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있는 단풍 명소인 에이칸도우에서 찍은 정원 사진. 나무들도 가을을 맞아 겨울 날 준비를 하며 또한 내년 봄을 미리 설레 기디라는 것처럼, 연구실원들도 각자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오하나의 연구실 동료
오하나의 “식물 실험실의 생명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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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졸업논문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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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졸업논문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지난 번 <사이언스온>에 글을 싣고 하루가 지났을까? 이메일 받은편지함에는 독일 막스플랭크연구소에서 온 낯선 메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메일의 제목은 “다시 생태학으로”였다. 내가 올린 글을 읽고, 한 한국인 연구자가 내게 보낸 메일이었다. 그 분은 대학 학부생 때 화학을, 그 뒤에는 분자생물학을, 그리고 지금은 생태학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분의 삶에는 쉽지 않은 결정의 순간들이 지문처럼 찍혀 있었다. 나는 때마침 '진로'라는 스케치북을 펴놓고 매일 5분 정도씩 깔짝거리고 있던 차였다. 도착한 메일에 답장을 했다. 그 분의 메일 내용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는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뭐랄까, 답장을 보내고 나니 한 연구자와 일회의 우정을 나눈 것 같은 작은 기쁨이 몰려 왔다.
국가장학생 탈락 소식, 그래도...“호떡 파티라도 하죠” 10월도 찬 바람처럼 휙 지나갔다. 그 사이에 내 보충 실험도 일단락되었다. 이제 남은 실험이라고는 지하 재배실에서 키우고 있는 벌노랑이의 개화일 확인 실험 하나뿐이다. 벌노랑이들이 진드기의 공격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주기를 바랐다. 이제 졸업 논문을 정리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흠흠…, 배짱 있는 태도를 취해 본다. 졸업이라는 실체 없는 이것은 왜 모든 학생들을 졸아들게 만드는가? 일주일 전쯤, 일본의 국가 장학생 선발 결과가 났다. 나는 지난해 6월 쯤에 '박사과정 3년'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장학제도에 신청서를 내어 지원했다. 일본 국내의 전도유망한 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서 뽑여야 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받은 메일에는 심사 결과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심사 기준과 기준별 채점 내용, 상위 몇 퍼센트로 환산한 수치가 적혀 있었다. 이거 어째,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표와 닮았다. 난 상위 50%에도 못 든, 탈락자 중에서도 왕탈락자였다. 가장 점수를 따지 못했던 부분은 연구 실적이었다. 옆에서 오츠키가 “이런! 점수가 생각보다 짜네요. 하나씨의 서류가 그 정도로 나빴던 건 아니었는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장학금 신청 서류를 작성할 때, 늦게까지 가장 많이 도와줬던 동료도 오츠키였다. 그 말에 진짜 위로를 받았다. ‘저야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공연스레 미안해지네요’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호떡 파티라도 하죠.”
“네, 좋아요!” 연구실이라는 공간에는 하나의 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날마다 마주하는 동료가 밉지 않아져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석사과정 연구생, 나의 동료들 이렇게 하여 이대로 연구의 연장선이 되는 박사과정에는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장학금이라는 물리적인 여건도 따라주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개인적으로 분자생물학 연구의 방법론에 회의를 느꼈고, 연구의 끝에 맛보는 희열도 소진되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더 이상 연구자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런 뜻을 지도교수에게 표하자, 지도교수도 입술을 한 일자로 그은 채 끄덕끄덕 거렸다. 나와 함께 입학한 동료들도 진즉에 진로를 결정했다. 그들의 일년 뒤 모습을 상상해 보니, 제각각으로 너무 다르다. 이참에 한 명씩 여러분께 소개해주고 싶다. 이시바시
일본의 한 맥주 회사에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대두 연구를 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인정받았다. 취직을 하고 나니, 술 중에서 입도 안 댔다는 맥주가 갑자기 맛있게 느껴진단다. 회사의 맥주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전단지를 뿌리질 않나, 사케 같은 맥주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질 않나, 벌써부터 애사심이 하늘을 찌른다. 장래 희망은 맥주 공장장. 야마다
소철나무의 보전에 관해 연구해 왔다. 그러고는, 소철나무와 전혀 상관 없는 보험 회사에 취직했다. 운동부 출신이라 그런지 언제나 기합이 들어가 있다. 소철나무의 뿌리를 채취할 때에도, 분자 실험을 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심지어 아이돌 음악을 들을 때에도 기합 만땅이다. 졸업논문 정리도 거의 다 완성했다. 요즘은 재무설계사 자격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보험 회사에서 사장이 되기 전에는 억울해서 눈도 감을 수 없다며 승부욕에 불타고 있다. 오오키
입학할 당시에는 박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한 학기가 지나자 연구자 외에 아무거나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멸종 위기 식물의 집단유전 연구를 하였다. 일본인이지만 시드니에서 오래 살아 서양인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본의 여러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 그래서 내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마리 자신도 모르겠단다. 졸업논문을 정리하는 와중에 짬짬이 시간을 내어 교토부립식물원에서 식물보전 연구 보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의 큐 식물원에서 연수를 받아 보고 싶다고 한다. 야기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싶다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였다. 교토를 시작으로 칸사이 지역 내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공무원에 응시하였다. 대부분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최근에 지방 자위대 사무직으로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아서 안심하는 듯하다. 졸업 마지막 학기에 실험 결과를 내기 위해 거의 날마다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오하나
연구자로 남을지 말지 망설이느라, 남들이 구직 활동을 할 때, 실험과 산책만 죽어라 했다. 식물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건 여전하나, 결국 연구는 그만하고 싶다고 결정했다. 왠지 모르게 몸이 허약해져서 몸 관리를 하면서 졸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남 몰래 병행하기 시작했지만, 경력 쌓기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취직 준비와는 무관하다. 내년 쯤에는 어디에든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있길 희망한다.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신이 찾아야 할 길 동료들과 나의 현재는 이러하다. 교수도 박사과정으로 갈 학생이 없어지는 것에 대비하여 신입생 공모자 수를 늘렸다. 지난해에 외국인 유학생을 처음으로 받아 본 교수는 내년도에는 중국인 유학생을 받기로 했단다. 큰 규모의 연구비도 차후 어떻게 운용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입학 동기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 다들 졸업을 위해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이고, 차이점이 있다면… 글쎄, 삶을 대하는 태도일까? 그리고 이 태도는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지도교수도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들이 진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상담자의 역할에 머무른 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함께 고민해 주었다. 그러나 조언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누구는 교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서 퇴임 전까지 봉급생활자로 살아갈래요. 누구는 식물보전과 관련된 일을 하며 먹고 살아 갈래요, 라고 정했다. 누구는 교토의 공무원으로 교토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누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는데 글은 계속 쓸 겁니다, 라고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 한 명도 불만 없이 연구생으로 다시 돌아와 연구실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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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장학생 탈락 소식, 그래도...“호떡 파티라도 하죠” 10월도 찬 바람처럼 휙 지나갔다. 그 사이에 내 보충 실험도 일단락되었다. 이제 남은 실험이라고는 지하 재배실에서 키우고 있는 벌노랑이의 개화일 확인 실험 하나뿐이다. 벌노랑이들이 진드기의 공격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주기를 바랐다. 이제 졸업 논문을 정리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흠흠…, 배짱 있는 태도를 취해 본다. 졸업이라는 실체 없는 이것은 왜 모든 학생들을 졸아들게 만드는가? 일주일 전쯤, 일본의 국가 장학생 선발 결과가 났다. 나는 지난해 6월 쯤에 '박사과정 3년'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장학제도에 신청서를 내어 지원했다. 일본 국내의 전도유망한 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서 뽑여야 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받은 메일에는 심사 결과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심사 기준과 기준별 채점 내용, 상위 몇 퍼센트로 환산한 수치가 적혀 있었다. 이거 어째,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표와 닮았다. 난 상위 50%에도 못 든, 탈락자 중에서도 왕탈락자였다. 가장 점수를 따지 못했던 부분은 연구 실적이었다. 옆에서 오츠키가 “이런! 점수가 생각보다 짜네요. 하나씨의 서류가 그 정도로 나빴던 건 아니었는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장학금 신청 서류를 작성할 때, 늦게까지 가장 많이 도와줬던 동료도 오츠키였다. 그 말에 진짜 위로를 받았다. ‘저야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공연스레 미안해지네요’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호떡 파티라도 하죠.”
“네, 좋아요!” 연구실이라는 공간에는 하나의 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날마다 마주하는 동료가 밉지 않아져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석사과정 연구생, 나의 동료들 이렇게 하여 이대로 연구의 연장선이 되는 박사과정에는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장학금이라는 물리적인 여건도 따라주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개인적으로 분자생물학 연구의 방법론에 회의를 느꼈고, 연구의 끝에 맛보는 희열도 소진되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더 이상 연구자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런 뜻을 지도교수에게 표하자, 지도교수도 입술을 한 일자로 그은 채 끄덕끄덕 거렸다. 나와 함께 입학한 동료들도 진즉에 진로를 결정했다. 그들의 일년 뒤 모습을 상상해 보니, 제각각으로 너무 다르다. 이참에 한 명씩 여러분께 소개해주고 싶다. 이시바시
일본의 한 맥주 회사에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대두 연구를 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인정받았다. 취직을 하고 나니, 술 중에서 입도 안 댔다는 맥주가 갑자기 맛있게 느껴진단다. 회사의 맥주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전단지를 뿌리질 않나, 사케 같은 맥주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질 않나, 벌써부터 애사심이 하늘을 찌른다. 장래 희망은 맥주 공장장. 야마다
소철나무의 보전에 관해 연구해 왔다. 그러고는, 소철나무와 전혀 상관 없는 보험 회사에 취직했다. 운동부 출신이라 그런지 언제나 기합이 들어가 있다. 소철나무의 뿌리를 채취할 때에도, 분자 실험을 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심지어 아이돌 음악을 들을 때에도 기합 만땅이다. 졸업논문 정리도 거의 다 완성했다. 요즘은 재무설계사 자격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보험 회사에서 사장이 되기 전에는 억울해서 눈도 감을 수 없다며 승부욕에 불타고 있다. 오오키
입학할 당시에는 박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한 학기가 지나자 연구자 외에 아무거나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멸종 위기 식물의 집단유전 연구를 하였다. 일본인이지만 시드니에서 오래 살아 서양인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본의 여러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 그래서 내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마리 자신도 모르겠단다. 졸업논문을 정리하는 와중에 짬짬이 시간을 내어 교토부립식물원에서 식물보전 연구 보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의 큐 식물원에서 연수를 받아 보고 싶다고 한다. 야기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싶다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였다. 교토를 시작으로 칸사이 지역 내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공무원에 응시하였다. 대부분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최근에 지방 자위대 사무직으로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아서 안심하는 듯하다. 졸업 마지막 학기에 실험 결과를 내기 위해 거의 날마다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오하나
연구자로 남을지 말지 망설이느라, 남들이 구직 활동을 할 때, 실험과 산책만 죽어라 했다. 식물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건 여전하나, 결국 연구는 그만하고 싶다고 결정했다. 왠지 모르게 몸이 허약해져서 몸 관리를 하면서 졸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남 몰래 병행하기 시작했지만, 경력 쌓기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취직 준비와는 무관하다. 내년 쯤에는 어디에든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있길 희망한다.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신이 찾아야 할 길 동료들과 나의 현재는 이러하다. 교수도 박사과정으로 갈 학생이 없어지는 것에 대비하여 신입생 공모자 수를 늘렸다. 지난해에 외국인 유학생을 처음으로 받아 본 교수는 내년도에는 중국인 유학생을 받기로 했단다. 큰 규모의 연구비도 차후 어떻게 운용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입학 동기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 다들 졸업을 위해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이고, 차이점이 있다면… 글쎄, 삶을 대하는 태도일까? 그리고 이 태도는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지도교수도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들이 진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상담자의 역할에 머무른 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함께 고민해 주었다. 그러나 조언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누구는 교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서 퇴임 전까지 봉급생활자로 살아갈래요. 누구는 식물보전과 관련된 일을 하며 먹고 살아 갈래요, 라고 정했다. 누구는 교토의 공무원으로 교토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누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는데 글은 계속 쓸 겁니다, 라고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 한 명도 불만 없이 연구생으로 다시 돌아와 연구실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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