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라이시
1996년 키스트서 액화수소 연구
당시 연구원 미국쪽서 스카우트
우주복 수소 감지 화학센서 ‘밑돌’
당시 연구원 미국쪽서 스카우트
우주복 수소 감지 화학센서 ‘밑돌’
20여년 전 한국에서 수행한 기초과학 연구가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우주개발 관련 실용연구의 밑돌이 된 것으로 나타나 풀뿌리 기초연구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FSEC)의 알리 라이시 수소연구소장(사진)은 지난달 27일 제주도 해비치리조트에서 ‘자기냉각액화물질 융합연구단’(단장 오인환)이 연 세미나에 참석해 “최근 연구소에서 개발한 수소감지용 실리콘 화학센서 기술이 나사에 의해 채택되는 성과를 냈다. 이는 2000년대 초 액화수소 연구 경험이 있는 한국인 과학자를 채용해 꾸준히 연구를 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는 1970년대 초반 아폴로우주개발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우주숙련기술자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해지고, 석유파동(오일쇼크)까지 겹쳐 연방의회가 에너지 연구를 위해 세운 연구소다. 대학 안에 있지만 사실상 나사 케네디우주센터(KSC)의 산하 연구기관으로, 에너지와 우주 관련 실용기술 연구를 주로 수행한다. 2000년대 초 부시 정부가 수소연구를 강조하자 에너지국(DOE)은 금속을 이용한 수소저장 장치 연구에 나선 반면 나사는 우주에서 쓸 수 있는 액화수소 저장 쪽으로 연구방향을 잡았다. 라이시 소장은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 안에 액화수소 연구를 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가 없어 고민을 하던 터에 한국에서 액화수소 저장 시설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백종훈 박사를 스카우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 박사는1996~1998년 산업자원부 지원을 받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이 진행한 수소액화 및 저장시스템개발 기초연구사업에 연구원으로 참여해 국내 최초로 냉동기를 이용한 수소액화 및 저장장치를 개발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액화수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후속연구는 이어지지 않았다. 백 박사는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위스콘신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가 개발한 수소감지용 실리콘 화학센서는 누출된 수소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로 우주복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수소가 새면 옷 색깔이 변해 바로 알 수 있다. 라이시 소장은 “나사 안의 센서 개발팀과 경쟁을 벌여 우리 기술이 채택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한국과 액화수소 제조 및 저장 연구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협력연구를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알리 라이시 소장 인터뷰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는 어떤 연구기관이며 어떻게 만들어졌나? “1973년께 아폴로우주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우주관련 숙련기술자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즈음 석유파동(오일쇼크)로 정부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정부가 숙련된 기술자들을 어떻게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두가지의 빅 이벤트가 겹치면서 연방의회에서 연구소를 구상했고, 나사의 케네디우주센터가 있는 플로리다주에 의뢰해 센트럴플로리다대학 안에 태양에너지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나사가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에 투자하는 이유는? “케네디우주센터(KSC)는 연방기구인 나사의 로켓 발사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글렌연구소(오하이오 클리블랜드), 고다드연구소(메릴랜드 그린벨트), 존슨연구소(텍사스 휴스턴), 마셜연구소(앨라배마 헌츠빌) 등 다른 지역에 있는 나사 산하 연구소들이 연구기능을 갖고 있는 것과 다르다. 발사업무와 행정업무를 주로 하는 센터이지만, 센터에서 필요한 기본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중후반 우주왕복선 노후화,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가 식다 보니 연구가 필요해졌다. 마셜, 고다드 등 연구소는 기본연구만 하게 돼 있어 기초연구를 하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는 기본 연구와 발사업무 사이에 내부 알력이 존재한다. 케네디우주센서에서도 기본연구가 필요하지만 내부적으로 진행할 수 없어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프로젝트를 아웃소싱해서 수행한 것이다. 공화당은 상업화한 발사를 지지한 반면 민주당에선 상업화 투자의 회수가 빨리 안된다는 점에서 회의적 시각 많았다. 부시 정부 끝나면서 우주산업 투자에 회의적 시각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상업발사에 회사 뛰어드는 데 대해 제재하지는 않지만, 연료 저장 등 작은 회사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계속 살아 있기 바라고 있다. 한국도 상업적 발사까지 겨냥하면서 나로호 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주왕복선이 중간에 폭발하자 투자비, 유가족 보상 등으로 사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생겼다. 나로호를 개발하더라도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바깥에 보이는 정당성·정의성을 넘어 중간에 실패할 수도 있고 유가족 보상 등 이런 모든 문제를 극복해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1983년 수소 연구를 시작하고 1988년 수소연구소를 세웠는데 왜 수소이고, 연구소를 설립한 배경은 무엇인가? “1984년에 수소에 대한 근본적 연구는 나사에서는 시작된 적은 없었고,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에서 연구를 조금 하고 있었다. 수소 연구는 1974년 오일 쇼크 1년 뒤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의 데이비드 블록(David Block), 하와이천연에너지연구소의 패트릭 터커하시(Patric Takashi), 스파키 마추가나(Sparky Matsunaga) 하와이 상원의원, 넬스(Nelson) 플로리다 상원의원 등 4명이 만나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시발이었다.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기 위해 찾은 에너지원이 수소였다. 수소는 물로 갔다 다시 수소로 환원돼 친환경적이면서 에너지 순환이 보존된다는 장점이 오일 쇼크 뒤 부각됐다. 정치인과 실무 연구자들이 만나 시작한 것이다. 수소연료의 활용도는 자동차 회사(GM)에도 있었고, 상업적 우주발사에도 수요가 있었다.” -25년 동안 어떤 연구들이 진행돼 왔는가? “처음엔 메탈하이드라이드(금속에 수소분자를 저장하는 장치)로 시작했다. 자동차 저장용기로 메탈하이드로드를 고안한 것이다. 1983~4년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 하와이대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 등이 에너지국(DOE)으로부터 연간 120만달러씩 4년 동안 연구비를 받아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를 했다. 2년 뒤에 텍사스 에이앤엠(A&M) 대학과 마이애미대학이 이 프로젝트에 추가 참여했다. 1990년대까지는 메탈하이드라이드로 수소 내연기관을 만들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실제 적용하려다 보니 200도까지 올려야 메탈하이드라이드에서 수소가 빠져나왔다. 효율 등 측면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연료전지(Fuel Cell)로 돌려 전기차로 가는 쪽으로 연구가 선회했다. 부시 대통령이 오기 전까지는 5개 학교·연구소에 1년에 200만달러 정도 투자하던 것이 2000년대 초반에는 50개 연구소·학교에 1억달러까지 투자가 늘어났고, 부시 정부 말기에는 수백개 연구소에 20억달러를 투자하기에 이르렀다. 부시는 정권 초기부터 연두연설할 때마다 “임기 끝날 때까지 모든 국민이 수소연료전기차를 끌게 될 것이다”라고 얘기해왔다. 에너지국은 자동차에만 관심이 있었던 반면 나사의 케네디연구센터에서는 우주선에서 쓸 수 있는 액화수소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도 자연스럽게 액화수소 연구를 하게 됐다. 나사에서는 액화수소에 대한 필요성은 있었지만 사람이 내부적으로 없었다. 당시 위스콘신 대학에서 막 학위를 받은 백종훈 박사가 한국에 있을 때 혼자서 액화수소를 만들어 저장하는 장치까지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스카우트했다. -이전에 우주선에 액화수소 안 썼나? “수소는 이미 연구 이전에도 프락스에어(PRAXAiR), 에어프로덕트(Airproduct) 등이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우주발사와 관련해 효율을 높이고, 증발률 낮추는 연구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연구가 나사의 우주개발 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가?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가 나사에 상업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수소감지용 실리콘 화학센서 기술을 이전한 것이다. 이 센서를 우주 환경에서 작업하는 우주복에도 적용하면 색깔이 변하는 것으로 수소 누설을 감지할 수 있다. 또 재생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나사에서 로열티 받으면서 상업화하는 단계까지 가 있다. 나사 안에도 센서 개발팀 있었지만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 기술이 채택되고 상업화까지 적용됐다. 5년 동안 매년 5천만달러씩 투자해 거둔 성과다. 가능성 있는 곳에 집중해 연구작업을 했더니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제주/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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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 라이시 소장 인터뷰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는 어떤 연구기관이며 어떻게 만들어졌나? “1973년께 아폴로우주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우주관련 숙련기술자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즈음 석유파동(오일쇼크)로 정부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정부가 숙련된 기술자들을 어떻게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두가지의 빅 이벤트가 겹치면서 연방의회에서 연구소를 구상했고, 나사의 케네디우주센터가 있는 플로리다주에 의뢰해 센트럴플로리다대학 안에 태양에너지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나사가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에 투자하는 이유는? “케네디우주센터(KSC)는 연방기구인 나사의 로켓 발사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글렌연구소(오하이오 클리블랜드), 고다드연구소(메릴랜드 그린벨트), 존슨연구소(텍사스 휴스턴), 마셜연구소(앨라배마 헌츠빌) 등 다른 지역에 있는 나사 산하 연구소들이 연구기능을 갖고 있는 것과 다르다. 발사업무와 행정업무를 주로 하는 센터이지만, 센터에서 필요한 기본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중후반 우주왕복선 노후화,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가 식다 보니 연구가 필요해졌다. 마셜, 고다드 등 연구소는 기본연구만 하게 돼 있어 기초연구를 하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는 기본 연구와 발사업무 사이에 내부 알력이 존재한다. 케네디우주센서에서도 기본연구가 필요하지만 내부적으로 진행할 수 없어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프로젝트를 아웃소싱해서 수행한 것이다. 공화당은 상업화한 발사를 지지한 반면 민주당에선 상업화 투자의 회수가 빨리 안된다는 점에서 회의적 시각 많았다. 부시 정부 끝나면서 우주산업 투자에 회의적 시각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상업발사에 회사 뛰어드는 데 대해 제재하지는 않지만, 연료 저장 등 작은 회사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계속 살아 있기 바라고 있다. 한국도 상업적 발사까지 겨냥하면서 나로호 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주왕복선이 중간에 폭발하자 투자비, 유가족 보상 등으로 사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생겼다. 나로호를 개발하더라도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바깥에 보이는 정당성·정의성을 넘어 중간에 실패할 수도 있고 유가족 보상 등 이런 모든 문제를 극복해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1983년 수소 연구를 시작하고 1988년 수소연구소를 세웠는데 왜 수소이고, 연구소를 설립한 배경은 무엇인가? “1984년에 수소에 대한 근본적 연구는 나사에서는 시작된 적은 없었고,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에서 연구를 조금 하고 있었다. 수소 연구는 1974년 오일 쇼크 1년 뒤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의 데이비드 블록(David Block), 하와이천연에너지연구소의 패트릭 터커하시(Patric Takashi), 스파키 마추가나(Sparky Matsunaga) 하와이 상원의원, 넬스(Nelson) 플로리다 상원의원 등 4명이 만나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시발이었다.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기 위해 찾은 에너지원이 수소였다. 수소는 물로 갔다 다시 수소로 환원돼 친환경적이면서 에너지 순환이 보존된다는 장점이 오일 쇼크 뒤 부각됐다. 정치인과 실무 연구자들이 만나 시작한 것이다. 수소연료의 활용도는 자동차 회사(GM)에도 있었고, 상업적 우주발사에도 수요가 있었다.” -25년 동안 어떤 연구들이 진행돼 왔는가? “처음엔 메탈하이드라이드(금속에 수소분자를 저장하는 장치)로 시작했다. 자동차 저장용기로 메탈하이드로드를 고안한 것이다. 1983~4년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 하와이대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 등이 에너지국(DOE)으로부터 연간 120만달러씩 4년 동안 연구비를 받아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를 했다. 2년 뒤에 텍사스 에이앤엠(A&M) 대학과 마이애미대학이 이 프로젝트에 추가 참여했다. 1990년대까지는 메탈하이드라이드로 수소 내연기관을 만들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실제 적용하려다 보니 200도까지 올려야 메탈하이드라이드에서 수소가 빠져나왔다. 효율 등 측면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연료전지(Fuel Cell)로 돌려 전기차로 가는 쪽으로 연구가 선회했다. 부시 대통령이 오기 전까지는 5개 학교·연구소에 1년에 200만달러 정도 투자하던 것이 2000년대 초반에는 50개 연구소·학교에 1억달러까지 투자가 늘어났고, 부시 정부 말기에는 수백개 연구소에 20억달러를 투자하기에 이르렀다. 부시는 정권 초기부터 연두연설할 때마다 “임기 끝날 때까지 모든 국민이 수소연료전기차를 끌게 될 것이다”라고 얘기해왔다. 에너지국은 자동차에만 관심이 있었던 반면 나사의 케네디연구센터에서는 우주선에서 쓸 수 있는 액화수소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도 자연스럽게 액화수소 연구를 하게 됐다. 나사에서는 액화수소에 대한 필요성은 있었지만 사람이 내부적으로 없었다. 당시 위스콘신 대학에서 막 학위를 받은 백종훈 박사가 한국에 있을 때 혼자서 액화수소를 만들어 저장하는 장치까지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스카우트했다. -이전에 우주선에 액화수소 안 썼나? “수소는 이미 연구 이전에도 프락스에어(PRAXAiR), 에어프로덕트(Airproduct) 등이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우주발사와 관련해 효율을 높이고, 증발률 낮추는 연구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연구가 나사의 우주개발 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가?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가 나사에 상업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수소감지용 실리콘 화학센서 기술을 이전한 것이다. 이 센서를 우주 환경에서 작업하는 우주복에도 적용하면 색깔이 변하는 것으로 수소 누설을 감지할 수 있다. 또 재생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나사에서 로열티 받으면서 상업화하는 단계까지 가 있다. 나사 안에도 센서 개발팀 있었지만 플로리다태양에너지연구소 기술이 채택되고 상업화까지 적용됐다. 5년 동안 매년 5천만달러씩 투자해 거둔 성과다. 가능성 있는 곳에 집중해 연구작업을 했더니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제주/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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