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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과학기술 연구체제 모범’ 독일 연구회에 가다

등록 2013-01-21 13:39수정 2013-01-21 13:54

막스플랑크연구회 소속 연구소들. 출처/ http://www.mpg.de/institutes
막스플랑크연구회 소속 연구소들. 출처/ http://www.mpg.de/institutes


막스플랑크: 자율 운영, 20~30년 내다본 기초연구
프라운호퍼: 응용, 특허와 기업 서비스에 비중
라이프니치: 기초와 응용의 균형과 조정이 미션


교과부 과학기자 공동취재단 제공 기사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과학의 중심은 미국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학자들의 업적을 평가할 수 있는 논문의 질과 양,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우수 과학자들의 수, 연구에 투입되는 연구비 등 모든 항목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가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미국처럼 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미국처럼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세계 어떤 국가도 경제와 사회보장 복지 비용 등을 도외시한 채 과학에만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정된 자원을 과학 분야에 투입하면서 어떻게 최대한의 과학적 성과와 기술력 향상을 이루는지는 모든 나라가 가진 공통된 숙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독일은 독특한 나라다. 20여 년 전 통일을 이루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유럽 제1의 경제대국 위치를 지키고 있다. 기초과학은 물론 응용과학에서 미국을 쫓고 있고, 2~3년에 한번은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한다. 특히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럽의 기업들이 잇따른 경제위기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와중에서 독일 기업들은 굳건히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런 독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의 비결에 대해 독일인들은 4대 연구회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치 등 독일 과학계를 대표하는 4개 연구회 재단은 과연 한국의 정부출연연구소나 민간 연구소, 기업 연구소와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21일(현지시각) 독일 서부 국경지대 자브뤼켄에 위치한 잘란트 주립대 캠퍼스를 찾았다. 이곳에는 4개 연구회 산하 연구소들이 잘란트대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각각의 연구소는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과학적 성과를 일궈가고 있었다. 각 연구소의 특색과 연구 분야를 살펴봤다.


기초과학의 선두 막스플랑크

기초과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막스플랑크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연구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 전세계 과학자들이 선망하는 연구회로 유명하다. 막스플랑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설립된 후 지금까지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11년 설립된 전신인 카이저빌헬름협회의 16명을 포함하면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손색이 없다. ‘노벨상 사관학교’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한해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연구 결과물이 나오고, 독일 전체 연간 우수 논문의 40%씩을 내놓는다. 막스플랑크는 3개 분야 80여개의 연구소를 독일 전역에 갖고 있다. 해외에도 여러 개의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11년 기준 막스플랑크 연구회 소속 연구원은 2만 5000여명에 이른다. 박사급만 1만 3000여명 수준이다. 외국인 비중 역시 40%다. 연간 운영하는 예산은 15억 유로 수준이다. 각 막스플랑크 연구소들은 전체 예산의 70%가량을 재단과 주정부에서 지원받고, 나머지 30%는 산학 과제 등으로 충당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상하관계가 뚜렷하지 않다. 재단의 평가는 7년에 한번 뿐이고, 연구 분야나 연구 과제는 심사 대상도 아니다. 연구소장은 그룹장들이 번갈아 맡는다. 타인의 연구에 간섭하지 않고 서로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자브뤼켄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정보학연구소(MPII) 역시 이같은 구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베트람 소미에스키 박사는 “무엇이 될지 생각하지 않고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것이 막스플랑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막스플랑크는 최소 20~30년 후를 내다보는 연구를 맡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같은 연구소의 특징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막스플랑크는 각 연구소가 위치한 지역의 대학들과 대부분 학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막스플랑크의 영년직 연구원 중 상당수는 ‘대학교수’ 명함도 갖고 있다. 이런 구도는 주변 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 막스플랑크에서 연구하면서 실력과 아이디어를 키우는 원동력이 된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소미에스키 박사는 “연구원은 논문으로만 평가받고, 상당 시간을 학생들의 교육에 할애하는 역할을 동시에 부여받는다”면서 “80여개의 막스플랑크 연구소간에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여럿이 연구하면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역시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브뤼켄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정보학연구소(MPII)에서.
자브뤼켄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정보학연구소(MPII)에서.


응용 최우선 프라운호퍼

막스플랑크의 반대편에 프라운호퍼가 위치해 있다. ‘프라운호퍼 라인’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발명가, 사업가였던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의 이름을 딴 연구소답게 철저하게 실용적인 연구를 중시한다. 1949년 설립된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조다. 60개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각 분야별로 정보기술, 광학, 제품, 방위산업 등 7개 그룹으로 나뉜다. 2만 명의 인력이 사용하는 예산은 18억 5000만 유로에 이른다. 이 예산 중 프라운호퍼 재단은 평균 30%만을 부담한다. 나머지는 산업체나 지역사회 등에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소별 독립채산제에 가깝다. 이 때문에 프라운호퍼는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면서 ‘돈을 스스로 벌어야 하는’구조다. 산학협력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들은 지역의 중소기업과의 공동연구에 40% 이상을 할애한다. 그 결과 독일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는 강소기업들이 1300여개 수준에 이른다. 막스플랑크가 논문으로 평가받는다면 프라운호퍼는 ‘특허’가 핵심이다. 얼마나 산업에 기여하는지를 보기 위한 핵심 지표다. 프라운호퍼의 지향점은 이 연구소의 대표적인 상품인 MP3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현재 가장 보편화된 음악압축 및 재생 방식인 MP3 압축 알고리즘은 프라운호퍼 집적회로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이 이를 상용화하면서 프라운호퍼는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2005년 한해에만 프라운호퍼 재단이 MP3 라이선스로 벌어들인 돈은 1억 유로에 이른다.

잘란트대 인근에 위치한 프라운호퍼 비파괴시험연구소(IzFP)도 역시 특허와 기업 서비스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건축물이나 교량, 원자력발전소, 철로 등에 손상을 주지 않고 외부에서 강도와 내구성 등을 측정하는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중점적으로 만들어진다. 1972년에 설립돼 드레스덴 분원을 포함해 모두 377명의 박사급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프라운호퍼 IzFP의 주요 연구원들도 역시 잘란트대 교수직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기초과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기술이 어떻게 산업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제 연구소 운영을 통해 보여준다.

막스플랑크의 연구소장들이 2~3년의 임기를 갖고 있는데 반해 프라운호퍼 연구소장들은 종신직이 대부분이다. 지그프라이드 크라우스 부소장은 “소장이 종신직인 것은 연구소 운영에 사업성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소장에게 전권을 맡기고, 철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해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것 역시 프라운호퍼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크라우스 부소장은 “한국 기업들과도 많은 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건축이나 원전 등에서 핵심적인 파트너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잘란트대 인근 라이프니치 신소재연구소(INM).
잘란트대 인근 라이프니치 신소재연구소(INM).


두 마리 토끼 쫓는 라이프니치

막스플랑크나 프라운호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라이프니치 연구회도 역시 독일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 라이프니치 연구회의 구조는 거대과학을 담당하는 헬름홀츠를 포함한 나머지 3대 연구회와는 구조가 크게 다르다. 다른 연구회들이 재단본부의 판단 아래 설립과 폐쇄가 결정되는 데 반해 라이프니치 연구회는 ‘가입된 기관들의 연합’ 형태로 구성된다. 라이프니치 연구회 소속 86개 기관 중에는 연구소 뿐 아니라 뮌헨의 ‘독일 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도 포함돼 있다. 나머지 연구소들 중 상당수도 민간이나 주정부에 의해 설립되었던 것들이 많다.

연구회의 까다로운 가입 심사평가를 통과하면 개별 연구소들은 라이프니치 연구회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다. 5~7년마다 연구회의 중간평가가 실시되고, 역량이 못 미친다고 판단되면 연구회 이름을 빼앗긴다. 대신 이름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연간 14억 유로의 예산을 골고루 분배받아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라이프니치 연구회 소속 기관에는 1만 6500명의 연구원이 있고, 이 중 7700명은 박사급 이상의 과학자다.

라이프니치 연구회는 한국적 시각에서 보면 애매하다. 막스플랑크가 기초에, 프라운호퍼가 응용에 정확하게 포지셔닝하고 있는 반면 라이프니치는 기초부터 응용까지 모든 부분에 걸쳐 있다. 잘란트대 인근 라이프니치 신소재연구소(INM)의 롤란드 롤스 소장은 “재단은 기초와 응용 어느 쪽에도 치중하지 않는 구조를 원한다”면서 “두 가지 부분을 균형있게 조정하는 것이 각 연구소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밝혔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연구소들이 이같은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기초연구는 주로 잘란트대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라이프니치 INM는 100명 규모에 불과하지만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800편 이상의 국제 논문을 출간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스탠포드 등 해외에 분원도 운영하고 있다. 기초연구에서 개발한 연구결과물을 상용화 직전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INM 연구원인 이주석 박사는 “용액에서 파우더를 만드는 기술, 태양전지의 반사를 줄이는 코팅 기술, 자동차를 균일하게 도장하는 기술 등이 이곳 연구소에서 개발돼 상용화까지 이어졌다”면서 “연구소 옆 별도의 공간에서 축소된 크기로 공정까지 실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교과부 과학기자 공동취재단/ 박건형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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