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내일] 사진이 있는 기상 이야기
초여름 더위에 고대하던 장마가 징그러워질 무렵이면 이에 질세라 찾아드는 것이 열대야다. 기상청은 열대야를 전날 저녁 6시1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로 정의하고 있다. 애초 일본 기상청 정의를 따라 일 최저기온이 25도인 날을 가리켰으나, 아침에는 최저기온이 25도를 넘었는데 저녁에 25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의 경우 밤새 잠을 설치게 하고도 열대야에 들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기상청은 모순을 해결하려 2009년 정의를 바꿨다. 일본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열대야는 일본의 기상 수필가 구라시마 아쓰시가 만든 말이라 전해진다. 일본 언론에서는 최저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을 가리켜 ‘초열대야’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로 높았던 최저기온은 1951년 8월20일 광주의 29.8도였다. 서울은 1994년 7월29일 28.7도까지 올라갔다.
지구 온난화로 열대야 현상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일본 도쿄는 1930~1940년대 열대야가 연간 10일 이하였는데 1990년대 이후에는 30~40일에 이른다. 2010년에는 56일,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49일이나 됐다. 공주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초까지는 28도 이하의 열대야가 주로 발생한 반면 1990년 후반부터는 28도 이상의 강한 열대야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는 온실가스 저감 정책을 실현한 대표농도경로(RCP) 4.5의 경우에도 열대야 일수가 현재 한반도 평균 연간 2.8일 수준에서 21세기 후반기(2071~2100년)에는 13.6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제주도의 연평균 열대야 수(9.5일)가 가장 높지만 21세기 후반기에는 광주(41.9일)가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가 전국 61개 지점에서 저녁·심야·새벽의 열대야를 분석한 결과로는 열대야 현상이 장마가 끝나고 제2차 우기가 시작되기 전의 장마 휴지기(7월 중순~8월 초순)에 주로 발생하는데, 이 시기 새벽(7%)이나 심야(20%)까지 지속되는 열대야보다는 저녁(50%)에 발생해 심야 이전에 사라지는 열대야가 주로 많다. 새벽에는 그나마 잠을 잘 만해진다는 얘기다.
열대야는 무엇보다 수면 부족을 일으켜 건강을 해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만성 수면 부족이 이틀 동안 밤을 꼬박 새웠을 때 만큼 주의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구대림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과)는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고혈압 발생 위험이 2배 늘어난다. 잠들기 1~2시간 전에 냉방기나 과일 섭취 등으로 체온을 떨어뜨리고 커피 섭취나 심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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