가는 좁은 문 아마도 교수가 된다는 것은 어떤 한 분야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속한 학과의 교수님들을 살펴보더라도 대부분 내세울 만한 업적을 한 두 개쯤은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교수님들은 굉장히 유능한 분들일 것이리라.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우선 탁월한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한 그러한 연구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위아래 몇 학번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이들은 물론 교수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역시 박사 후 연구원 기간에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일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교수님한테서 다른 이야기를 들으며 혼란스러워 졌다. ‘한 학과에는 다양한 교수가 필요하다. 모든 교수가 연구만 잘 해서는 학과가 유지될 수 없다. 어떤 교수는 강의를 잘 해야 하고, 어떤 교수는 학생들을 잘 관리해야 하고, 어떤 교수는 대외 활동을 잘 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도 역시 일리가 있었다. 모든 교수가 연구에만 열중한다면 정작 교육과 학과 행정 업무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이는 학과 내 교수 사회에서도 일종의 분업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연구 실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이 함께 ‘복합적으로’ 반영이 된다는 것이리라. 나에게 분명한 것은 교수가 된다는 것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정규 트랙의 교원에 대한 모집 공고는 다른 일자리 공고에 비해 매우 드물다. 게다가 세계 천문학 연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정규 트랙 교원 모집을 대폭 줄인 상태다. 더욱 암담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천문학자들이 박사 후 연구원으로 머무는 기간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즉 고속도로에서 앞 차가 빠지지 않아서 계속 정체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주 뛰어난 학자들은 좀 더 빠르게 그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인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좁은 문을 과연 나는 통과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언젠가는 교수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연구를 하고 싶지만, 이러한 그 꿈의 일부분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연구기관, 그리고 다른 곳? 천문학을 계속하며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천문학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한국천문연구원이 대표적인 천문학 연구기관이고, 이밖에 고등과학원과 같은 곳에 정년트랙 교수로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도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일반적으로 국내 연구소들의 경우 연구원에 대한 평가의 대부분을 출판한 논문의 숫자를 바탕으로 하여 진행하기 때문에 논문이 적게 나오는 분야를 연구한다거나 혹은 논문을 개수보다는 질로 승부했던 연구자한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인 평가방식은 미국 등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하던 분들이 한국에 있는 연구기관에 취직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레퍼런스(추천서) 등에 많은 비중을 두는 서양 평가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러한 평가 방식은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 이러한 양적인 평가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써는 당장 개선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만약 졸업 후 자의건 타의건 간에 학계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경우에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도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나이와 학력에서 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 다른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에 기업체 연구원으로 취직함으로써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만, 순수 천문학의 경우에는 관련된 기업체가 역시 매우 적고 제한적이다. 다만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배운 다양한 이론들과 방법론(물리학, 영상처리, 프로그래밍, 시뮬레이션 등)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기회를 얻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천문학자로 살아남기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그저 좋은 천문학자가 되어 평생 연구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을 거치고 먼저 졸업한 선배들을 보면서 나의 그 소박한 꿈이 사실 굉장히 창대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 저 꿈의 내용을 간단히 다른 말로 바꾸자면 ‘정규직 연구원이 되어 좋은 연구를 하자’와 같을 것 같다. 이렇게 바꿔놓으니까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알게 모르게 현실감각이 조금 있었던 모양이다. 정규직으로 가는 문은 분명 좁고 경쟁자는 많다. 물론 이 치열한 경쟁 끝에 모든 연구자가 모두 정규직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겠지만, 문이 너무 좁은 나머지 충분히 능력 있는 이들마저 포기하려 한다면 아무도 기초과학을 하려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한겨레 <사이언스온>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루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 제안을 위한 타운미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도 우리의 목소리가 이러한 좁은 문을 조금이라도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이런 문제에 관심이 생긴다면 이번 주 토요일인 10월27일 대전에서 열리는 타운미팅에 참석해서 의견을 함께 모을 수 있길 바라본다. 물론 그 좁은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연구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모든 대학원생의 건투를 빈다. 우리 모두 기운 내서 열심히 살아남자. 파이팅!
배현진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천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도. 현재는 주로 은하와 그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이의 진화적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 며, 빛공해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메일 : hjbae.astro@gmail.com 트위터 : @gowithsky 블로그 : http://firststa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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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하면 정말 무엇을 하나 위 질문에 대답을 하기에 앞서서 우선 천문우주학을 전공한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정말로 졸업 뒤에 무엇을 하는지 간단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다(참고로 이 과정은 연구자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모든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이 겪는 과정과 비슷하다). 여기 한 대학원생이 있다. 열심히 연구한 끝에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기나긴 사투 끝에 박사학위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독립된 천문학자로서 새로운 인생이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린 시절의 천체 관측은 많은 이들한테 끝모를 과학적 호기심을 샘솟게 하는 색다른 경험이다. 한겨레 자료사진(1994년)
정년트랙 교원으로 가는 좁은 문 아마도 교수가 된다는 것은 어떤 한 분야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속한 학과의 교수님들을 살펴보더라도 대부분 내세울 만한 업적을 한 두 개쯤은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교수님들은 굉장히 유능한 분들일 것이리라.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우선 탁월한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한 그러한 연구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위아래 몇 학번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이들은 물론 교수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역시 박사 후 연구원 기간에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일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교수님한테서 다른 이야기를 들으며 혼란스러워 졌다. ‘한 학과에는 다양한 교수가 필요하다. 모든 교수가 연구만 잘 해서는 학과가 유지될 수 없다. 어떤 교수는 강의를 잘 해야 하고, 어떤 교수는 학생들을 잘 관리해야 하고, 어떤 교수는 대외 활동을 잘 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도 역시 일리가 있었다. 모든 교수가 연구에만 열중한다면 정작 교육과 학과 행정 업무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이는 학과 내 교수 사회에서도 일종의 분업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연구 실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이 함께 ‘복합적으로’ 반영이 된다는 것이리라. 나에게 분명한 것은 교수가 된다는 것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정규 트랙의 교원에 대한 모집 공고는 다른 일자리 공고에 비해 매우 드물다. 게다가 세계 천문학 연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정규 트랙 교원 모집을 대폭 줄인 상태다. 더욱 암담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천문학자들이 박사 후 연구원으로 머무는 기간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즉 고속도로에서 앞 차가 빠지지 않아서 계속 정체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주 뛰어난 학자들은 좀 더 빠르게 그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인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좁은 문을 과연 나는 통과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언젠가는 교수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연구를 하고 싶지만, 이러한 그 꿈의 일부분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연구기관, 그리고 다른 곳? 천문학을 계속하며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천문학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한국천문연구원이 대표적인 천문학 연구기관이고, 이밖에 고등과학원과 같은 곳에 정년트랙 교수로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도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일반적으로 국내 연구소들의 경우 연구원에 대한 평가의 대부분을 출판한 논문의 숫자를 바탕으로 하여 진행하기 때문에 논문이 적게 나오는 분야를 연구한다거나 혹은 논문을 개수보다는 질로 승부했던 연구자한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인 평가방식은 미국 등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하던 분들이 한국에 있는 연구기관에 취직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레퍼런스(추천서) 등에 많은 비중을 두는 서양 평가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러한 평가 방식은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 이러한 양적인 평가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써는 당장 개선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만약 졸업 후 자의건 타의건 간에 학계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경우에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도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나이와 학력에서 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 다른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에 기업체 연구원으로 취직함으로써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만, 순수 천문학의 경우에는 관련된 기업체가 역시 매우 적고 제한적이다. 다만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배운 다양한 이론들과 방법론(물리학, 영상처리, 프로그래밍, 시뮬레이션 등)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기회를 얻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천문학자로 살아남기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그저 좋은 천문학자가 되어 평생 연구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을 거치고 먼저 졸업한 선배들을 보면서 나의 그 소박한 꿈이 사실 굉장히 창대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 저 꿈의 내용을 간단히 다른 말로 바꾸자면 ‘정규직 연구원이 되어 좋은 연구를 하자’와 같을 것 같다. 이렇게 바꿔놓으니까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알게 모르게 현실감각이 조금 있었던 모양이다. 정규직으로 가는 문은 분명 좁고 경쟁자는 많다. 물론 이 치열한 경쟁 끝에 모든 연구자가 모두 정규직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겠지만, 문이 너무 좁은 나머지 충분히 능력 있는 이들마저 포기하려 한다면 아무도 기초과학을 하려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한겨레 <사이언스온>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루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 제안을 위한 타운미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도 우리의 목소리가 이러한 좁은 문을 조금이라도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이런 문제에 관심이 생긴다면 이번 주 토요일인 10월27일 대전에서 열리는 타운미팅에 참석해서 의견을 함께 모을 수 있길 바라본다. 물론 그 좁은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연구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모든 대학원생의 건투를 빈다. 우리 모두 기운 내서 열심히 살아남자. 파이팅!
천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도. 현재는 주로 은하와 그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이의 진화적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 며, 빛공해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메일 : hjbae.astro@gmail.com 트위터 : @gowithsky 블로그 : http://firststa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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