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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나의 작은 우주에게 - 연구생 아빠의 편지

등록 2013-01-23 09:41수정 2013-01-23 09:43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10)



내 작은 우주, 지원아.

우리 지원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도 벌써 3주가 넘었네? 아빠는 너를 보면서 작은 우주를 본단다. 지원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아빠는 종종 너를 볼 수 있었어. 처음엔 아주 작은 세포 몇 덩이로 보여서 우리는 너의 태명을 ‘콩’이라고 지었단다. 그리고 그 안에서 10달 동안이나 무럭무럭 자라더니 3.5 킬로그램의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로 세상에 나왔지.

아빠에겐 이러한 모든 일들은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빅뱅과 인플레이션처럼 느껴졌단다. 말 그대로, 정말 네 속에 우주가 있더구나! 인간의 몸속에 들어 있는 모든 원소들은 별에게서 온 것이기도 해.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에너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너에게도 그 원소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굉장한 에너지가 담겨 있는 것이 보이는구나.

엄마와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 분들인지 궁금하지 않니? 가끔 아빠 품 안에 안겨 있는 너의 눈을 바라보면 ‘이 사람은 누굴까?’라고 고민하는 것 같아 보인단다. 혹시 벌써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란다. 과학 중에서도 우주와 관련된 일들을 연구하는 천문학이라는 학문에 반해서 벌써 13년째 학교에 남아 있단다.

너희 엄마는 아빠랑 같은 과를 다니고 있던 후배였어. 아빠가 군대 생활을 막 마치고 학교에 다시 갔을 무렵에 너희 엄마와 처음 만났단다. 그리고 4년을 연애하고서 결혼을 하게 되었지. 엄마는 아빠보다 훨씬 똑똑하고 또한 학자로서 재능도 많이 갖추었지만, 엄마는 공부를 계속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단다. 왜냐하면 보통 부부가 함께 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결혼을 해도 상당한 기간 동안 따로 살게 될 가능성도 높고 또 아이를 함께 돌보기에도 쉽지 않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너희 엄마는 천문학자로 사는 것보다 우리 가족과 좀 더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선택했단다. 엄마는 4년 간의 천문우주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곧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 학교에서 나오는 돈만 가지고 결혼해서 살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았거든. 집도 너무 비싸고 생활비도…. 그래도 어른들이 많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지원이가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면 이러한 상황들이 많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단다.

아빠는 그때 너희 엄마의 선택을 여전히 존중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요즘도 학과의 교수님들을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엄마의 안부를 물어보시거든. 그만큼 학과에서도 아쉬움이 많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엄마는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이야기해주니 아빠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야.

엄마는 비록 공부를 그만두긴 했지만 아직도 아빠는 엄마와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단다. 아빠가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너희 엄마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 그렇게 엄마랑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아이디어가 점차 구체화되기도 한단다. 그리고 엄마 역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생활을 조금 맛봤기 때문에, 아빠의 대학원 생활을 잘 이해해준단다. 아빠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란다. 너희 엄마를 만날 수 있었고, 또 그 덕분에 우리 지원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지원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너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엄마랑 아빠는 나름 고민을 해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 속에서 별로 좋은 답을 얻지는 못했단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또 한편으로는 위태롭기도 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네가 세상에 나오고 보니 너라는 우주가 어떻게 될지는 이미 그 속에 답이 있는 것만 같아 보이는구나. 그래도 아빠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단다. 아빠는 지원이가 이 세상에서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단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네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아빠는 지원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줄게. 그리고 너의 길을 스스로 찾게 된다면 그 때는 독립해도 괜찮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난다. 처음에 네가 뱃속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빠는 너무나 기뻤어. 그런데 한참 세상엔 흉흉한 소식들이 많이 돌고 있을 때여서 내심 어떻게 키워야할지 걱정이 됐단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함께 이야기했어. ‘아이를 강하게 키우겠다’고 말이야. 아빠는 너를 태권도 학원이나 호신술 학원에 보내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희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 해주셨단다.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이 가장 강하게 키우는 것이다’고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빠가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도,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강하게 자랐기 때문이었던 것이더구나. 그래서 아빠도 너를 단지 몸을 키우는 학원에 보내기보다는 많이 사랑해주며 강하게 자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줄 생각이란다. 그러다보면 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뚝심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단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엄마아빠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단다. 바로 지원이가 언제 태어날지에 대한 것이었어. 너의 출산예정일은 1월 4일이었는데, 문제는 초산인 경우에는 출산예정일에서 2주 정도 빠르기도 하고 느려질 수도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 때문이었어. 빨리 나오는 것도, 늦게 나오는 것도 고민이었단다. 만약 1월 4일보다 빨리 나오게 되면 12월 말에 태어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학교에 1년이나 일찍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어.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살면 경쟁이 심한 학교생활이 될 텐데 1년이나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 되었단다. 그리고 늦게 나오게 된다면 한 달 앞으로 잡혀있는 미국 출장 계획에 약간 차질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었지. 물론 둘 다 모두 큰 고민거리는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쓰이더구나.

12월 들어서는 너에게서 신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리고 너는 예정일을 1주일 앞둔 12월 28일에 나왔고. 주변에서는 너의 호적 신고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의견이 많았어. 며칠 늦춰서 올리는 게 낫지 않느냐 라는 것이었지. 아빠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호적을 일부러 늦게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단다. 처음엔 그 제안도 솔깃하게 여겨져서 조금 생각해보긴 했지만 곧바로 생각을 바꿨어. 너는 스스로의 우주를 갖고 있는데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 아빠가 간섭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단다. 학교를 약간 일찍 가는 편이라서 조금 손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우리 딸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렇게 하는데 뭘. 아빠 생각이 맞지?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랑 엄마, 그리고 지원이는 조만간 함께 미국에 가서 1년간 살 계획이란다. 아빠의 지도교수님께서 안식년으로 미국의 한 연구소로 가시게 되었는데, 아빠는 운 좋게도 그 연구소에 함께 가게 되었단다. 다행히 그쪽 연구소에서 아빠와 함께 연구할 분도 미리 약속했고, 아빠 학교에서 이런 해외연수를 나가는 박사과정 학생에게 지원해주는 장학금도 얻을 수 있었단다. 태어나자마자 힘들게 여권사진과 비자사진을 찍는 네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안쓰럽기도 하단다. 사실 이 모든 계획은 지원이가 엄마 뱃속에 자리 잡기 이전에 생긴 일들이라서 아빠가 계획을 바꾸기가 조금 어려웠단다. 어린 나이에 긴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고 먼 곳에서 조금 고생스러울 수 있겠지만 조금만 이해해주렴.

좀 전까지 배고파서 울더니 아빠 품에서 밥을 먹고 금세 또 잠에 빠지는구나. 배고파서 울 때나 곤하게 잠이 들었을 때, 너의 모습을 볼 때면 아빠는 정말 행복하단다. 비록 아빠는 밤에 잠을 잘 못 이뤄서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너에게 있는 에너지를 보고 있자면 없던 기운도 생겨난다. 너의 그 기운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원동력으로 쓰이겠지? 부디 우렁차게 울고 배부르게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조금 더 크면 함께 별이 잘 보이는 동네에 가서 함께 별자리를 보자꾸나. 그리고 아빠가 연구하고 있는 은하들과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게. 네가 직접 천문학을 전공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는 우주가 이처럼 광활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너에게 알려주고 싶구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아. 아직은 아빠가 대학원생일 뿐이지만, 너를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네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천문학자이자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이렇게 큰 우주와 137억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지원이가 엄마아빠에게 와줘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단다. 언제나 너에게 힘이 되어줄게. 많이 사랑한다.

배현진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천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도. 현재는 주로 은하와 그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이의 진화적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 며, 빛공해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메일 : hjbae.astro@gmail.com 트위터 : @gowithsky 블로그 : http://firststa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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