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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작지만 규칙적인 떨림, 신경세포를 깨운다

등록 2013-08-13 20:56

음의 높낮이를 재빠르게 변화시키는 연주와 성악의 기법인 비브라토가 가미된 소리는 여러 소리가 뒤섞인 곳에서도 또렷하게 멀리 전달된다. 비브라토가 지닌 물리적 특성 덕분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리를 더 잘 구분해내는 청각 신경세포들의 인지적 특성 때문임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사진은 아름다운 비브라토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1901~1987)의 연주 장면.   jaschaheifetzsociety.org
음의 높낮이를 재빠르게 변화시키는 연주와 성악의 기법인 비브라토가 가미된 소리는 여러 소리가 뒤섞인 곳에서도 또렷하게 멀리 전달된다. 비브라토가 지닌 물리적 특성 덕분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리를 더 잘 구분해내는 청각 신경세포들의 인지적 특성 때문임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사진은 아름다운 비브라토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1901~1987)의 연주 장면. jaschaheifetzsociety.org
[사이언스 온] ‘비브라토’는 왜 더 잘 들릴까
소문난 맛집의 점심시간. 겨우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곧바로 주문을 내고,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주방을 향해 큰 소리로 주문 내용을 외친다. 그 소리는 식당 안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를 뚫고서 주방까지 정확하게 전달된다.

이렇게 여러 소리가 뒤섞인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소리를 다른 이들한테 잘 전해야 하는 직업인이 또 있다. 바로 음악가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로 바이올린 소리는 우렁찬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공연장 구석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소리는 다른 큰 소리에 쉽게 묻히며, 멀리 가기 어렵다. 그래서 음악가들은 특별한 기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바로 ‘비브라토’다. 음악가들은 비브라토가 실린 소리는 크기가 작더라도 공연장 구석까지 더 잘 전달된다고 말한다.

비브라토는 지속되는 음의 높이(음고)를 재빠르게 낮췄다 높였다 하는 테크닉이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지판을 짚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소리에 비브라토를 가미하는 동작이다. 우리가 흔히 ‘바이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가수들의 기교 역시 목소리의 강약 변화에 비브라토를 섞은 것이다. 이런 비브라토는 단조로울 수 있는 지속음에 변화를 주어 소리를 다채롭게 하고, 음의 높낮이를 다소 모호하게 만들지만 그 덕분에 풍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비브라토를 통해 소리를 더 멀리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다. 비브라토를 더하면 소리가 더 커지는 것일까? 아니면 비브라토가 걸린 소리의 파동은 더 멀리 날아가는 것일까? 그러나 물리적으로 측정해보면 비브라토가 더해졌다고 해서 평균 소리 크기가 달라지거나, 거리가 멀어져도 소리 크기가 더 잘 유지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는 공연장 구석까지 더 잘 전해진다’라는 이야기는 대체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 말일까?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의 루돌프 라시 교수는 두 개의 소리 중 하나가 나머지 하나 때문에 들리지 않는 현상에 관한 실험을 했다. 그는 높고 낮은 두 소리를 동시에 들려주되, 높은 음의 크기를 조금씩 줄이면서 청취자가 두 소리를 다 들었는지, 한 소리만 들었는지 물어보았다.

파도같은 큰 소리를 뚫고
또렷이 들리는 비브라토

음마다 반응세포 따로 있다
뒤섞여 있는 음들 속에서
널뛰듯 반복되는 소리 패턴은
흩어져 있는 세포들을 정렬시키고
패턴이 반복될 때마다 이들은
무리를 이루며 존재를 과시한다
마치 응원석의 카드섹션처럼

실험 결과, 청취자들은 높은 음이 낮은 음보다 20데시벨 작을 때부터 높은 음이 낮은 음에 가려 들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제 라시 교수는 높은 음에 비브라토를 가미한 상태에서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높은 소리의 음량이 낮은 소리보다 37데시벨 더 작을 때부터 높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즉 비브라토가 없을 때보다 17데시벨이나 더 작아질 때까지 높은 음이 들리다가 이후에야 사라졌다. 이는 곧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가 대략 여덟 배 더 먼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열린 공간에선 거리가 두 배 멀어질 때 소리 크기는 6데시벨 작아지는데, 17데시벨은 대략 6데시벨의 세 배이기 때문이다). 비브라토 덕분에 실제로 소리가 여덟 배 멀리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덟 배 먼 곳에서도 다른 소리에 가려지지 않고 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우리는 왜 비브라토가 걸린 소리를 더 쉽게 구분해내는 걸까?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무냐 엘힐랄리 교수는 2009년 과학저널 <뉴런>에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 뇌가 어떻게 여러 소리를 분리하는지 밝혔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걸어올 때 우리는 두 사람의 존재를 쉽게 알아차린다. 사실 두 목소리의 파동은 공기 중에서 완전히 섞인 채로 우리 귀에 도달하는데도, 우리 뇌는 그 파동을 두 목소리의 중간쯤 되는 하나의 목소리로 파악하지 않고 두 목소리를 온전히 분리해낸다. 이는 어떤 컴퓨터도 아직 잘 해내지 못하는 인간의 특별한 감각 기능이다.

언뜻 생각하면 쉬울 것도 같다. 두 개의 다른 목소리는 각각 다른 주파수의 파동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 뇌에 각기 다른 주파수에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따로 있다면, 어느 신경세포가 반응했는지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 뇌에는 높은 주파수 소리와 낮은 주파수 소리에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따로 있다. 게다가 그 신경세포들은 각기 담당한 주파수에 따라 대략 줄지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소리에는 대단히 많은, 그것도 서로 동떨어진 주파수 성분이 섞여 있어서, 한 가지 소리의 지각에도 서로 동떨어져 있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한꺼번에 관여한다. 그래서 두 개의 소리가 동시에 입력되면 신경세포들의 반응은 마치 월드컵 결승 경기를 응원하러 경기장에 온 수만명의 관중이 진영 없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어지러운 모양을 띠게 된다.

엘힐랄리 교수가 입증한 것은, 한 소리에 반응할 여러 신경세포들의 ‘위치’를 찾아내는 과정에는 신경세포들이 반응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개의 소리가 있을 때 각 소리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의 위치는 어지럽게 뒤섞여 있더라도, 만약 두 소리가 각기 다른 주기로 반복되어, 어떤 때에는 일련의 신경세포들이 일사불란하게 반응하고 다른 때에는 또 다른 신경들이 반응한다면, 신경들이 반응하는 ‘시간’에 따라 각기 동떨어진 수많은 신경세포를 두 무리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게 소리에 ‘시간적 패턴’이 발생하면 멀리 떨어진 각각의 신경세포들은 비로소 서로 ‘동료’를 알아보게 된다.

이는 마치 축구장 응원석의 ‘카드섹션’과 같다. 수적으로 열세인 응원단이라 해도, 각기 동떨어진 자리에 앉아 카드를 가지고 있고, 응원단장의 구호에 따라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자신의 카드를 높이 들면 순간적으로 관중석에는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글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카드를 쥔 관중이 같은 시간에 자신의 카드를 내보이지 않고 제각기 다른 시간에 카드를 들었다면 글자들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비브라토를 생각해보자. 비브라토는 소리에 시간적인 변화 패턴을 만들고, 그 소리를 구성하는 수많은 주파수 성분들이 그 시간적 패턴을 공유하게 된다. 즉 널리 분포한 신경세포들이 일사불란하게 같은 시간에 자신의 카드를 내보이게 된다. 그 시간적 일치에 의해 신경세포들은 자신의 동료들의 위치를 알아차릴 수 있고, 그 위치를 종합하면 그 신경세포들이 모여 만든 문장이 명확하게 읽힌다. 그중 일부 신경세포의 반응이 다른 소리에 의해 방해를 받더라도(주변의 다른 편 관중이 함께 요동치더라도) 그 이미지는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즉,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는 더 멀리 전달된다’라는 음악가의 직관은 단지 물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큰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작은 소리가 ‘시간적 변화 패턴’을 지님으로써 주변 소리와 잘 구분되어 들리는 지각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로 바이올린 연주자가 비브라토를 가미해 연주하면 솔로의 선율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반면 합창단의 단원이 자신의 솔로 파트가 아닌 곳에서 유독 남과 다른 패턴의 비브라토를 사용하면 지휘자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여러 악기나 여러 사람의 소리가 더해져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중 유독 어떤 소리가 마음에 와 닿았을 때, 그 소리가 가장 큰 소리일 필요는 없다. 여러 소리가 갖가지 조화를 이루는 음악에서는 더 여린 소리가 더 ‘아름다운’ 비브라토 덕분에 더 잘 들리기도 한다.

최인용 미국 보스턴대학 이론신경과학센터 연구원(청각신경과학)

※사이언스온 연재물 ‘소리와 음악에 빠진 공학자’에 썼던 글을 필자가 다듬어 다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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