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성격 형성은 동물의 생활사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다양한 성격이 존재할수록, 그래서 개체들의 생활사 전략이 다양해질수록 환경 변화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산개들. <한겨레> 자료사진
[사이언스온] 같은 동물 다른 성격
진화생태학자의 실험연구 주제와 심지어 사고방식은 어떤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오랫동안 야생 바닷새를 연구하다가 최근에 ‘큰가시고기’라는 물고기의 생태 연구로 방향을 바꾼 이후로 날마다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들한테서 조류에서 어류로 사고의 전환을 강요당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2년여에 걸쳐 진행될 연구를 위해 지난겨울에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강에 사는 큰가시고기를 스페인 비고대학의 우리 연구실에 들였다. 연구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장기의 물고기를 잡아다가 정성껏 잘 돌보면 야생에서 그런 것처럼 대부분이 봄에 성숙해서 번식을 시작한다.
물고기들이 하는 짓이래야 먹고 싸고 자라는 게 고작이겠지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마다 생긴 것도 다르고 하는 짓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다가가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반기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개체는 쳐다보기만 해도 질색을 하며 숨어버려서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행동은 같은 연구자를 날마다 봐도 쉽게 바뀌지 않고 반복된다. 게다가 대담한 물고기는 다른 큰가시고기에 더 호전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을 때 더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행동을 보인다. 반대로 겁 많은 물고기는 다른 개체들과 이루는 사회적 관계나 짝짓기 등 모든 면에서 신중하다.
사실 동물들의 서로 다른 행동방식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하다. 붙임성이 좋아 어떤 사람이나 잘 따르는 개가 있는가 하면, 겁이 많아 집 밖에 데리고 나가기가 힘든 개도 있다. 사람을 잘 따르는 명랑한 개는 공원에서 만난 다른 개와 잘 놀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모험심도 강한 편이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심지어 서로 다른 종이면서도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닭과 개, 고양이와 개가 텔레비전의 동물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한다.
이렇게 주변의 생물적, 비생물적 환경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동방식의 일정한 어떤 경향성을 ‘성격’이라고 한다. 다양한 성격은 어떻게 발현되며, 동물이 살아가는 문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오랜 진화를 거치며
다양한 성격이 유지되는 것은
한 형질에만 생존과 번식의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공평한 자연선택 때문이리라 2012년 영국에서 큰가시고기의 다른 두 개체군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큰가시고기가 갑자기 새로운 환경을 접했을 때 탐색 행동을 보이는 정도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는 유전적인 연관성을 지닌다고 한다. 즉, 같은 유전자가 물고기의 대담성과 적응력에 함께 영향을 주어서, 부분적으로는 유전자의 발현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포식자의 위협에 자주 노출되는 서식지에서 온 물고기들한테서는 이런 유전적 연관성이 그렇지 않은 물고기들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격이란 건 위험한 곳에 사는 개체들에게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무서운 포식자의 위협 때문에 큰가시고기의 성격이 진화했다는 말인가? 캐나다 맥길대학,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등 여러 연구팀이 지난 십여년 동안 쥐를 대상으로 공동진행한 일련의 신경의학 연구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느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출산 뒤의 엄마 쥐도 한동안 갓 태어난 새끼를 돌보는데, 이때 젖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혀로 핥아주는 스킨십을 하기도 한다. 새끼를 핥아주는 정도는 엄마 쥐 개체마다 다른데, 어미의 이런 행동이 새끼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가 자주 핥아준 쥐는 어른이 되어 느긋한 성격에 스트레스에도 둔감한 형질을 갖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쥐는 겁도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후 첫 주 동안에 엄마 쥐의 스킨십을 충분히 받은 새끼 쥐에서는 특정한 ‘후성유전 물질’의 작용이 달라져서 쥐의 스트레스 반응을 감소시키는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성유전 물질은 디엔에이에 달라붙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같은 유전자를 지닌 개체라 할지라도, 후성유전 물질의 조절 작용이 달라지면 유전자가 발현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으며, 또한 발현의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큰가시고기나 쥐나 살아가는 데 그런 성격이 무슨 도움이 될까?
우리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는 것을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겁을 내기보다는 대담하고 느긋하게 살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길을 걷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극심한 기근에 굶어 죽을 위험이 없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과거의 인간 사회, 심지어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다. 엄마 쥐가 느긋하게 스킨십에 열중할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난 새끼 쥐는 위험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같은 환경에 사는 개체들한테서 다양한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한 개체의 성격이 그 개체의 여러 가지 행동방식에 일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도 미스터리다. 큰가시고기의 경우에, 포식자에게 대담하면서 동시에 동족 이웃에게 호전적인 성격이 정말 이득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포식자에게는 적당히 겁을 내면서 이웃에게는 자기 세력권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조금 거칠게 대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다양한 성격이 오랜 진화를 거치며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형질에만 생존과 번식의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어느 정도 공평한 자연선택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생활사 전략, 즉 살아가는 방식의 다양성이 성격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담한 큰가시고기는 포식자 위험에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열심히 탐색해 먹이와 서식지 같은 자원을 확보하고, 동족의 다른 물고기에 공격적이어서 그 자원을 지켜낸다. 그러므로 대담한 물고기는 당장의 번식에 유리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자식을 남길 수 있을지는 모르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겁쟁이 물고기는 어떠한가? 신중한 그들은 당장의 번식에서 많은 이득을 얻지는 못할 것이나, 대신 더 오래 살아남아서 다음해의 번식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나이에 따른 생활사 전략의 변화가 성격에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2012년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마다가스카르 섬에 서식하는 회색쥐여우원숭이도 개체마다 대담하고 신중한 정도가 다르다. 그런데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젊은 수컷은 생존을 위해 몸을 사리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노련한 수컷은 더 많은 암컷과 짝을 짓기 위해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화하는 다양한 환경에서, 이런 성격의 다양성은 더 빛을 발한다. 대담한 단기투자의 생활사 전략, 신중한 장기투자의 생활사 전략. 더 많은 위기와 위험이 존재할수록, 이 두 가지 전략 중에 누가 승자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김신연 스페인 비고대학 생물학과 연구교수
이 글은 사이언스온의 연재물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에 실린 글을 필자가 다시 구성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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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시선을 피해 은신처에 숨은 겁쟁이 큰가시고기. 김신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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