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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이공계 위기 해법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등록 2012-12-18 10:43수정 2012-12-18 10:44

2012년 8월11일 열린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학기술정책 제안 타운미팅‘에서 참가자들이 토론 결과를 중간 발표하는 모습. 타운미팅에는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참여해 현장의 연구환경과 이공계 기피 문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 타운미팅 준비모임
2012년 8월11일 열린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학기술정책 제안 타운미팅‘에서 참가자들이 토론 결과를 중간 발표하는 모습. 타운미팅에는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참여해 현장의 연구환경과 이공계 기피 문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 타운미팅 준비모임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9)
이공계 위기, 못 다한 이야기
벌써 이번 12월도 중반이 넘어가고 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시간은 정말 빠르다. 올해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을 할 수 있었기에 2012년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이언스온>에 내가 고민했던 이야기들을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이번 연재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계기로 ‘2012 대선, 과학기술 정책 제안 타운미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영광이었다. 그 타운미팅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아마도 <사이언스온>과 맺은 관계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참석할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이공계 위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솔직히 말하면, 타운미팅 행사 개최 공고를 처음 보고 들었던 기분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었다. 나로서는 정책 혹은 정치에 관여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편에는 기초과학 전반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사이언스온>에 연재 기획서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좀 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처음 참석했던 1차 모임(8월11일)에서 아주 우연히 ‘이공계 위기 극복’이라는 분과의 간사 자리를 덜컥 맡게 돼버렸다. 이런!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렸다.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고,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맡은 바 책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나 역시 개인 참가자로서 의견을 낼 수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참가한 이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두 모아서 최종 정책 제안에 반영되도록 정리하고 조율하는 것이 간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간사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덕분에 1차부터 3차까지 타운미팅이 진행되는 동안 이공계 위기에 대해 정말 많은 분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과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기초과학 분야 대학원생으로서 그간 이공계 위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을 나누고 뜻을 합쳐가는 과정은 생각하지 못한 보람이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타운미팅에 함께 하셨던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 뜻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섭섭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교육개발원이라는 곳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사이언스온>에 연재한 내 글을 보고 원고청탁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주제는 ‘현장에서 본 이공계 위기’였다. 사실 <사이언스온> 원고도 항상 기한보다 늦게 보내는 주제에(죄송합니다. 흑흑.) 또 다른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번 기회를 통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운미팅을 통해 ‘이공계 위기 극복’ 분과의 간사로 활동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분량도 에이(A)4 용지 두세 장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아서, 간략하게 그 못 다한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그 글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하는 <교육정책포럼> 제 234호에 실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연구 풍토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뭔가 묘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다. 그건 분명 그 지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타운미팅에서 마저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입에 맴돌았다.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해 정말 못 다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볼까 한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필요

많은 이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이공계 위기 현상 중 하나는 바로 ‘학생들의 기피’이다. 심지어 전문가들조차도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건 사실이 아니다. 설령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학하지 않는 현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이공계 위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진학하지 않아 이공계의 위기가 생긴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학생들이 기초과학 관련 학과보다 의·치대 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학과 대학원은 인력난을 겪으며 결국 이는 한국 과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언급하는 ‘학생’이라는 것은 ‘뛰어난 학생’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기초과학 분야가 인력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실직적인 연구직을 바라며 진학하는 대학원만 놓고 보더라도 학생은 충분히 많이 있다. 그 학생들이 모두 박사를 받으면 어떻게 먹고 살게 할 수 있을지 교수사회에서 걱정할 정도로 많다. 그리고 박사를 받고도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성실한 연구원들도 역시 많다. 학생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머리 좋고 영특한 학생들이 의·치대보다는 기초과학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담겨 있다. 당연히 어느 전문 분야에서든지 영특한 인재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주장이고, 그래서 이 문제가 기초과학 위기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식의 주장이 계속 되고 있을까? 아마도 그건 우리 사회가 너무 조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 안 가고 대신 과학을 하면 금방 노벨상이라도 받는 과학자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과학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원생들을 한번 살펴보자. 장담하건대, 노벨상 타기를 바라며 연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단지 순수한 열정으로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연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평생 하며 살 수 있기를 꿈꾸며 산다. 이를 위해 모두 자기 스스로와의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분명 그는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격렬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호기심은 분명 누군가가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선 글(“나는 왜 지금 과학을 하고 있을까”)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하는데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과학을 하고자 결정한 이들에게도 그들 개개인이 겪은 결정적 순간이 있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미래 인적 자원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누구나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유로운 환경만 조성되면 그 창의력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다. 국가나 대학에서는 이처럼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미래 과학자들이 그 열정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면 될 터이다.

그런데 대학원에 막상 진학해보면 이런 미래 과학자들의 열정에 물을 끼얹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지도교수와의 문제다. 앞선 글(“지도교수와 학생의 만남은 결혼과 같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성격이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일부 연구실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 좌절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연구실 구성원 사이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의 대부분은 연구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권위적인 연구실 문화 때문에 발생한다. 일부 연구실에 존재하는 권위적인 문화를 걷어낼 수만 있다면 학생들은 좀 더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좋은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은 자명하다.

장기적인 가능성에 투자하는 연구가 필요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언급해야 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의 연구과제 평가 시스템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국가로부터 받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과제가 선정되며, 선정된 과제에 일정한 기간, 일정한 연구비를 지급한다. 기간이 아주 긴 연구과제들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과제들은 3년 미만짜리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제들을 마무리 지으면서, 또 다시 다음번 과제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초과학이라는 것이 단숨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엔 어렵다.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건 억지로 쥐어짜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논문 개수를 늘리기 위해 연구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이공계의 위기, 기초과학의 위기가 아닐까? 이러한 풍토는 연구원들의 창의력을 죽이고 단순한 논문 기계로 만들 뿐이다. 박사를 갓 받은 연구원들 중에서도 단기성과를 뽑아낼 수 있는 이들만 쉽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장기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면 먼저 단기적인 성과를 통해 증명해야 되는데, 단기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분야를 정할 때 단기성과가 잘 나오는 쪽을 선호하게 되며, 그 인력은 결국 공급이 초과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세계를 선도할만한 연구들은 도전적인 연구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적인 연구들은 단기에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내에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이들의 씨가 말라버릴까 나는 두렵다.

모두가 ‘이공계 위기’를 말하는 상황에서 많은 해결책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대학원생으로서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바라는 것은 단지 이 두 가지다. 모든 과학기술자가 존중받는 연구문화, 도전적인 연구의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가 오길 희망해본다.

배현진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천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도. 현재는 주로 은하와 그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이의 진화적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 며, 빛공해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메일 : hjbae.astro@gmail.com 트위터 : @gowithsky 블로그 : http://firststa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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