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사람들의 ‘연애 전선’

[사이언스 온] 살며 연구하며

실험실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어떨까? 혹시 흰 실험복을 입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안경과, 과학적 고뇌에 몰두하듯 흐트러진 머리칼을 한 이미지일까? 게다가 실험실 바깥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외계어’ 대화를 나누는 그런 이미지일까? 하지만 과학자도 ‘사람’이다. 과학 연구가 직업인 사람, 즉 하루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실험·연구실에서 보내는 사람이지, 과학만 알고 과학 밖의 삶은 전혀 없는 기계는 아니다.

연구자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과학 활동이 매우 중요하듯이 이들에게 과학 이외의 생활도 소중한 삶의 일부이다. 예를 들면 ‘연애’ 같은 것이 그렇다. 실험실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연애라는 것을 할 때가 있다. 요즘처럼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 때면 남자친구와 손잡고 강 둔치나 고즈넉한 길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실험실에 있다 보면 연애 전선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자주 생긴다. 며칠 동안 연이어 밤늦게까지 실험했으니 오늘은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바깥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엔 어김없이 실험에 착오가 생기거나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아 늦게 일을 마치곤 한다. 내가 있던 실험실은 토요일마다 오전에 실험실 사람들이 참석해 한 주를 정리하고 다음주를 준비하는 ‘랩 미팅’을 여는데, 한가한 저녁엔 연구원들이 각자 가족, 실험실 바깥 친구나 이성 친구와 식사 약속을 만들어 놓곤 했다. 주말 저녁은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월요일부터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한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토요일의 랩 미팅 뒤 저녁에 남자친구와 근사한 식사를 하자고 약속해놓고도 실험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시간 이상 약속 시간을 미룬다. 랩 미팅만 마치면 적당히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미팅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엔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새로 실험을 계획해야 하거나 다음주에 할 실험 준비가 오래 걸려 실험실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곧 끝난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사람은 여전히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결국은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지친 얼굴을 들이미는 일이 되풀이된다.

실험실 생활을 활기차게 하기 위해서는 실험실 안팎 생활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좋은 실험 결과를 위해서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며 생활하다 보면 곧 지치고 만다. 반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본분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연애에만 집중하는 모습도 좋지 않다. 다른 직업인의 세계도 그렇겠지만,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쓰러지게 되어 있지 않은가. 오래 실험의 추이를 지켜보고 수정하며 진행하는 지구력이 필요한 것이 연구 생활이니 삶의 균형감은 더욱 중요하겠다. 창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실험을 위해선 실험실 바깥 생활도 알차고 열정적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한아름 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