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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나의 첫 강의

등록 2013-12-03 19:56

강의를 듣는 이탈리아 대학의 학생들. 신동화 제공
강의를 듣는 이탈리아 대학의 학생들. 신동화 제공
[사이언스 온] 살며 연구하며
지난 10월 시작한 이탈리아 대학의 새 학기에 뜻하지 않게 강의를 맡게 됐다. 내 생애의 첫 강의를 외국에서 할 줄이야. 영어로 진행하는 까닭에 강사인 나도 수업 중엔 몹시 긴장한다. 수업은 강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이지만,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다.

내가 맡은 수업은 이 대학에서 내가 속한 컴퓨터공학 연구실의 지도교수가 주관하는 수업의 일부다. 내장형 시스템의 전력소비 최적화에 관한 석사 수업으로 실습을 겸하는데, 앞쪽 20분 정도는 설명을 하고 실습 목표를 알려준 다음에 실제 실습에 들어가면 질문이 나오는 대로 학생들을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한다. 학생은 열서너 명 정도로, 에티오피아 학생이 세 명, 중국·베트남인이 한 명씩이고 나머지는 이탈리아인이다.

수업 태도도 좋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분위기가 경쟁적이지 않아서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는 우리나라 학생에 비해 덜한 것 같다. 이탈리아 학생들은 수업 중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옆자리 친구한테 자연스럽게 묻고, 수업 도중에 손을 들어 의사 표시를 한 뒤 학생들끼리 토론식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실습을 하게 한 뒤 열심히 뭔가를 만드는 학생들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몰라도 흉이 되지 않고 배움을 즐거워하는 학생이 부럽기도 하다. 몇 년을 돌고 돌아 다시 익숙하고 그리운 곳, 배움이 있는 곳에 온 기분이다. 그저 수업이 재미있고 뭘 만드는 게 좋았던 나의 학부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원 지도교수가 학부 시절의 수업 중에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는 때가 나중엔 없다. 밤 새우고 집에 안 들어간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지금이 공부하기 좋은 때다’라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며칠 밤을 새우며 과제를 하던 중이라 그런 말씀 말고 학점이나 잘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그 수업을 듣고 막연히 공부가 재미있었던 기억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 연구실로 들어갔다.

박사학위를 받고, 이어 박사후연구원이 되고, 이제는 취업을 생각하며 주어진 시간 안에 눈에 띄는 연구 업적을 낼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한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만족할 기준이나 연구의 완결성보다도 남들이, 특히 심사자가 내 연구물을 어떻게 평가할지 먼저 생각하게 된 나 자신을 볼 때면 착잡할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강의를 하며 내가 배우는 점도 많다. 내가 했던 연구를 학생들한테 소개하면서 스스로 떳떳한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단지 내가 강단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내 말을 듣고 믿어주는 학생들에게 떳떳하려면 좀 더 열심히 완성도 있는 연구물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 주제에 아직 누굴 제대로 가르치려면 멀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가르치면서 나도 배우는 것이 참 많다.

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연구원(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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