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 과학

‘그래비티’처럼 우주에 홀로 남는다면…

등록 2013-11-01 20:55수정 2013-11-01 21:56

이근영 기자
이근영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사회부에서 과학 분야를 취재하는 이근영 기자입니다. 미국 연수 때였습니다. 몇달 잘 쓰던 에어침대가 망가져 사후수리를 받으러 가게에 가져갔더니 군말 없이 제품값을 물어주더군요. 정 여사처럼 ‘바꿔줘~’ 하고 생떼를 쓴 것도 아닌데 말이죠. 소비자 양심을 믿는 것이겠지만 ‘무한친절’에 감복했습니다. 신문기사를 친절하게 써야겠다는 옹골찬 다짐을 하고 귀국했는데, 글쎄요 친절한 기자로 나설 만큼 수양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설이 길었고요, 요즘 인기 절정인 영화 <그래비티>가 던지는 질문 ‘우주에서 미아가 돼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안 보시거나 못 보실 분을 위해 간단한 줄거리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지구에서 600㎞ 상공의 허블망원경을 고치러 올라갔다 우주쓰레기 파편들이 덮치면서 동료우주인들이 모두 죽고 홀로 남은 의사 출신 여성 우주인(샌드라 불럭)이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무사귀환한다는 내용입니다. 단출하죠. 우주 속 생존이라는 화두는 간단치 않지만요.

거액을 선뜻 내는 우주관광객이 등장하고, ‘화성행 편도 티켓’ 모집에 수십만명이 몰리는 것을 보면 우주여행에 대한 로망은 꿈을 넘어 기약이 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살아남기는 이제 ‘가능할까?’라는 가설이 아니라 입증해야 할 명제입니다.

임무 수행을 위해 ‘1박2일-우주 서바이벌 편’을 만들어보죠. 첫번째 경연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물건 챙겨오기’로 해요. 참가자들이 라면과 버너, 다국어사전, 나침반, 휴대폰, 카세트, 일회용 용변기, 보드카를 들고 왔네요. 설령 라면 끓일 물이 있어도 그릇에 가만히 담겨 있지 않습니다. 우주에선 화초에 물을 줘도 뿌리에 가만히 달라붙어 있지 않으니까요. 산소가 없으니 버너도 쓸데없네요. 나침반과 휴대폰도 별 소용 없고요. 다국어사전은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에 들어갔을 때 한자로 된 버튼들 때문에 고생하는 장면이 나오죠. 러시아 우주선을 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도 러시아어를 따로 공부했습니다. 그가 지구 귀환 뒤 한 첫마디도 ‘허리가 아프다’라는 러시아어였답니다. 카세트는 쓸모가 없습니다. 우주에는 소리를 전달해줄 공기 같은 매질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주선 고장으로 화장실을 쓸 수 없을 때를 대비한 일회용 용변기는 실제 구비용품입니다. 우주정거장에 술 반입은 안 되지만 원체 술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은 한모금짜리 보드카팩을 비공식적으로 가져간다네요.

두번째 경연은 ‘우주쓰레기 파편 홈런치기’입니다. 멀리 보내는 순으로 우주선 안에서 잘 팀과 바깥에서 잘 팀을 결정해요. 우주정거장이 머무는 350㎞ 상공에서는 물체가 초속 7.5~7.7㎞의 속도로 돌아야 궤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재 2만여개에 이른다는 우주쓰레기 파편도 마찬가지지요. 쇠방망이라도 홈런 치기는 불가능합니다. 우주 공간은 햇볕을 받을 때는 기온이 120도 이상 올라가고, 해가 없을 때는 영하 100도까지 내려가 우주선 밖에서 잘 수는 없죠. 이번 경연의 승자는 프로듀서겠네요.

세번째 게임은 ‘소화전 타고 멀리 날아가기’로 해요. 영화에 샌드라 불럭이 소화전으로 추력을 내어 톈궁으로 다가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먼 거리를 갈 수는 없어요. 우주복에 딸린 추진장치로도 영화에서처럼 600㎞ 상공의 허블망원경에서 350㎞ 상공의 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할 수는 없지요. 이번 게임에서 이긴 팀에는 지구 음식을, 진 팀에는 우주식품을 제공해요. 한국형 우주식품은 비빔밥에서 닭갈비까지 17종이 개발돼 있어요. 우주정거장에 1㎏의 물건을 가져가는 비용이 5천만원이어서 우주식품은 바짝 말린 형태가 많습니다. 제가 먹어봤는데 그 느낌 알아요. 진 팀이 우주식품 먹는 게 맞아요.

마지막은 5억원짜리 우주복 빨리 갈아입기로 해요. 영화에는 우주유영할 때 입는 우주복만 나오는데 실제로는 우주선 안에서 입는 옷과 유영할 때 입는 옷이 따로 있어요. 실내복은 맞춤복이고 우주유영복은 누구나 쓸 수 있답니다. 불럭이 다른 사람의 우주복을 쏜살같이 갈아입는 대목은 ‘영화니까’ 하고 지나가야죠. 불럭이 짧은 속옷만 입고 우주복을 착용하는 것도 관객을 위한 감독의 배려일 거예요.

실제로 우주에서 미아가 된다면 우주복에 장착된 산소로 7~8시간 버티며 구조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답니다. 생존을 위한 준비물 중에 빠뜨리면 안 되는 것이 ‘삶에 대한 의지’이지요.

이근영 사회부 사회정책팀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1.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2.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3.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4.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5.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