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 과학

과학인은 ‘정답’ 대신 ‘좋은 문제’를 찾아낸다

등록 2013-12-31 19:28수정 2013-12-31 20:50

일러스트 김대중 mayseoul@naver.com
일러스트 김대중 mayseoul@naver.com
[사이언스 온] ‘과학하기’란 무엇인가
새해 여명이 대구의 명산 비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나의 연구실 창에 스며든다. 새로운 과학을, 새로운 과학문화를, 새로운 과학교육을 꿈꾸며 안정된 연구 환경을 뒤로하고 이곳 새로운 학문의 터전으로 옮긴 지 두번째 맞는 새해이다.

돌아보니 철이 들면서 과학자를 꿈꾸어 왔고, 그래서 인생의 반을 과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이 새해 여명은 생명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학자로서 나에게 과학 하기란 무엇인지, 과학이란 어떤 의미인지, 어떤 과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새기게 한다.

사실 넓게 보면 이런 되새김은 더 이상 과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생활 전반에서 과학의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 요소로 운영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현대인의 사고와 생활을 돌아보라. 과학과 그에 근거한 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새해 아침에 과학이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소중한 한 해의 출발이 아닐까?

용기, 감수성, 창의 담긴 좋은 물음 던지기

과학은 인간 본연의 호기심에 기인한다. 주변의 사물, 현상, 생명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 그 호기심은 왜 그럴까 하는 물음으로 자연히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주변 현상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지며 의문을 품는다. 그렇게 볼 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태생적으로 과학자이고, 살면서 늘 과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과학 하기에는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판단이 아니라 객관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는 일정한 논리적 과정이 있다. 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호기심에서 시작하되 호기심을 질문으로 결정화한다. 질문을 결정화하는 과정이 과학에서는 제일 중요하다. 좋은 물음만이 좋은 답을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잘 푸는 것을 좋은 과학자의 자질로 생각하는데 이는 상당한 착각이다. 물론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도 과학자의 중요한 자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요한 문제 자체를 발견하고 이 질문을 과학적으로 결정화하는 능력이다.

좋은 문제의 발견에는 과학자 개인의 인간적 성숙도가 많이 반영된다. 좋은 물음에는 기존 지식에 반하여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용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감수성, 세상이나 사건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창의성과 깊은 사고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과학 하기에는 인간적으로 성숙하기도 포함되어 있으며, 한 과학자가 하는 과학은 결국 그 과학자의 생각과 삶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문학·예술 등 창작 활동을 하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요건일 것이다.

가설과 검증, 그리고 해석의 과학 하기

과학 하기에서 좋은 질문이 빛나려면 질문에 대한 명확한 가설을 만들고 가설에서 예측되는 결과를 실험이나 이론으로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흔한 착각은 우리가 가설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말하면, 많은 경우에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가설이 틀리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저런 가설이 틀림을 증명함으로써 대안 가설이 옳음을 증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과학 하기에선 섣부른 단정을 경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자주 어떤 현상에 대해 ‘이것은 이런 거야’라고 단정적으로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경우를 특히 대중매체에서 접할 때면, 정작 과학기술인들은 섬뜩함을 느낄 때가 많다. 많은 경우에 과학 지식은 확률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흔히 과학에서 예컨대 ‘어떤 현상의 원인은 95% 혹은 99% 확률로 이것이다’라고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과학적 지식은 이런 확률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에 근거해야 한다.

다른 생각 할 줄 아는 ‘용기’
보이지 않는 걸 보는 ‘감수성’
새로운 눈으로 보는 ‘창의성’
먼저 인간이 돼야 ‘문제’ 보여

나를 돌아보고 자연에 경탄하고
‘절대지식’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검증해야
소통·공유하면 더 좋은 과학 가능

한편, 과학에서도 같은 사건이나 데이터를 보더라도 해석하고 인식하는 폭이 좁으면 데이터는 새로운 지식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데이터를 인식하는 방식은 과학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과학자의 인식 폭이 넓어지는 것이 좋은 과학에 필요한 요소가 된다.

이즈음에 나는 그동안 어떤 물음을 품으며 어떻게 과학을 해왔을까 돌아본다. 나의 평생을 통한 과학적 질문은 ‘세월은 생명체에게 무엇인가’ 또는 ‘어떻게 생명체가 세월을 인식해 성장, 성숙, 노화하며 죽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그 큰 물음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답을 찾는 첫 단계 가설은 식물이 노화해 그저 죽는 게 아니라 어떤 정교한 유전적 프로그램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짧은 생을 사는 식물 애기장대를 통해 그 답을 찾는 지식을 차근차근히 모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식물, 나아가 생물 일반이 어떻게 세월을 인식해 죽음으로 가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

절대지식 아닌 합리·객관으로 세상 보기

과학 하기와 관련해 또 하나의 잘못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가끔 과학자들도 현재 발표되는 지식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과학적 지식의 속성은 그 지식이 현재 인간 지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이성적인 답이라는 것이다. 현재 수준에선 매우 신뢰할 만하지만 앞으로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과학 지식이 시대를 따라 변해왔는지 많은 사례를 과학 역사에서 보고 있다. 따라서 과학을 과신해 이를 절대적 진실로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내게 과학 하기는 내가 얼마나 몰랐는가를 배우는 과정과 같았다. 늘 겸허한 마음으로 지식에 임할 때 자연은 새로운 비밀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지식에 대한 교만은 좋은 과학 하기의 가장 큰 적일 수 있다.

과학 지식은 한데 모여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그 패러다임은 우리 생활과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패러다임은 늘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근본 방식으로서 패러다임을 형성해 나가는 데 과학은 총체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 과학 하기, 즉 좋은 질문을 던지고 가설을 검증하며 절대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과학적으로 생각하기는 내 삶에 도움이 될까? 혹시 지금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막연히 운과 감정에 맡기지 말고 과학적 사고나 방법론으로 접근해보면 뜻밖에 쉬운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성 친구에게 내가 왜 매력을 주지 못하는지 답답하고, 사춘기 아이들과 도저히 교류하지 못한다면 감정적 반응보다 생물학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의외의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

‘광장형 과학 하기’를 꿈꾸며

남홍길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식물시스템생물학)
남홍길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식물시스템생물학)
나는 지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뉴 바이올로지 학과’를 신설하고 소통과 공유를 통한 광장형 과학 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광장형 과학 하기는 개별 연구실 단위로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하는 체제가 아니라, 각자의 지식, 생각, 기술을 광장에서 공유하며 활용해 더 좋은 지식을 만들어 내는 체제이다. 학생도 한 연구실에 속해 주어진 연구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질문을 찾고 답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광장형 과학의 시도가 나와 동료, 후배들한테 좋은 영향이 있기를 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나의 늦둥이 막내딸이 또래 친구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다는데도 자신은 꼭 과학기술자의 길을 가겠다고 한다. 막둥아! 힘내렴. 과학기술자의 길을 걸으며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렴!

남홍길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식물시스템생물학)

※ 글쓴이는 국가과학자를 지냈으며 현재 기초과학연구원 식물노화수명연구단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를 만들어 오랫동안 센터장으로 일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1.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2.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3.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4.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5.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