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논문들. 연구생들이 연구생활에서 겪는 나름의 희노애락이 보이지 않는 행간에 담겨 있다. 사진/ 한아름
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8)
졸업 논문 쓰기
졸업 논문 쓰기
완연한 가을이다. 햇살은 따뜻하지만 아침저녁으로 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는 10월 말의 가을이다. 졸업을 앞둔 석사·박사과정의 연구원들은 졸업 논문을 마무리하는 일에 여념이 없을 때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데이터를 부여쥐고 밤낮으로 고민을 거듭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더욱 마음 한 구석이 스산해짐을 느낄 것이다. 나도 또한 실험 장비를 챙겨들고 우리 실험실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대학 건물까지 수없이 걸어 다니면서 부쩍 옷깃을 여미게 되었던 졸업 학기의 가을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니 말이다.
산 밑자락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언제나 학교 바깥 동네보다 한 달 정도 앞선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느끼는 겨울은 유난히 길어 3월 말까지도 채 녹지 않고 쌓인 눈을 볼 수 있었고, 가을도 빨리 찾아와 일찍 단풍을 구경할 수 있었다. 10월 말, 지금쯤 그 학교 사람들은 이미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교정의 낭만을 마음껏 누리고 있겠지. 또, 그렇게 커피 한 잔을 들고 학교를 거닐고 있는 학부생들이나 커플들을 바라보는, 졸업 앞둔 대학원생들은 그들의 여유를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을까.
연구자의 희망을 배반하는 야속한 실험결과들 졸업 논문. 이 네 글자만 들어도 그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 그리고 알 수 없는 입가의 미소와 더불어 저절로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또한 이 주제에 대해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계열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원생들이 공감하겠지만, 특히 실험실 생활을 하는 이공계 석사·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이 ‘논문’이 대학원 생활에서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큰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논문 쓰는 일’이란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깨우치거나, 기존의 자료와 현상을 정리하고 통계를 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자연 현상을 대상으로 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그것을 통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과학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즉, 자연 현상이나 그 원리를 찾아내는 일, 혹은 그것들을 찾아내기 위한 실험 기법을 개발해내야 할 뿐 아니라 그 연구결과가 학계에 크건 작건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어야 논문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 실험이나 할 수 없으며 열과 성을 다 한 실험이라 하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국에 논문을 쓸 수 없게 된다.
자연 현상이라는 것이 이토록 야속하다. 교수님을 비롯해 실험실 구성원이 어떤 생명 현상에 대해 모두 다 흥미롭다고 생각하여 그 현상의 원인과 기작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실험했는데 1년 반이 지났는데도 도저히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을 썩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험을 맡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지켜보는 처지에서도 안쓰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어가는데 새롭게 밝혀지는 내용은 없다.
학회에 가서 만난 분들을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외부에서 전문가를 불러 함께 실험해 보기도 하였으며 시약도 바꿔보고 새로운 기계도 사들여 다른 방법을 시도할 때마다 잠시 희망을 가져 보지만 곧 실망으로 다가온다. 생화학 연구라는 것이 비용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대학원생의 처지에서는 얼른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한정 한 가지 실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럴 때에는 깊은 통찰과 직관, 그리고 결단을 통해 연구를 중단하거나 주제를 바꾸기도 한다.
누구나 졸업 논문을 쓰는 과정이 힘겨울 테지만 나의 경우도 졸업 논문을 참으로 힘들게 쓴 축에 든다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말할 수 있다. 처음 석사과정에 들어오면 실험 기자재를 다루는 방법이나 각종 기계를 다루는 방법은 물론이고 정말 단순한 실험들조차도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학기는 지나야 실험실에서 오가는 대화를 이해하고 선배들의 도움 없이 실험을 어느 정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한 학기는 그동안 실험했던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 논문을 써야 하니 따져보면 석사과정 동안에 실험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실험실마다 지도교수의 스타일에 따라 신입생들이 프로젝트를 맡아 실험을 배우는 방법이 결정되곤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처음에 개인 프로젝트를 맡지 않고 박사과정 선배들을 도와 실험을 배우면서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다. 갖가지 노하우를 가진 언니오빠들 옆에서 실험을 배우니 시행착오를 줄이는 장점이 있었다. 실험 테크닉도 빨리 배우니 재미도 있고 실력도 비교적 빨리 늘어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내 이름이 실린 과학인용색인(SCI) 등재 논문도 석사과정 6개월 만에 손에 쥘 수 있었다.
논문 심사자의 '공격'과 논문 저자의 '방어' 처음엔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실험실 생활을 했는데, 선배들이 하나둘씩 졸업하여 어느덧 나도 내 졸업 논문을 써야 할 때가 왔다. 졸업 논문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졸업 대상자들은 ‘논문 자격 시험’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합격점을 받으면 그제서야 졸업 논문을 쓸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각 학과마다 '졸업 요건'이라는 것이 있다. 논문은 그 실험에 기여한 연구자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제1, 제2 저자 식으로 순서를 매겨 저자 목록에 싣는데, 우리 학과의 경우에 내가 졸업할 당시 석사 졸업 조건이 논문 심사일까지 ‘제1 저자로 논문 투고하기’ 혹은 ‘제2 저자로 논문 발행하기’였다. 게다가 우리 실험실의 경우 지도교수님은 S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다른 실험실에 비해 훨씬 졸업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2 저자로서 논문을 이미 발행한 나의 상황에서도 제1 저자로 된 국제학회 논문을 투고하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에 졸업 부담이 더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제2 저자 논문을 위해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새로운 실험의 조건을 잡아 확실히 나올지도 모를 결론까지 도출하기까지 얼마나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연구실 생활 초반에 바로 옆자리에서 도와주던 선배들이 떠나고 스스로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판단할 때가 왔을 때부터 실험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과연 논문을 쓸 수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자문에서 시작하여, ‘이렇게 하다가 졸업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실험만 하기도 힘든 상황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이래서 실험실에서 졸업학기 학생들이 ‘상전이’라는 소리를 듣나보다.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실험은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 즉, 주어진 매뉴얼대로 실험을 진행했을 때 언제, 누가 해도 오차 범위 내에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우연한 실험을 통해 한 번 나온 결과를 두고서 그것이 옳은 현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세포를 통해 하는 실험들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재현성의 문제이다. 세포 바깥 플라스크에서 하는 실험이야 온도나 시간 등의 조건만 잘 맞춰주면 일정하게 반응을 시켜줄 수 있지만 세포는 살아 있는 것이라서 화학물질을 처리했을 때의 상황에 따라 분비 물질의 양을 비롯해 여러 반응이 매번 일정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최적으로 재현성을 나타내는 조건을 잡아주고 결과를 도출하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 나온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논문이라는 것이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자연 현상의 원리에 대해 ‘이것은 이래서 이런 것이더라!’ 하면서 여러 실험적 근거를 들이대며 주장하는 것인데, 다른 과학자들은 ‘너네 말을 어떻게 믿냐, 어떻게 증명할 거냐?’며 따져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할 때에는 더욱이 영어 표현이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주장한 내용에 대해 논문 심사위원들은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날카롭게 질문하며 더 확실한 실험적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변호사들처럼 심사위원들의 질문이나 요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면서 우리의 발견이 옳다는 것을 주장해야 하고, 더 확실한 추가 실험을 통해 물증을 제공해야 한다. 몇 차례의 문답이 오간 뒤에 심사위원들이 실험 결과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논문은 받아들여져(accepted) 발간되고, 심사위원들의 요구에 적절한 응답을 할 수 없으면 논문은 거절된다(rejected). 이 과정에서 내 실험에 대해 누가 어떤 것을 물어와도 척척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게 되면 관련 논문을 수없이 찾아보며 더 깊이 공부하여 질문을 막아냈다.
까만표지의 졸업 논문, 지금도 나를 뿌듯하게 하는 처음엔 지도교수님의 기대가 다소 무리하다고 생각되어 불만도 많았다. 제2 저자로 논문을 내는 것도 얼마나 열심히 한 결과인데 굳이 제1 저자 논문을, 그것도 SCI 등재 논문을 내야 하나 하고 투덜거렸지만 논문이 채 나오기도 전에 왜 교수님이 이것을 원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논문에 사용되는 모든 실험을 완벽히 꿰뚫고 또한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 제2 저자와는 차원이 다른 마음가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안목도 한층 넓어진 것을 느꼈다. 그렇게 제1 저자로 SCI 등재지에 발행 허가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당당히 졸업 논문 심사를 받고, 졸업 논문 가장 뒷 페이지에 실릴 ‘감사의 글’을 쓰면서 가슴이 벅차고 코 끝이 찡해졌다. 실험실 새내기로 멋모르고 실험을 하는 동안 작은 것도 성심 성의껏 알려준 언니들 생각부터 졸업 논문 준비한답시고 예민하고 까칠했던 내 모습을 다 이해해 준 실험실의 후배들까지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까만 표지, 멋있는 내 졸업 논문을 쳐다보면 지금도 뿌듯하다. 단순히 과학 실험, 생화학적 발견이 기록된 책이 아니라 석사과정 동안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셀 수 없는 고민들, 그리고 때론 웃기도, 울기도 한 모든 감정까지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 더욱 더 졸업 논문에 애착이 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석사·박사 학위 논문은 우리끼리는 그냥 ‘졸업 논문’으로 불리기보다 ‘자서전’이라고 칭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한아름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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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희망을 배반하는 야속한 실험결과들 졸업 논문. 이 네 글자만 들어도 그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 그리고 알 수 없는 입가의 미소와 더불어 저절로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또한 이 주제에 대해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계열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원생들이 공감하겠지만, 특히 실험실 생활을 하는 이공계 석사·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이 ‘논문’이 대학원 생활에서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큰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논문 쓰는 일’이란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깨우치거나, 기존의 자료와 현상을 정리하고 통계를 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자연 현상을 대상으로 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그것을 통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과학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즉, 자연 현상이나 그 원리를 찾아내는 일, 혹은 그것들을 찾아내기 위한 실험 기법을 개발해내야 할 뿐 아니라 그 연구결과가 학계에 크건 작건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어야 논문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 실험이나 할 수 없으며 열과 성을 다 한 실험이라 하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국에 논문을 쓸 수 없게 된다.
가을의 학교 풍경.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들은 졸업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는 시기이다. 사진/ 한아름
논문 심사자의 '공격'과 논문 저자의 '방어' 처음엔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실험실 생활을 했는데, 선배들이 하나둘씩 졸업하여 어느덧 나도 내 졸업 논문을 써야 할 때가 왔다. 졸업 논문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졸업 대상자들은 ‘논문 자격 시험’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합격점을 받으면 그제서야 졸업 논문을 쓸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각 학과마다 '졸업 요건'이라는 것이 있다. 논문은 그 실험에 기여한 연구자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제1, 제2 저자 식으로 순서를 매겨 저자 목록에 싣는데, 우리 학과의 경우에 내가 졸업할 당시 석사 졸업 조건이 논문 심사일까지 ‘제1 저자로 논문 투고하기’ 혹은 ‘제2 저자로 논문 발행하기’였다. 게다가 우리 실험실의 경우 지도교수님은 S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다른 실험실에 비해 훨씬 졸업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2 저자로서 논문을 이미 발행한 나의 상황에서도 제1 저자로 된 국제학회 논문을 투고하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에 졸업 부담이 더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제2 저자 논문을 위해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새로운 실험의 조건을 잡아 확실히 나올지도 모를 결론까지 도출하기까지 얼마나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연구실 생활 초반에 바로 옆자리에서 도와주던 선배들이 떠나고 스스로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판단할 때가 왔을 때부터 실험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과연 논문을 쓸 수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자문에서 시작하여, ‘이렇게 하다가 졸업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실험만 하기도 힘든 상황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이래서 실험실에서 졸업학기 학생들이 ‘상전이’라는 소리를 듣나보다.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실험은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 즉, 주어진 매뉴얼대로 실험을 진행했을 때 언제, 누가 해도 오차 범위 내에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우연한 실험을 통해 한 번 나온 결과를 두고서 그것이 옳은 현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세포를 통해 하는 실험들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재현성의 문제이다. 세포 바깥 플라스크에서 하는 실험이야 온도나 시간 등의 조건만 잘 맞춰주면 일정하게 반응을 시켜줄 수 있지만 세포는 살아 있는 것이라서 화학물질을 처리했을 때의 상황에 따라 분비 물질의 양을 비롯해 여러 반응이 매번 일정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최적으로 재현성을 나타내는 조건을 잡아주고 결과를 도출하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 나온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논문이라는 것이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자연 현상의 원리에 대해 ‘이것은 이래서 이런 것이더라!’ 하면서 여러 실험적 근거를 들이대며 주장하는 것인데, 다른 과학자들은 ‘너네 말을 어떻게 믿냐, 어떻게 증명할 거냐?’며 따져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할 때에는 더욱이 영어 표현이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주장한 내용에 대해 논문 심사위원들은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날카롭게 질문하며 더 확실한 실험적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변호사들처럼 심사위원들의 질문이나 요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면서 우리의 발견이 옳다는 것을 주장해야 하고, 더 확실한 추가 실험을 통해 물증을 제공해야 한다. 몇 차례의 문답이 오간 뒤에 심사위원들이 실험 결과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논문은 받아들여져(accepted) 발간되고, 심사위원들의 요구에 적절한 응답을 할 수 없으면 논문은 거절된다(rejected). 이 과정에서 내 실험에 대해 누가 어떤 것을 물어와도 척척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게 되면 관련 논문을 수없이 찾아보며 더 깊이 공부하여 질문을 막아냈다.
까만표지의 졸업 논문, 지금도 나를 뿌듯하게 하는 처음엔 지도교수님의 기대가 다소 무리하다고 생각되어 불만도 많았다. 제2 저자로 논문을 내는 것도 얼마나 열심히 한 결과인데 굳이 제1 저자 논문을, 그것도 SCI 등재 논문을 내야 하나 하고 투덜거렸지만 논문이 채 나오기도 전에 왜 교수님이 이것을 원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논문에 사용되는 모든 실험을 완벽히 꿰뚫고 또한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 제2 저자와는 차원이 다른 마음가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안목도 한층 넓어진 것을 느꼈다. 그렇게 제1 저자로 SCI 등재지에 발행 허가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당당히 졸업 논문 심사를 받고, 졸업 논문 가장 뒷 페이지에 실릴 ‘감사의 글’을 쓰면서 가슴이 벅차고 코 끝이 찡해졌다. 실험실 새내기로 멋모르고 실험을 하는 동안 작은 것도 성심 성의껏 알려준 언니들 생각부터 졸업 논문 준비한답시고 예민하고 까칠했던 내 모습을 다 이해해 준 실험실의 후배들까지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까만 표지, 멋있는 내 졸업 논문을 쳐다보면 지금도 뿌듯하다. 단순히 과학 실험, 생화학적 발견이 기록된 책이 아니라 석사과정 동안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셀 수 없는 고민들, 그리고 때론 웃기도, 울기도 한 모든 감정까지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 더욱 더 졸업 논문에 애착이 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석사·박사 학위 논문은 우리끼리는 그냥 ‘졸업 논문’으로 불리기보다 ‘자서전’이라고 칭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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