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몸] 음지의 털
▶ 요즘 ‘내란음모’라는 말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사안이고 주목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 인정합니다. 그런데 ‘음모’라는 말을 자꾸 듣다 보니, 발음은 같고 뜻은 다른 몸에 관한 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직접 입에 담기 힘들어 일상에선 침묵하거나 겨우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많은 그것에 대해, 생각보다 아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몸에서 가장 불우한 신체 부위를 꼽으라면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늘 체중을 지탱하며 혹사당하는 발? 배설 기능을 도맡는 항문? 끊임없이 먹고 살 걱정에 바쁜 입…? 신체 부위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음모(陰毛)도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요즘 무더위와 장마가 끝나고 모처럼 맑은 가을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아름다운 햇빛이 한낮을 황홀하게 비춘다. 그런데 음모는 이 찬란한 햇빛을 평생 단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앞으로도 구경할 수 있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같은 털이지만 늘 햇빛과 마주해야 하는 머리카락과는 정반대의 운명이다. 평생을 갑갑한 속옷 속에 숨어 살아야 한다니 이런 유배가 또 있을까.
음모의 ‘음지 인생’은 털의 서러움과 상통한다. 사람은 몸에 털이 별로 없다. 간혹 팔다리에 털이 많은 사람은 여지없이 “진화가 덜 됐다”는 농담을 듣는다. 털은 사람이 된 이상 버려야 할 존재라는 듯이. 실제로 큰 머리, 언어, 도구를 쓰는 손, 두 발 걸음 등 인간 고유의 것으로 꼽는 모든 특징은 인간이 새로 ‘얻은’ 것이다. 털은 다르다. 인류는 털을 ‘잃었기에’ 비로소 인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몸의 몇몇 부위에는 털이 남아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공통된 곳은 머리 위와 사타구니, 겨드랑이 정도다. 이 중 머리는 금방 이해가 간다. 두뇌라는 중요한 기관이 몸의 꼭대기에 노출돼 있으니, 조금이라도 감싸서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에는 머리카락이 만드는 공기층으로 보온과 보랭도 한다. 하지만 음모와 겨드랑이털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엔 위치가 좀 엉뚱해 보이고, 보온이나 보랭을 하기에는 양이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매끈한 피부’가 만들어낸 수생유인원 가설
평생을 털과 피부에 대해 연구한 인류학자 니나 자블론스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2010년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글에서 이에 대해 두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냄새 성분을 분비해 다른 사람이 끌어들이는 역할과(대개 성적인 목적일 것이다), 걷거나 팔을 움직일 때 마찰을 줄이는 윤활제 역할이다. 조금 수상하다. 이런 설명은 길고 긴 전체 기고문에서 딱 한 문장 언급돼 있을 뿐이다. 자블론스키 교수는 피부에 대한 인류학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 <스킨-피부색에 감춰진 비밀>도 썼는데(국내엔 작년에 번역됐다), 여기에도 이 내용은 지나가듯 언급돼 있을 뿐이다. 마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라는 듯이.
서럽게도, 실제로 두가지 털은 사람이 걷거나 운동을 하는 데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많은 여성들이 겨드랑이털을 깎지만 그 때문에 팔의 움직임에 심각한 불편함을 겪지는 않는다. 냄새도 상대를 이끄는 마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한다.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은 여름이면 피부에 사는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면서 불쾌한 냄새를 내기 십상이다. 음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머리, 손, 두 발 걸음 등은
인간이 새로 얻은 것들이지만
인류는 털을 잃었기에
비로소 인류가 될 수 있었다 진화와 함께 사라진 털은
겨드랑이·사타구니에 남아
옷 속에 갇히거나 깎여 나갔지만
고인류학자들은 그 성적 역할이
아직 폐기되지 않았다고 본다 음모는 불우하다. 인간에게 이로운 어떤 역할을 하기에는 수적으로 너무나 적고 무력하다. 영문도 모른 채 옷 속에 갇혀 지내거나 아예 깎여 나가고, 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에게조차 푸대접을 받고 있다. 사춘기 이후로는 관심을 갖는 사람도 드물다. 음모를 다시 바라보자. 몸에 남은 반 줌도 안 되는 털의 일부지만, 거기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 길고 긴 진화의 흔적을 재발견할 수 있다. 포유류는 진정한 털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다. 새도 깃털이 있고 곤충도 고분자 탄수화물로 된 작은 털이 무수히 나 있지만, ‘알파 케라틴’이라고 부르는 단백질로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특성을 지닌 털을 만드는 동물은 포유류뿐이다. 인간 역시 포유류로서 포유류의 특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알파 케라틴으로 된 털과 함께, 털이 나는 모낭, 모낭을 지탱하는 근육, 혈관, 피지샘 등으로 구성된 포유류의 피부 구조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하지만 세부에서 인간은 포유류를 벗어났다. 몸에서 털이 사라졌고, 그래서 모공이 훤히 보이는 맨피부를 가졌다. 이런 동물은 영장류 가운데에는 오직 인간뿐이고, 포유류 전체로 봐도 고래류 등 극히 일부의 예외만 있을 뿐이다. 너무나 예외적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둘러싸고 기발한 의견이 나왔는데, 최근 타계한 영국의 작가이자 아마추어 인류학 연구자인 일레인 모건은 “인류가 물속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수생유인원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래처럼 털이 없으니 고래가 사는 곳에서 진화했다는 아이디어다. 수생유인원 가설은 증거가 없어 주류 인류학계는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워낙 흥미로운 주장인데다 모건의 뛰어난 글솜씨가 더해져 인류학 애호가 사이에는 꽤 알려졌다. 모건이 타계하기 직전인 지난 7월 국내에서도 대표작이 한권 번역돼 나왔는데, 병상에서 보내왔다는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모건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가설을 진심으로 믿고 지지를 호소하는 듯했다. 남성의 음모는 생식기를 더 잘 띄게 한다? 인류학자들은 털이 사라진 이유를 다르게 설명하는데, 이 역시 인간의 털과 피부 구조가 갖는 고유한 특징과 관련이 깊다. 땀샘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이다. 땀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털이 많은 대부분의 포유류는 ‘아포크린샘’이라는 다소 끈끈하고 기름지며 탁한 땀을 만드는 땀샘을 갖고 있다. 이 땀샘은 방출구가 모낭의 윗부분에 연결돼 있어서, 여기서 나온 땀과 피지샘에서 나온 피지가 자연스럽게 막 자라고 있는 털에 묻는다. 땀과 피지가 묻으면 털은 ‘기름칠’을 한 것처럼 윤기를 띤다. 하지만 사람은 아포크린샘이 매우 드물고 대신 훨씬 묽고 투명한 땀을 만드는 ‘에크린샘’이 많다. 이 땀샘의 특징은 땀의 배출량이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인류학자들은 바로 이 땀이 털을 없앤 주역이라고 본다. 인류는 약 400만~700만년 전 어느 시점에서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때의 인류는 키가 1m가 안 되고 힘도 없는 보잘것없는 동물이었다. 사자처럼 무서운 맹수의 틈을 뚫고 겨우 살아가려면 뭔가 색다른 생존 전략이 필요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활동 시간을 바꾸는 방법이었다. 사자 등 맹수는 대부분 한낮에는 더위를 피하고 새벽이나 저녁, 밤에 주로 사냥을 한다. 따라서 이들을 피해 낮에 먹을 것을 찾으면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불같이 뜨거운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에서 무더위를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다른 동물이 쓰지 않는 독특한 생리적 대책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땀이다. 땀이 효율적으로 체온을 낮추려면 털이 아니라 피부 위에서 바로 땀이 증발하게 하는 게 유리하다. 결국 인류는 빠르게 털을 잃었고 맨몸이 됐다. 인류학자들은 약 160만년 전에는 이미 머리카락과 음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털이 사라졌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위도가 다양한 유라시아에 퍼졌다. 그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다시 털이 수북해지기도 했지만, 다시 유인원 시절로 돌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옷을 해 입기 시작하면서 음모와 겨드랑이털은 더욱 소외받았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살아남았다고 진화적으로 꼭 의미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해도 없고 득도 없는 특징도 곧잘 남는다. 음모는 정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걸까. 포유류가 가진 두 땀샘은 냄새도 차이가 난다. 탁하고 진한 아포크린샘에서 나오는 땀은 에크린샘의 땀보다 냄새 성분의 농도도 더 높다. 사람은 대부분 에크린 땀샘을 지니고 있지만, 아포크린 땀샘이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는 부위가 몇 군데 있다. 대표적인 게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다. 이곳의 땀샘은 털을 윤기있게 가꾸는 포유류 본래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어, 잘 보면 팔이나 다리에 난 털보다는 겨드랑이털이나 음모가 확실히 좀더 윤기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음모나 겨드랑이털이 냄새로 상대를 유인한다는 자블론스키 교수의 설명도 이 부위에 아포크린 땀샘이 많다는 데에서 나왔다. 여름철 땀이 고민이라 땀샘 제거 수술을 하는 사람까지 있는 실정이라, 역시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인류는 털과 땀이라는 측면에서 포유류의 특성과는 이미 결별했다. 흔적만 남은 부위에서 역할을 굳이 계속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고인류학자들은 음모의 성적인 역할이 아직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았다고 보는 듯하다. 오언 러브조이 미국 켄트대 인류학과 교수는 2009년 <사이언스>에 440만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사회 행동과 행태 특성을 연구한 논문을 썼다. 그는 논문의 주석 한 귀퉁이에, 초기부터 인류의 남성끼리 경쟁이나 싸움이 있었는지, 만약 있었다면 왜 굳이 싸울 때 거추장스럽게 남성 생식기 중 고환을 외부에 돌출시켰으며 음경은 왜 다른 유인원에 비해 월등히 큰지 자문했다. 그는 다른 학자의 오래전 연구서의 한 구절을 점잖게 인용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인간) 남성의 음모는, (큰) 생식기를 눈에 더 잘 띄게 하도록 디자인된 것 같다. 이는 음모가 생식기를 가리는 역할을 하는 오랑우탄이나 고릴라와는 다르다.” 피부를 가리고 보호하는 기존의 역할을 반대로 뒤집은 이런 발상은, 혹시 진화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불우한 털의 회심의 자구책은 아닐까.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
인간이 새로 얻은 것들이지만
인류는 털을 잃었기에
비로소 인류가 될 수 있었다 진화와 함께 사라진 털은
겨드랑이·사타구니에 남아
옷 속에 갇히거나 깎여 나갔지만
고인류학자들은 그 성적 역할이
아직 폐기되지 않았다고 본다 음모는 불우하다. 인간에게 이로운 어떤 역할을 하기에는 수적으로 너무나 적고 무력하다. 영문도 모른 채 옷 속에 갇혀 지내거나 아예 깎여 나가고, 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에게조차 푸대접을 받고 있다. 사춘기 이후로는 관심을 갖는 사람도 드물다. 음모를 다시 바라보자. 몸에 남은 반 줌도 안 되는 털의 일부지만, 거기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 길고 긴 진화의 흔적을 재발견할 수 있다. 포유류는 진정한 털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다. 새도 깃털이 있고 곤충도 고분자 탄수화물로 된 작은 털이 무수히 나 있지만, ‘알파 케라틴’이라고 부르는 단백질로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특성을 지닌 털을 만드는 동물은 포유류뿐이다. 인간 역시 포유류로서 포유류의 특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알파 케라틴으로 된 털과 함께, 털이 나는 모낭, 모낭을 지탱하는 근육, 혈관, 피지샘 등으로 구성된 포유류의 피부 구조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하지만 세부에서 인간은 포유류를 벗어났다. 몸에서 털이 사라졌고, 그래서 모공이 훤히 보이는 맨피부를 가졌다. 이런 동물은 영장류 가운데에는 오직 인간뿐이고, 포유류 전체로 봐도 고래류 등 극히 일부의 예외만 있을 뿐이다. 너무나 예외적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둘러싸고 기발한 의견이 나왔는데, 최근 타계한 영국의 작가이자 아마추어 인류학 연구자인 일레인 모건은 “인류가 물속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수생유인원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래처럼 털이 없으니 고래가 사는 곳에서 진화했다는 아이디어다. 수생유인원 가설은 증거가 없어 주류 인류학계는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워낙 흥미로운 주장인데다 모건의 뛰어난 글솜씨가 더해져 인류학 애호가 사이에는 꽤 알려졌다. 모건이 타계하기 직전인 지난 7월 국내에서도 대표작이 한권 번역돼 나왔는데, 병상에서 보내왔다는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모건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가설을 진심으로 믿고 지지를 호소하는 듯했다. 남성의 음모는 생식기를 더 잘 띄게 한다? 인류학자들은 털이 사라진 이유를 다르게 설명하는데, 이 역시 인간의 털과 피부 구조가 갖는 고유한 특징과 관련이 깊다. 땀샘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이다. 땀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털이 많은 대부분의 포유류는 ‘아포크린샘’이라는 다소 끈끈하고 기름지며 탁한 땀을 만드는 땀샘을 갖고 있다. 이 땀샘은 방출구가 모낭의 윗부분에 연결돼 있어서, 여기서 나온 땀과 피지샘에서 나온 피지가 자연스럽게 막 자라고 있는 털에 묻는다. 땀과 피지가 묻으면 털은 ‘기름칠’을 한 것처럼 윤기를 띤다. 하지만 사람은 아포크린샘이 매우 드물고 대신 훨씬 묽고 투명한 땀을 만드는 ‘에크린샘’이 많다. 이 땀샘의 특징은 땀의 배출량이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인류학자들은 바로 이 땀이 털을 없앤 주역이라고 본다. 인류는 약 400만~700만년 전 어느 시점에서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때의 인류는 키가 1m가 안 되고 힘도 없는 보잘것없는 동물이었다. 사자처럼 무서운 맹수의 틈을 뚫고 겨우 살아가려면 뭔가 색다른 생존 전략이 필요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활동 시간을 바꾸는 방법이었다. 사자 등 맹수는 대부분 한낮에는 더위를 피하고 새벽이나 저녁, 밤에 주로 사냥을 한다. 따라서 이들을 피해 낮에 먹을 것을 찾으면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불같이 뜨거운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에서 무더위를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다른 동물이 쓰지 않는 독특한 생리적 대책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땀이다. 땀이 효율적으로 체온을 낮추려면 털이 아니라 피부 위에서 바로 땀이 증발하게 하는 게 유리하다. 결국 인류는 빠르게 털을 잃었고 맨몸이 됐다. 인류학자들은 약 160만년 전에는 이미 머리카락과 음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털이 사라졌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위도가 다양한 유라시아에 퍼졌다. 그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다시 털이 수북해지기도 했지만, 다시 유인원 시절로 돌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옷을 해 입기 시작하면서 음모와 겨드랑이털은 더욱 소외받았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살아남았다고 진화적으로 꼭 의미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해도 없고 득도 없는 특징도 곧잘 남는다. 음모는 정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걸까. 포유류가 가진 두 땀샘은 냄새도 차이가 난다. 탁하고 진한 아포크린샘에서 나오는 땀은 에크린샘의 땀보다 냄새 성분의 농도도 더 높다. 사람은 대부분 에크린 땀샘을 지니고 있지만, 아포크린 땀샘이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는 부위가 몇 군데 있다. 대표적인 게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다. 이곳의 땀샘은 털을 윤기있게 가꾸는 포유류 본래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어, 잘 보면 팔이나 다리에 난 털보다는 겨드랑이털이나 음모가 확실히 좀더 윤기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음모나 겨드랑이털이 냄새로 상대를 유인한다는 자블론스키 교수의 설명도 이 부위에 아포크린 땀샘이 많다는 데에서 나왔다. 여름철 땀이 고민이라 땀샘 제거 수술을 하는 사람까지 있는 실정이라, 역시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인류는 털과 땀이라는 측면에서 포유류의 특성과는 이미 결별했다. 흔적만 남은 부위에서 역할을 굳이 계속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고인류학자들은 음모의 성적인 역할이 아직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았다고 보는 듯하다. 오언 러브조이 미국 켄트대 인류학과 교수는 2009년 <사이언스>에 440만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사회 행동과 행태 특성을 연구한 논문을 썼다. 그는 논문의 주석 한 귀퉁이에, 초기부터 인류의 남성끼리 경쟁이나 싸움이 있었는지, 만약 있었다면 왜 굳이 싸울 때 거추장스럽게 남성 생식기 중 고환을 외부에 돌출시켰으며 음경은 왜 다른 유인원에 비해 월등히 큰지 자문했다. 그는 다른 학자의 오래전 연구서의 한 구절을 점잖게 인용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인간) 남성의 음모는, (큰) 생식기를 눈에 더 잘 띄게 하도록 디자인된 것 같다. 이는 음모가 생식기를 가리는 역할을 하는 오랑우탄이나 고릴라와는 다르다.” 피부를 가리고 보호하는 기존의 역할을 반대로 뒤집은 이런 발상은, 혹시 진화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불우한 털의 회심의 자구책은 아닐까.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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