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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치료효과 논문 실린 학술지 '정체 아리송'

등록 2012-12-18 16:32수정 2012-12-18 16:42

저널 오브 메디컬 리서치
저널 오브 메디컬 리서치


RNL바이오 라정찬 박사 논문 실은 학술지 ‘저널 오브 메디컬 리서치’
학술지인데 논문은 단 1건 뿐…편집위원회도 모호 "이상한 점 투성이"


줄기세포 시술로 소아 뇌성마비 환자의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는 국내 한 벤처기업의 연구 논문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올랐다. 이 논문이 게재됐다는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메디컬 리서치(Journal of Medical Research)>의 출판사는 정식 학술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온라인 과학저널을 내는 이른바 ‘엉터리 학술출판사’로 지목받아 왔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게시판 소리마당에서는 “학술지의 기본적인 요건을 찾을 수 없어 이상하다”는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알앤엘바이오는 지난 12월14일 “뇌성마비 개선 효과가 확인된 사례를 국제 학술지인 <저널 오브 메디컬 리서치>에 발표했다”며 “(알앤엘바이오 내) 줄기세포기술연구원의 라정찬 박사팀이 환자에게 실험을 한 결과 증세가 뚜렷하게 개선되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보도자료를 보면 “생후 3년 7개월의 여자 환자에게 자가 지방 줄기세포를 1억 개씩 4회 투여”했으며 이후에 “안면마비가 치료됐다”는 결과를 전하고 있다. 보도자료에는 증빙자료로서 치료 전후의 환자 사진도 첨부돼 있다.

하지만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는 이 논문은 일반적인 논문 검색 방법으로는 찾기 힘들다.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의 논문조회 누리집인 퍼브메드(Pubmed)에서 저자로 참여한 ‘라정찬(Jeong Chan Ra)’으로 검색해도 해당 논문은 검색되지 않았다.

'valleys.co.in'이라는 주소를 지닌 해당 학술지의 누리집을 찾아가 이곳에서 논문 내용을 확인하려 했으나 이것도 쉽지 않았다. 해당 논문의 제목을 누르면 논문 요약과 참고문헌, 공동저자 이름이 나온다. 원문을 읽기 위해서 논문 파일로 연결되는 ‘피디에프(PDF)’ 버튼을 누르면, 누구나 무료로 논문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공개접근(open access)"을 내건 이 학술지의 온라인 정책과는 달리, 로그인을 하라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회원 가입을 한 다음에 다시 연결을 시도해보니 이번엔 빈 화면만 나타났다. 또한 누리집에 있는 몇몇 안내 버튼은 다음 페이지로 연결되지 않은 채 오류 메시지만 뜨기도 했다.

문제의 학술지 누리집에서는 일반적인 학술지가 갖춰야 할 요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당 학술지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창간되었는지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실리지 않았다. 또한 학술지라면 당연히 체계적으로 갖춰야 하는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에 관한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연속간행물 번호(ISSN)도 없다. 현재 이 학술지 전체에는 라정찬 박사 연구팀의 논문 단 1건만 실려 있다.

소아뇌성마비, 줄기세포치료 가능성 확인‘ 알앤엘바이오 국제논문 발표" 등의 제목으로 보도된 여러 매체의 뉴스들.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소아뇌성마비, 줄기세포치료 가능성 확인‘ 알앤엘바이오 국제논문 발표" 등의 제목으로 보도된 여러 매체의 뉴스들.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이 학술지를 내는 출판사로 알려진 ‘밸리스 인터내셔널(Valleys international)’은 과학저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우후죽순으로 개설되는 이른바 ‘엉터리 온라인 학술출판사’로 일찌감치 지목된 바 있다. 미국 덴버 콜로라도대학 학술사서인 제프리 비올은 이런 학술출판사들을 찾아내서 목록을 만들어 웹에 공개하고 있는데(참조: 사이언스온 관련 기사), 이 목록에는 ‘밸리스 인터내셔널’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출판사 이름을 누르면 곧바로 <저널 오브 메디컬 리서치>의 누리집으로 연결된다.

이에 대해 알앤엘바이오 줄기세포기술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임상사례 발표라서 빠르게 발표하기 위해 권위 있는 학술지보다는 신생 학술지를 선택한 것”이라며 “논문이 다운로드 안 되는 건 채택(accept)은 됐는데 출판(publish)이 안 돼 그렇다고 한다”, “홈페이지는 계속 개편돼 왔으며 지금은 개편 초기라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퍼브메드(Pubmed)에서 신생 학술지는 검색되지 않을 수 있다”, “학술지 첫 호에 왜 우리 논문만 개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불량 학술지로 의심받는 걸 알았는지, 사전 검증과정은 없었는지 묻자 알앤엘바이오 쪽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오픈 억세스 저널’이면서, 저널 스쿠프(Journal scoop), 논문심사제도(peer review)의 요건과 신생 학술지라는 매력에 끌려 투고를 결정했다”며 “불량 학술지라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회사도 손해”라고 밝혔다.

알앤엘바이오 쪽은 취재 과정에서 이 학술지 쪽이 보낸 홍보 메일과 논문 게재 확인 메일, 그리고 라정찬 박사 연구팀의 발표 논문(pdf 파일)을 보내왔다. 학술지의 홍보 메일에는 “2012년 10월 25일에 게재 예정으로, 연구결과, 체계적 문헌 고찰, 학술적 발견을 제출할 저자를 찾는다”고 적혀 있다. 논문 게재 확인 메일(11월 12일)에는 “게재를 축하하며 게재료로 미화 250달러를 보내달라”는 내용과 인도 현지의 계좌정보가 적혀 있다.

알앤엘바이오 쪽은 이메일 답변에서 “이 학술지와 알앤엘바이오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해명했다. 덧붙여 “연구자들의 줄기세포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저널로서 논문의 성격과 맞은 것 같다는 판단으로 투고했다”며 “유명한 모든 저널조차도 초기 단계에서는 임팩트 팩터(논문 인용 지수를 보여주는 수치), 논문 번호 등을 부여받는 데 시간이 걸리며 시간이 지나면 좋은 학술지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또 “논문이 어떤 저널에 실렸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논문의 가치는 논문을 읽은 과학자들이 판단할 것”이라며 “우리 논문은 어느 저널에 내놔도 손색 없는 우수한 논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알앤엘바이오의 이번 연구 발표에 대한 여러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14일 이후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소리마당에서는 이 논문과 학술지에 관해 여러 의문들이 제기돼 왔다. “편집위원회(editorial board)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한 학술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사이비 학술지라는 의심이 든다” 등 반응이 이어지면서 관심 대상이 됐다. 소리마당에 글을 올린 한 연구자는 <사이언스 온>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줄기세포 관련 일을 몇 년 한 저도 해당 학술지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라며 “소리마당 회원들이 좋지 않은 평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방법으로 회사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담긴 게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부 학부생
생명과학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거친 학보사(건대신문) 기자라는 경험으로 ‘기자’라는 새 목표를 얻은 풋내기 학부생. 이공학도들의 놀랍고 재밌는 이야 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제보 메시지와 현장 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jhkim337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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