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지도 첫 완성…‘절대 육식성’ 확인
“흥미로운 건 호랑이가 아주 강한 육식성을 갖고 있다는 게 유전자 차원에서 확인됐다는 겁니다. 오로지 고기만 먹는 습성이 어떤 대사 차이를 불러일으키는지 여러 후속 연구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호랑이의 유전체(게놈) 지도를 작성한 국제 공동연구팀의 박종화 게놈연구재단 연구소장은 “호랑이 게놈에선 호랑이한테 특히 발달한 후각·근력과 관련한 유전자도 함께 찾아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 게놈 지도가 한국 연구자들이 주도한 연구팀에 의해 처음 완성됐다. 한국과 중국·러시아 연구자 50여명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호랑이, 사자, 설표범, 백사자 등 대형 고양이과 동물의 게놈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분석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17일치에 발표했다. 한국 쪽 책임저자인 박 소장(생명정보학)은 “이번 호랑이 게놈 지도는 국내 에버랜드 동물원의 아무르호랑이(한국·시베리아호랑이)인 ‘태극’의 것으로 작성했기에, 앞으로 우리 게놈 지도가 호랑이 게놈 연구의 사실상 ‘참조표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호랑이 게놈 분석엔 10억원가량의 비용이 들어갔다.
게놈 분석에선 고양이과 동물의 몇 가지 특징이 유전자로 확인됐다. 호랑이 게놈에선 2만226개 유전자가 발견됐는데 이 유전자를 고양이, 사람, 개, 쥐 같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보니 호랑이만의 독특한 유전자 진화가 드러났다. 제1저자인 조윤성 연구원(게놈연구재단)은 “호랑이에게선 냄새 수용체가 유달리 발달하고 절대적 육식 습성을 보여주는 단백질 소화 관련 유전자도 많이 발달해 있다”고 전했다. 속도와 유연성의 사냥 실력을 보여주는 근육·에너지와 관련한 유전자도 선택적으로 발달한 점이 눈에 띄었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아무르호랑이 유전자 2만여개 발견
단백질 소화 유전자 특히 발달돼
사냥 관련 근력유전자도 ‘선택적 발달’
고양이와 게놈 구조 95.6% 유사해
유전체에서 유전자가 배열된 ‘구조’를 비교하니, 호랑이와 고양이는 아주 비슷한 구조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호랑이와 고양이의 게놈 구조 유사도는 98.3%나 되는 것으로 측정됐으며 유전자로는 98.8%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런 ‘98%’가량의 수치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 유사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호랑이와 고양이의 종 분화는 800만~1100만년 전쯤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소장은 “진화 과정에선 흔히 게놈 구조가 먼저 변하고 그다음에 염기서열 변이가 나타나는데, 비슷한 진화 시간을 거쳐온 사람과 오랑우탄보다 게놈 구조 유사도가 호랑이와 고양이 사이에서 더 높게 나타난 것도 흥미로운 결과”라며 “같은 포유류라도 (진화 과정에서) 게놈의 변화 양상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번 연구에선 함께 분석 대상이 된 설표범과 백사자 등에서도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중앙아시아 고산지대에서 사는 설표범에게서는 고산지대의 저산소증에 적응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이 돌연변이는 다른 14마리 설표범한테도 보존돼 있었으며, 땅속의 저산소 환경에서 사는 두더지쥐도 이 유전자에서 저만의 독특한 돌연변이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백사자 게놈에선 흰 털의 형질이 멜라닌의 형성과 관련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 비롯한 것으로 분석됐다.
야생 호랑이는 현재 3000~4000마리만이 생존하는 멸종위기 동물이며, 유전적으로는 9종(아종)으로 분류되지만 4종은 멸종한 상태이고 5종이 멸종위기로 분류돼 있다. 그 하나인 아무르호랑이는 몸 크기가 가장 크며 1900년 무렵만 해도 만주와 러시아 등지를 비롯해 한반도에도 분포했다. 2010년부터 3년 동안 진행된 이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모두 650기가바이트가량(호랑이 게놈 300기가바이트)의 염기서열 데이터가 다뤄졌으며 분석작업에 고성능 슈퍼컴퓨터와 여러 해석 소프트웨어들이 사용됐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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