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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의료용 방사선 진단시스템 ‘독립 선언’ 초석

등록 2014-02-18 19:27

한국원자력연구원 산하 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에 설치된 중형 사이클로트론인 ‘아르에프티(RFT)-30’이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지름 2.7m, 무게 50t의 이 나선형가속기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와 고속 중성자를 생산해 관련 분야 연구에 큰 진전을 줄 것으로 기대되
고 있다. 첨단방사선연구소 제공, 정읍/이근영 선임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산하 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에 설치된 중형 사이클로트론인 ‘아르에프티(RFT)-30’이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지름 2.7m, 무게 50t의 이 나선형가속기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와 고속 중성자를 생산해 관련 분야 연구에 큰 진전을 줄 것으로 기대되 고 있다. 첨단방사선연구소 제공, 정읍/이근영 선임기자
[과학과 내일] 원자력연 30MeV급 사이클로트론 가동

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 ‘RFT-30’
방사선 동위원소 대량 생산
나선형 가속기 국산화 성공
의료기관에 방사선 안정적 공급
방사선 영상기기 개발에도 온힘
암 진단에 쓰이는 양전자단층촬영(PET·펫)의 이용횟수는 2008년 16만7000회에서 2012년 31만5000회로 거의 두배가 늘어났다. 전국 병원의 진단장비도 113대에서 191대로 61%가 늘었다. 같은 기간 자기공명영상(MRI) 장치가 37.5%,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가 3.8% 늘어난 데 비하면 증가폭이 크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한 요양급여 비용이 2007년 873억여원에서 2012년 2227억원으로 2.5배가 늘어날 정도로 펫을 이용한 암 진단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펫에 필수적인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사이클로트론(가속기)은 39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국내 기술로 개발된 것은 8대뿐이다. 진단에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반감기(특정 핵종의 원자 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가 짧아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는 병원에 가속기가 설치돼 있거나 가까워야 한다. 그러나 설치와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가속기를 병원마다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북 정읍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산하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최근 방사성 동위원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나선형가속기인 30MeV(100만전자볼트)급 중형 사이클로트론 ‘아르에프티(RFT)-30’을 우리 기술로 완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RFT-30은 2008년 한국원자력의학원이 개발해 이곳에 설치해왔다. 허민구 첨단방사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암 등 각종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사용할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와 양성자 빔을 활용하는 연구를 위해서는 중형 사이클로트론이 필수적인데 우리 기술로 완결된 제품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개발을 통해 확보된 기술은 사이클로트론을 기반으로 한 중입자 가속기를 설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허민구 첨단방사선연구소 책임연구원이 ‘RFT-30’에서 생산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원격에서 조종해 연구하기 위해 설치한 핫셀의 작동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첨단방사선연구소 제공, 정읍/이근영 선임기자
허민구 첨단방사선연구소 책임연구원이 ‘RFT-30’에서 생산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원격에서 조종해 연구하기 위해 설치한 핫셀의 작동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첨단방사선연구소 제공, 정읍/이근영 선임기자

가속기는 전자 등 입자를 가속하는 장치를 말한다. 보통은 작은 전자를 가속하지만 용도에 따라서는 전자보다 1800배 무거운 양성자나 중성자에서부터 탄소, 우라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입자를 가속한다. RFT-30이 골프공을 가속하는 정도라면 2019년 완공 예정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중이온 가속기는 애드벌룬만한 쇳덩어리를 가속하는 장치다. 가속을 하려면 입자가 음성이든 양성이든 전기적 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사이클로트론은 ‘디’(D)자 모양으로 생긴 전극에 입자를 넣어주면 입자가 음극과 양극 사이에서 밀고 당겨지면서 가속을 하는 동시에 나선형으로 운동을 하도록 만든 장치로, 193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어니스트 로런스가 고안해냈다.

가속된 입자는 에너지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전하 1개의 전위차를 1전자볼트(eV)라고 하는데, 1케브(KeV)의 에너지를 지닌 입자는 물질표면의 원자를 낱개로 분리해 박막가공에 쓰인다. 10케브 정도 되면 물질 표면에 원하는 원자를 투여할 수 있다. 면도날의 쇠 속에 질소를 심어넣어 날만 강하게 만드는 등의 표면 개질이나 반도체 도핑에 쓰인다. 1~100메브(MeV)의 입자는 조사되는 물질의 원자핵과 반응해 새로운 원소를 생성한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하는 데 쓸 수 있는 것이 이 범위다. 10게브(GeV)급은 무거운 원자핵을 쪼개 가벼운 원자를 만드는 데, 100게브 이상급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처럼 원자핵 속의 양성자나 중성자를 쪼개 소립자를 생성하는 데 쓰인다.

원자력의학원은 13메브급인 ‘키람스(KIRAMS)-13’을 개발해 서울대 등 전국 8개 기관에 보급했지만 키람스-13은 액체나 기체 상태의 동위원소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펫에 쓰이는 동위원소 가운데 반감기가 가장 긴 불소 동위원소(F-18)조차 110분밖에 되지 않는다. 펫으로 뇌를 진단할 때 쓰는 탄소 동위원소(C-11)는 20분에 불과하다. RFT-30으로는 반감기가 1년이나 되는 금속성 동위원소 저마늄(Ge·게르마늄)-68 등을 생산할 수 있다.

허민구 책임연구원은 “3년 전부터 금속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의료진단용 동위원소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 장치가 완성되면 많은 의료기관에서 가속기 없이 안정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위원소 발생 장치는 금속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생기는 딸핵종을 이용하는, 전자레인지 정도 크기의 작은 장치로 지금은 3000만원 하는 외국 제품을 수입해 쓰고 있다. 저마늄을 필터에 묻혀놓고 염산용액을 통과시키면 저마늄은 남겨두고 갈륨(Ga)으로 바뀐 것만 달고 나온다. 이 용액을 화학처리해 필요한 의약품 행태로 만드는 원리다. 저마늄-68의 딸핵종으로는 갈륨-68이 나오는데 반감기가 60분에 불과한 이 동위원소는 뇌 및 심혈관질환 등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단일광자 단층촬영’(SPECT·스펙트)에 사용된다.

첨단방사선연구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킨스)으로부터 RFT-30을 1년 동안 연구용 목적으로 인허가를 받은 상태다. 내년에는 동위원소 판매 인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동위원소 생산에 나서는 한편 동위원소 생산 전문기업을 유치해 기술을 이전할 계획이다. 또 펫이나 스펙트의 핵심기술인 방사선 센서 소재와 센서 기술을 확보해 현재 전량 수입하고 있는 의료용 방사선 영상기기를 내년까지는 완전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RFT-30의 가동이 갖는 또다른 의미는 중성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RFT-30을 실질적으로 설계·제작한 채종서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전자전기전공 및 자연과학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원자로에서 만드는 중성자는 에너지가 수메브 이하인 데 비해 RFT-30으로는 28메브까지 만들 수 있다. 중성자는 방사광과 마찬가지로 물질 내부 탐색에 사용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불모지대인 고속 중성자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 중성자는 한국형핵융합연구로(K-STAR)에 들어갈 장치의 실험에 쓰일 수 있다. 향후 우라늄원자로를 대체할 토륨원자로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중이온가속기는 이온 가속장치로 70메브급 사이클로트론을 사용할 계획으로, RFT-30의 설계를 토대로 쓸 수 있다.

30메브급 가속기 기술의 확보는 세계에서 5번째이지만 제작비가 기존 장치의 절반 수준이라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돼 있는 벨기에 아이비에이(IBA)의 ‘사이클론-30’ 가격이 70억~80억원인 데 비해 RFT-30을 개발하는 데는 인건비를 포함해 38억원 정도가 들었다. 채 교수는 “사이클로트론은 발명된 지 80년이 됐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 국민소득 4만~5만달러의 나라에서는 경쟁력이 없어진 기술이기도 하다. 2만~3만달러 수준인 우리가 할 수 있고 가격경쟁력에서도 유리한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 경쟁 입찰 과정에 구매자들이 IBA의 사이클론-30을 싸게 사려 우리 RFT-30을 경쟁제품으로 이용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채 교수는 “타이 방사선연구소가 도입하는 가속기 입찰에 참여하려 준비 중인데 타이 정국 때문에 다소 늦춰지고 있다”고 했다. 채 교수팀은 RFT-30을 기반으로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크기는 30메브급보다 작으면서도 에너지는 8배 큰 230메브급의 양성자 치료기를 개발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정읍/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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