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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1000유로 세대와 88만원 세대의 공감

등록 2014-02-11 20:06

연구 중에 잠시 짬을 내어 모인 이탈리아의 젊은 연구원들. 신동화 제공
연구 중에 잠시 짬을 내어 모인 이탈리아의 젊은 연구원들. 신동화 제공
[사이언스 온] 살며 연구하며
<1000유로 세대>라는 이탈리아 소설이 있다. 우리말로도 번역됐고 몇 해 전 <88만원 세대>라는 책과 관련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1000유로 세대’는 1000유로 안팎의 월급을 받으며 독립적 생활을 하는 이탈리아의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캥거루족’과 구분되지만 우리나라 88만원 세대의 삶과 마찬가지로, 지난날 기성세대엔 당연했던 안정된 직장과 결혼 등이 이들에겐 이루기 쉽잖은 꿈이다. 이탈리아 토리노공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28제곱미터 한 칸 방의 월세가 400유로, 수도·전기료 등 공과금이 100유로 선인데, 밀라노나 로마 같은 큰 도시에선 월세가 훨씬 비싸니 1000유로의 월급으로는 살림이 만만찮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만난 마시모는 로마에 있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서 토리노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던 내 또래의 젊은이다. 연구실에서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데다 영어 실력도 비슷해 나와 마시모는 자주 얘기를 나누며 서로 뭔가 비슷함을 느끼곤 했다. 1000유로 세대와 88만원 세대가 있는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그 세대의 언저리에 살았던 두 연구자로서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까.

그는 약혼자가 로마에 사는데도 그 근처에는 박사 전공을 살려 취업할 기업이 거의 없어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탈리아에선 기술집약 산업이 밀라노-토리노-제노바를 잇는 북부 삼각지대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아 젊은 세대의 고충은 더 크다. 마시모는 다행히 최근 로마 부근에 있는 항공기 만드는 회사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온전히 전공을 살리진 못했다. 약혼자 곁으로 돌아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곳 학생들과 자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요즘엔 오히려 한국 대기업의 임금이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물어 내심 놀라곤 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경제 강국이던 이탈리아의 상황이 흔들리면서 젊은이의 불안감도 커진 듯하다. 연구실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는 취업이고, 취업 얘기를 나누다 화제가 경제 상황으로 옮아가면 기성 정치인들은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우리나라와 닮은 분위기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도 있다. 마시모는 주말에 연구실에서 일하는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종종 말했다. 1000유로 세대라지만 8월이면 3~4주씩 휴가를 떠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눈에는 일에 매여 사는 한국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가 보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선 1000유로 세대와 88만원 세대로서 공감하는 닮은꼴도 보고 때론 아주 다른 모습도 본다.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마시모와 나 자신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젊은 연구자들한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낸다.

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연구원(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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