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부분일식을 관측하는 모습.
[사이언스 온] 살며 연구하며
해가 금성을 따스하게 품고 있던 날이었다. 지난해 6월6일 금성은 태양면을 통과했다. 우리 학과 사람들은 일반인을 위해 공개 관측 행사를 열었고 나는 이번 세기 마지막 금성 일식의 관측 행사를 돕기로 했다. 과학에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100명 넘는 시민이 태양 품에 고이 안긴 금성을 보러 왔다.
그중 ‘조’라는 미국인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금성이 태양면을 더디게 가로지르는 동안 조는 도우미들과 수다를 떨었다. 교내 언어교육원에 다닌다던 그는 과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에도 천문 현상에 관심이 많아 자주 밤하늘을 관측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천문학과 금성 일식에 관해 호기심 어린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과학 행사에서 도우미로 일하다 보면 호기심 많은 어린이는 자주 보지만 어른이 신기해하는 모습은 드물기만 하다.
하지만 조는 좀 달랐다. “흥미로워요”를 외치던 그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 많다. 조는 과학을 전공하지도, 과학상식을 많이 알지도 않았지만 과학을 진정 즐기고 있었다. 정작 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나보다 과학에 더 열정적이었다.
돌이켜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조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과학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는데…. 과학이 흥미롭고 우주가 궁금해 천문학을 공부한다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컴퓨터와 종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즐기는 날은 점점 줄어들었다.
십수년 동안 과학 수업은 나에게 과학을 가르쳐주었지만 보여주거나 느끼게 해주지는 않았다. 인터넷도 과학관도 없었던 시절에 과학을 즐기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창구는 과학잡지가 유일했다. 비록 나는 과학잡지에서 달 표면을 처음 봤지만 요즘 아이들은 과학을 직접 체험했으면 좋겠다. 문득 과학은 과학자만의 것도 아니며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만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관 같은 시설이 꼭 아이들에게 과학자를 꿈꾸게 하지 않더라도 조 같은 사람들이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과학자는 과학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거리의 간판은 분명 과학의 산물이다. 도시의 빛 공해 탓에 밤하늘의 별은 쏙 들어갔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주를 즐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문명은 발달했지만 우리가 정작 살면서 놓치는 것들이 많아 안타깝다.
밝게 빛나는 달이 도심의 빛 공해가 심해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 거다. ‘지옥철’에서 탈출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앞만 보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저 퇴근길에 크게 떠오른 달을 즐길 수 있었으면. 수많은 별이 보이지는 않아도 늘 내 위에 떠 있다는 걸 느꼈으면. 가끔은 하늘과 바람과 별을 보며 노래했으면.
홍주은 서울대 천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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