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강원도 정선 폐광을 이용해 설치한 압축공기에너지저장(CAES) 파일럿 플랜트 전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과학과 내일] 에너지 저장장치의 새로운 대안
2011년 9월15일 한국인들은 새로운 집단경험을 했다. 전쟁이나 재해, 사고로 부분 정전이 된 경우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전기가 모자라 대정전(블랙아웃) 위기가 닥치기는 건국 이래 처음이다. 지역순환 정전으로 전국이 블랙아웃에 빠지는 파국은 모면했지만 이후 모든 국민이 한여름과 한겨울 전력 소비가 정점(첨두부하)에 이르는 시기면 ‘대정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발전소를 무한으로 확장해 전기를 공급하는 것도 어렵고 자발적 에너지 소비 절약에 기대는 것도 난망이다. 대정전은 일부 지역에서 일정한 시간대에 소비전력이 공급전력보다 많아져 전압과 주파수가 떨어지고 그 여파로 전체 전력망의 전압과 주파수가 동시에 떨어지면서 전력망 관리 시스템마저 정지해버리는 사태를 말한다. 공급량도 못 늘리고 소비량도 줄이지 못한다면 전력을 저장해놓았다가 특정 시점에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는 방법을 쓰면 된다. 이를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양수발전소다. 양수발전소는 심야에 남는 전기로 물을 산꼭대기로 끌어올린 뒤 필요할 때 낙차를 이용해 발전을 한다. 현재 전국에 4700㎿ 용량의 양수발전소 7곳이 가동중으로 최대 6시간까지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변에 강이 흐르고 400m 고도에 위치해야 하는 등 입지 조건이 까다롭고 환경파괴 논란이 있어 정부는 지난해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더이상 양수발전소를 짓지 않기로 했다. 정부와 산업계에서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지만 100㎿급의 대용량 에너지를 저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압축공기에너지저장(CAES)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압축공기에너지저장 기술은 심야에 잉여전력을 이용해 땅속 암반에 공기를 압축해 저장한 뒤 주간의 첨두부하 시점에 발전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을 말한다. 류동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하공간연구실 책임연구원은 “배터리가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식인 데 비해 압축공기에너지저장은 전기에너지를 압력과 부피의 작용에 의한 기계에너지로 바꿔 축적한다. 이를 주간에 열과 함께 다시 전기에너지로 생산하는 것이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가스터빈 장치는 압축기와 연소기, 팽창기(발전기)로 구성돼 있다. 공기를 압축해 연료를 주입하며 연소시켜 발생한 가스를 팽창기로 주입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열량 곧 에너지가 100이 들어가면 압축하는 데 50~60%가 쓰이고 압축한 공기를 1400도 이상 가열하는 데 나머지 40~50%가 쓰인다. 팽창기에 주입되는 고온고압의 연소가스가 저온저압으로 바뀌면서 일을 하는데, 효율이 30~40%밖에 안 된다. 압축공기에너지저장은 앞단의 압축공기를 심야에 남는 전기로 미리 만들어 땅속에 저장하는 방식을 쓴다. 일반 가스터빈이 총열량 3㎾h를 투입해 압축하는 데 1.8㎾h를 쓰고 팽창시키는 데 1.2㎾h를 쓴 뒤 전기 1㎾h를 생산하는 데 비해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스템에서는 심야에 남는 전기 0.72㎾h로 공기를 압축해 지하공동에 저장한 뒤 발전 단계에 1.2㎾h의 천연가스만 투입한 뒤 전기 1㎾h를 생산한다. 생산효율이 80%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각각 1978년과 1991년 상업용 시설까지 가동하고 있는 기술이지만 국내에서는 지질자원연구원이 2009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지하에 압축공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암염이나 대수층, 폐가스전과 같은 시설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질구조상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질자원연구원은 지하 암반을 뚫어 인공 구조물을 암반과 일체화하는 ‘복공식 암반공동’(LRC) 방식을 적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왔다. 이 방식은 특정한 조건 없이 전력 소비지인 도심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원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고, 특히 송배전망 중간지점에도 시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강원도 정선의 한덕철광 신예미광업소 안 108m 땅속의 폐광에 118㎥와 196㎥짜리 2개의 파일럿 압축공기저장탱크를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전북 군산시 중부발전 부지 안에서 100㎿급의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실증연구를 시작한다. 암반굴착형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설로는 세계 최초다. 2018년까지 11만㎥의 저장탱크를 지어 6시간 동안 공기를 압축해 저장한 뒤 5~6시간 발전하는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류동우 책임연구원은 “전기를 생산해 소비지로 보내기 위한 송배전시설은 미래의 최대 전력에 맞춰 건설해야 해 대용량 시설을 짓느라 환경영향과 주민 피해 등 논란을 빚는다. 중간중간에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설을 구축하면 송배전시설의 용량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의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설은 핵폐기물처분장처럼 누설이 돼도 위험하지 않을뿐더러 수십~수백m 아래 지하공간은 지진에 오히려 안전하다. 이는 일본 고베 지진 때 지상시설과 달리 지하상가는 피해가 거의 없었던 데서도 증명됐다. 퇴적암·화성암·현무암 등 어떤 지질에도 공법만 달리해 적용하면 어디에든지 시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공사비의 50%가 굴착비로 들어가지만 압축공기탱크를 지상에 두려면 비용이 2배가 드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력이 있다. 지하에 그리 큰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6시간 발전하는 100㎿급 시설을 위해서는 8만5000㎥의 공간이 필요한데 300m짜리 일반도로 터널 하나면 된다.
전력수급 불균형이 부른 정전 공포
낙차 이용한 양수발전은 환경 논란
배터리는 대용량 전기 저장에 한계 효율높은 ‘압축공기저장’ 방식 주목
화석연료 사용 않고 땅속이라 안전
올해부터 군산서 실증 연구 들어가
2017년까지 한·미 합작 시험 시설 하지만 전통적인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스템에는 팽창기(발전기) 단계에 다시 화석연료를 쓴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각각 등온압축공기에너지저장(ICAES)과 단열압축공기에너지저장(ACAES) 연구를 하고 있다. 공기를 대기압의 50배로 압축하면 온도가 600도까지 올라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압축률을 높이면서 그때마다 공기를 냉각시키는데, 단열 방식은 이를 한꺼번에 압축하면서 발생한 열을 따로 보관해 열원으로 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새로운 압축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고온저장 개발용 기자재를 확보해야 하는 난관이 있어 아직 프로토타입도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지질자원연구원은 기술적 대응을 하기 위해 열에너지 저장장치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등온 방식은 왕복운동으로 공기를 압축·팽창시키는 방식으로 실린더 안에 물방울이나 거품을 섞어 압축할 때는 온도 상승을 막고 팽창할 때는 온도의 급강하 현상을 완화한다. 신재생에너지의 안정적인 송전을 위한 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의 경우 바람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이 고르지 않아 주파수 안정화를 위한 전기 저장장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풍력단지는 동부와 서부 해안과 오대호 근처에 집중돼 있는 반면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설을 짓기 쉬운 암염층은 주로 남부의 텍사스나 앨라배마주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지질자원연구원과 중부발전, 미국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업체인 서스테인엑스는 올해 6월부터 2017년까지 1.65㎿급의 등온압축공기에너지저장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예정이다. 류동우 책임연구원은 “미국에서는 파이프를 박아 압축공기를 저장하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한국의 건설기술 및 기자재 제조기술과 결합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자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관련 한·미 공동연구팀은 최근 제주도 한림읍의 20㎿급 풍력단지 건설 허가가 남에 따라 이곳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린아일랜드’를 추구하는 제주도는 풍력단지 건설의 10%를 에너지 저장시설에 투여하도록 조례로 정해놓았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스템을 이용한 전력 생산 시설 조감도.
낙차 이용한 양수발전은 환경 논란
배터리는 대용량 전기 저장에 한계 효율높은 ‘압축공기저장’ 방식 주목
화석연료 사용 않고 땅속이라 안전
올해부터 군산서 실증 연구 들어가
2017년까지 한·미 합작 시험 시설 하지만 전통적인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스템에는 팽창기(발전기) 단계에 다시 화석연료를 쓴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각각 등온압축공기에너지저장(ICAES)과 단열압축공기에너지저장(ACAES) 연구를 하고 있다. 공기를 대기압의 50배로 압축하면 온도가 600도까지 올라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압축률을 높이면서 그때마다 공기를 냉각시키는데, 단열 방식은 이를 한꺼번에 압축하면서 발생한 열을 따로 보관해 열원으로 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새로운 압축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고온저장 개발용 기자재를 확보해야 하는 난관이 있어 아직 프로토타입도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지질자원연구원은 기술적 대응을 하기 위해 열에너지 저장장치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등온 방식은 왕복운동으로 공기를 압축·팽창시키는 방식으로 실린더 안에 물방울이나 거품을 섞어 압축할 때는 온도 상승을 막고 팽창할 때는 온도의 급강하 현상을 완화한다. 신재생에너지의 안정적인 송전을 위한 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의 경우 바람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이 고르지 않아 주파수 안정화를 위한 전기 저장장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풍력단지는 동부와 서부 해안과 오대호 근처에 집중돼 있는 반면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시설을 짓기 쉬운 암염층은 주로 남부의 텍사스나 앨라배마주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지질자원연구원과 중부발전, 미국 압축공기에너지저장 업체인 서스테인엑스는 올해 6월부터 2017년까지 1.65㎿급의 등온압축공기에너지저장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예정이다. 류동우 책임연구원은 “미국에서는 파이프를 박아 압축공기를 저장하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한국의 건설기술 및 기자재 제조기술과 결합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자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관련 한·미 공동연구팀은 최근 제주도 한림읍의 20㎿급 풍력단지 건설 허가가 남에 따라 이곳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린아일랜드’를 추구하는 제주도는 풍력단지 건설의 10%를 에너지 저장시설에 투여하도록 조례로 정해놓았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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