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영중인 <감기>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치명적 전염병이 아무도 모르게 급속도로 번져 한 도시를 폐쇄해야 할 정도로 참극을 빚는다는 시나리오로 짜여 있다. 그러나 신·변종 바이러스 등 바이오유해물질을 실시간으로 검색해 조기경보를 해주는 ‘헬스가드’ 시스템이 완성되면 이런 시나리오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아이러브시네마 제공
[과학과 내일] 융복합 헬스가드 연구단 출범
경기도 평택항을 통해 밀입국하려던 외국인들이 컨테이너 속에서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간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외국인이 탈출해 분당으로 흘러들어가고 이들과 접촉한 밀입국 중개인도 병에 걸려 피를 토하며 죽는다. 전염병은 초당 3.4명을 감염시키며 순식간에 분당 곳곳으로 번져나가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져든다. 정부는 도시를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감염환자를 집단 격리수용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종합운동장에 매장돼 불태워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감기>의 장면들이다. 감염 48시간 만에 사망하는 이 질병은 조류인플루엔자의 변종바이러스에서 유래됐다는 설정만 등장할 뿐 정확한 발생지와 감염 경로는 제시되지 않는다. 운동장에 쌓인 사람들의 주검은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파동 때 생매장당하던 동물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화양’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4주간의 참극을 그린 근간 소설 <28> 또한 개와 사람 사이에 전이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염병은 급속도로 번져 도시 전체가 판데믹(전염병의 대유행) 상태에 빠지고 타지역과 격리된다. 전염병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개들은 포획돼 생매장되거나 사살된다. 작가 정유정은 돼지 생매장 동영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10년쯤 뒤에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도시 전체에 확산돼 대재앙이 벌어진다는 이런 시나리오를 영화감독이나 소설가가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글로벌프런티어사업단으로 선정된 ‘빈트(BINT, 바이오·아이티·나노기술) 융·복합 헬스가드 연구단’은 신종 인플루엔자, 신·변종 바이러스, 슈퍼박테리아와 같은 바이오 유해물질 탐지 원천기술을 개발해 “한방에 바이오 유해물질을 검색해 사전에 차단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단장을 맡고 있는 정봉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바이오나노연구센터장은 “헬스가드를 대중교통, 공공장소, 가정, 병원, 학교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가동해 바이오 유해물질에 의한 감염병과 생물 테러 등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헬스가드는 바이오 유해물질 포집-전처리-검출-신호전송이 실시간으로 운용되는 통합시스템 및 네트워크, 곧 ‘전염병 조기경보 체제’를 말한다. 연구단에는 9년 동안 해마다 100억원씩 약 1000억원의 연구비가 투여된다.
포집에서 검출, 신호전송까지
전염병 조기경보체제 구축
완성땐 천문학적 피해 최소화
진단 시장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 우선은 유해물 정밀 포착이 관건
바이러스 변종 예측도 가능해야
유해물 결합 수용체 개발에도 도전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헬스가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를 하려는 이유는 바이오 유해물질에 의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사전에 피해 확산을 막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다.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에 의한 우리나라의 피해액은 6300억원에 이르고, 2010년 구제역 확산 때는 피해액이 3조원에 달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에 의한 전세계 피해액은 500억달러(약 55조원)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GDP)이 3.8% 감소하고 실업률은 5.5%로 치솟았다. 호텔 공실률이 65%에 이르고 항공사 이윤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역학조사 결과 사스는 홍콩의 한 호텔 9층에 머물렀던 투숙객에게서 전파되기 시작됐다. 강태준 생명연 바이오나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만약 당시 호텔에 헬스가드 시스템이 설치돼 조기경보가 발령되고 환자를 격리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H1N1이나 H5N1같은 신·변종 인플루엔자와 코로나바이러스, 살인진드기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 슈퍼박테리아, 보툴리늄같은 독소 등을 일차 타겟으로 하고 있다. 이들을 검출하기 위해 가장 우선해 개발돼야 하는 것이 공기나 환자의 혈액, 침, 배설물 등 검체를 특정 채널에 흘려보낼 때 이들 유해물질을 정밀하게 잡아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3디(D) 나노-마이크로 하이브리드 구조체 제작 기술 개발을 맡고 있는 이재종 한국기계연구원 나노공정연구실 책임연구원은 “기존의 나노 채널은 보통 평면으로 만들어져 민감도가 떨어졌다. 채널의 바닥면뿐만 아니라 나머지 3개 면에까지 수직으로 패턴(구조체)을 만들고 여기에 항체(바이오마커)를 붙이면 면적이 늘어나 바이오 유해물질과의 반응속도도 빨라지고 민감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작업은 바이러스나 병원균의 출현을 예측하는 일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 종류에 따라 170여가지 조합이 나온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재조합이나 돌연변이를 통해 변종이 생길 때 일정한 패턴이 있다. 송대섭 생명연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 선임연구원은 ”바이오인포매틱스(생물정보학)를 이용하면 일기예보처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재처럼 사막에서 바늘 찾는 수준이 아니라 사지선다형 정도까지는 바이러스 변종을 예측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박테리아는 항생제 내성을 지녀 무소불위의 증식률을 가진 세균(박테리아)을 말한다. 잘 알려진 ‘엠아르에스에이’(MRSA) 슈퍼박테리아는 2010년 미국에서만 8만2000명이 감염돼 이 가운데 1만1478명이 숨졌다. 하지만 슈퍼박테리아가 더욱 무서운 것은 인공배양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인류는 그동안 인공 배지에서 잘 자라는 미생물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왔다. 항생제도 이들 미생물에 적용되는 것들만 개발됐다. 하지만 박테리아 가운데 99% 이상은 인공 배지에서 자라지 않는다. 류충민 생명연 슈퍼박테리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메타지노믹스를 이용하면 직접 배양하지 않더라도 특정 디엔에이를 지닌 미생물을 분류해내고 항생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타게놈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의 게놈이 서로 섞여 있는 형태를 말하며, 메타지노믹스는 이를 분석해 미생물을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바이오 유해물질의 출현을 예측한다 하더라도 이들을 붙잡아내기 위해서는 유해물질들과 잘 결합하는 ‘리셉터’(수용체)를 개발해야 한다. 바이러스의 경우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항원으로 삼고 이와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이용해 잡아낸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아주 작은 양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의 항체와 같은 리셉터보다 훨씬 높은 결합력을 가진 강력한 ‘슈퍼 리셉터’가 필요하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화학과의 정용원 교수 연구팀은 슈퍼 리셉터를 개발하기 위해 옷이나 신발에 쓰이는 찍찍이(벨크로)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벨크로는 아주 약한 고리들이 몇십개 몇백개가 모여 강한 결합으로 접착시켜주는 원리다. 약한 리셉터들을 잘 조립함으로써 여러 개가 동시에 원하는 바이러스에 결합해 강력하게 잡아내는 리셉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용원 교수는 “나노(10억분의 1) 크기의 단백질을 레고 조립하듯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국가 차원의 감염성 유해물질 대응 시스템은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 등 대다수 국가들이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의 바이오워치 프로젝트나 일본의 신흥 감염증 통제 방안 등이 추진되고 있다. 세계시장도 성장중이다.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비시시(BCC)가 지난해 내놓은 조사보고서를 보면, 바이오 유해물질 진단 및 모니터링 시장은 연평균 12.5%의 증가율을 보여 올해 900억달러에서 2016년에는 1300억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감염성 유해물질 진단 시장은 지난해 300억달러 규모에서 2017년에는 4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봉현 단장은 “실험실·연구실에서 끝나는 연구가 아닌 실제 상황에 응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앞선 나노·아이티기술을 활용해 감염성 유해물질 진단의 세계 표준을 만들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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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파동이 일어났던 2010년 12월24일 경기도 파주의 한 구제역 매몰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아 있는 돼지 수천마리를 생매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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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변종 예측도 가능해야
유해물 결합 수용체 개발에도 도전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헬스가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를 하려는 이유는 바이오 유해물질에 의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사전에 피해 확산을 막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다.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에 의한 우리나라의 피해액은 6300억원에 이르고, 2010년 구제역 확산 때는 피해액이 3조원에 달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에 의한 전세계 피해액은 500억달러(약 55조원)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GDP)이 3.8% 감소하고 실업률은 5.5%로 치솟았다. 호텔 공실률이 65%에 이르고 항공사 이윤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역학조사 결과 사스는 홍콩의 한 호텔 9층에 머물렀던 투숙객에게서 전파되기 시작됐다. 강태준 생명연 바이오나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만약 당시 호텔에 헬스가드 시스템이 설치돼 조기경보가 발령되고 환자를 격리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H1N1이나 H5N1같은 신·변종 인플루엔자와 코로나바이러스, 살인진드기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 슈퍼박테리아, 보툴리늄같은 독소 등을 일차 타겟으로 하고 있다. 이들을 검출하기 위해 가장 우선해 개발돼야 하는 것이 공기나 환자의 혈액, 침, 배설물 등 검체를 특정 채널에 흘려보낼 때 이들 유해물질을 정밀하게 잡아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3디(D) 나노-마이크로 하이브리드 구조체 제작 기술 개발을 맡고 있는 이재종 한국기계연구원 나노공정연구실 책임연구원은 “기존의 나노 채널은 보통 평면으로 만들어져 민감도가 떨어졌다. 채널의 바닥면뿐만 아니라 나머지 3개 면에까지 수직으로 패턴(구조체)을 만들고 여기에 항체(바이오마커)를 붙이면 면적이 늘어나 바이오 유해물질과의 반응속도도 빨라지고 민감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작업은 바이러스나 병원균의 출현을 예측하는 일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 종류에 따라 170여가지 조합이 나온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재조합이나 돌연변이를 통해 변종이 생길 때 일정한 패턴이 있다. 송대섭 생명연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 선임연구원은 ”바이오인포매틱스(생물정보학)를 이용하면 일기예보처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재처럼 사막에서 바늘 찾는 수준이 아니라 사지선다형 정도까지는 바이러스 변종을 예측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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