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쏟아지는 국지성 소나기의 모습. 2012년 기상사진전에서 수상한 황은숙씨 작품이다. 기상청 제공
[과학과 내일] 사진이 있는 기상 이야기
올해 여름 태풍이 한반도에 얼씬도 못 하고 초열대야가 처음 나타나는 등 특이한 기상현상을 보인 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과대 팽창이 낳은 또 하나의 현상은 가을장마의 실종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미국 하와이 동북쪽 태평양 중위도 부근에 중심을 둔 온도가 높고 습한 해양성 열대기단(mT)을 말한다. 이 고기압은 적도에서 가열돼 상승한 공기가 아열대 바다지역에서 가라앉으면서 생성된다. 온도가 높으면 기체 부피가 커지고 밀도가 작아져 등압선 간격이 넓어지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은 위로 모여든 공기들이 계속 공급돼 고기압 성질이 유지된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극지방에서 공기가 냉각돼 주위 공기보다 기압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것과 대비된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의 강약에는 적도 근방의 해수면 온도가 크게 작용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달 넘도록 한반도를 찜통으로 만들었던 1994년 여름에도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았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과대 팽창의 원인은 엘니뇨·라니냐의 강도와 빈도, 육지의 기상 변화, 지구온난화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고 한두가지가 아닌 복합적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전보다 더 팽창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고, 이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팽창과 수축으로 해마다 겪는 현상이 장마다. 대륙의 한랭한 고기압과 만나 형성되는 장마전선은 7월 말~8월 초에는 중국 쪽으로 올라갔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다시 한번 한반도로 내려와 비를 뿌린다. 이를 가을장마라고 한다. <고려사>에도 가을장마로 피해가 생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연원이 깊다. 일본에서는 슈린(추림)이라 불린다. 근래 들어 이 시기 강수량이 정작 장마 때보다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8월 중순~9월 초순에 전국 강수량은 장마 기간의 1.65배나 됐다.
기상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을장마 또는 2차 우기라 하여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기상청은 가을장마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김현경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정체전선에 의한 전형적인 장마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강수량의 급증이 주로 8월 말 대기 불안정에 의한 집중호우로 발생하기 때문에 가을장마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8월 말 강수량의 절반 정도는 태풍 영향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나마 올해는 장마 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강하게 뒤덮어 태풍도, 집중호우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난 주중 내린 비나 이번 주중 내릴 비 모두 기압골에 의한 것으로 가을 장마전선 때문이 아니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는 가을장마가 없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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