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졸업논문은 종종 희로애락이 담긴 실험실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은 서로 졸업을 축하하는 대학원생들의 모습. 한아름 제공
[사이언스 온] 살며 연구하며
막바지 무더위 속에 학위 수여식을 마치고 이제 캠퍼스는 선선한 바람을 맞는 가을 학기를 시작했다. 학위 수여식을 지켜보며 나의 석사 졸업논문을 떠올리니 지금도 가슴 벅찬 느낌이 생생하여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그칠 수 없다.
대학원생이라면 계열을 불문하고 자신의 연구 내용을 논문으로 쓴 뒤 심사를 거쳐 학위를 받게 된다. 특히 실험실 생활을 하는 이공계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라면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탐구력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밤낮 가리지 않았던 그간의 수고를 딱딱하게 감정 없는 문장에 담아 심사위원을 ‘감동’시켜야 논문의 성과를 인정받아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으니 이 졸업논문이 대학원 생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큰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생화학 석사 논문을 썼던 당시에 자연현상이라는 것은 참으로 야속하게 느껴졌다. 지도교수를 비롯한 실험실 구성원이 모두 다 흥미롭다고 인정해주어 어떤 생명 현상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열심히 실험을 거듭했는데도 도무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이 썩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뿐 아니다. 실험은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 즉, 주어진 절차대로 실험을 진행했을 때 언제, 누가 해도 오차범위 안에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연한 실험 결과를 두고 그것이 옳은 자연현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내 실험의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애초 어떤 생명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심증을 지니고서 실험을 설계하고 행하기에, 단순한 실험 결과로 논문 심사위원들의 의심을 모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심사위원들은 내가 주장한 내용이 정말 사실인지, 의미 있는 것인지 날카롭게 질문하고 우리는 마치 변호사처럼 질문이나 요구에 더 확실한 추가 실험 결과를 물증으로 제공해야 한다.
여느 대학원생처럼 나도 졸업논문을 쓰는 과정이 참으로 힘들었다고 주저 없이 말하겠다. 까만 표지, 멋있는 내 졸업논문을 쳐다보면 그것이 단순히 과학 실험, 생화학적 발견이 기록된 책이 아니라 석사 과정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셀 수 없는 고민, 그리고 때론 웃기도, 울기도 한 모든 감정이 기록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학위 논문은 그저 졸업논문으로 불리기보다 ‘연구생활 자서전’이라고 불리는 게 낫지 않을까? 각자의 자서전을 위해 수고하는 많은 분들께 큰 격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한아름 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