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서 연료전지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모니터로 지켜보며 시연하는 필자의 모습.
[사이언스 온] 살며 연구하며
연구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뜻하지 않은 때와 곳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컴퓨터공학의 한 분야로 내장형 시스템의 설계를 전공하는 나는 플래시 메모리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전력 소모를 줄이는 기법을 연구한다. 일반인한테는 당연히 생소하겠지만, 내가 늘 골몰하던 이 주제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물론 다른 연구도 많았지만, 두 주제는 참 특별하게 기억된다.
석사과정 때 국내 어느 기업과 경쟁사 제품의 플래시 메모리를 두고 전력 소비를 비교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우선 전력 소비량을 비교하기 위해 샘플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측정했다. 플래시 메모리는 지우기 과정으로 모든 데이터를 1로 만들고 그다음에 선택적으로 0을 넣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데이터 저장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0의 개수에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이지만 예측과 실제는 자주 달랐고, 이번에도 실제의 측정 결과는 제멋대로여서 애를 먹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중에 함께 계단을 내려가던 한 선배가 측정실험에 쓴 메모리가 혹시 엠엘시(MLC) 플래시 아니냐 하고 물으며 얘기를 꺼냈다. 엠엘시 플래시 메모리는 저장단위에 여러 비트를 저장하기에 해당 비트의 연결 상태에 따라 전력 소모 양상이 달라진다.
허겁지겁 돌아와 결과를 새로 해석하니 새로 예측한 값과 측정값의 추세가 거의 정확히 일치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던 세상이 어느 한순간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박사학위 논문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생각난 곳도 의외였다. 공동연구를 위해 미국에 머물던 중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오엘이디의 전력 소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기존 액정 디스플레이(LCD)는 후면 발광체의 밝기를 조절해 전력 소비량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엘이디는 픽셀 자체가 발광하는 구조이므로 이 기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생각을 계속했다. 어디가 어떻게 비슷한지 또 다른지 생각하다가 구동전압을 조절하면 후면 발광체를 조절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술에 적당히 취한 채 불도 켜지 않고서 손에 잡히는 대로 메모를 했다. 다음날 느낌표가 몇 개씩 들어간 갈겨쓴 내 글씨를 나도 금방 해독하지 못하고서 이거 대체 뭐라고 쓴 거야 하며 한참 들여다봤다.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뜻밖의 기회에 아이디어가 내 곁에 찾아오기도 한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글·사진 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연구원(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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