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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그래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을 꿈꾼다

등록 2014-03-25 19:18수정 2014-03-25 21:08

‘과학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여길까’를 표현한 그림 일부. http://sotak.info/sci.jpg
‘과학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여길까’를 표현한 그림 일부. http://sotak.info/sci.jpg
살며 연구하며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러 이곳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온 지도 어언 여섯 달이다. 외국에서 홀로 살다 보니 외롭기도 하지만 다른 연구문화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낫기도 하다. 바쁘게 살지만 더 나은 다음 걸음을 위해선 휴식도 필요한 법. 운 좋게도 집 근처에는 헝가리 국립 오페라극장이 있고, 한국보다 낮은 물가를 고려해도 공연 관람료는 상당히 싼 편이다. 스트레스도 풀고 문화생활의 호사도 누릴 겸, 주말에 오페라극장을 찾아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주인공들의 발레 테크닉은 단연 돋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대 뒤편의 엑스트라들에 자꾸 눈길이 갔다. 주인공들이 전개하는 사건을 계단이나 발코니에서 지켜보는 이들이었는데, 따로 춤을 추지도 않았고 큰 동작도 없었다. 다만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춰 놀라는 표정을 짓거나 손가락으로 주인공들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떠는 정도였다. 보잘것없는 역처럼 보였지만 눈짓, 몸짓, 손짓은 분명 무대를 더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공연에서 본 것처럼 세상의 많은 무대는 소수 주인공과 그들을 빛내주는 조연들, 그리고 무대장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작은 역할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주연만 있는 무대는 없잖은가.

물리학을 한다는 것, 연구를 한다는 것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 학계를 이끌어가는 대가도 있지만, 대가를 뒤따라가는 학자도 있고 그들이 성큼성큼 나아간 길의 주변을 꾸미거나 보수하는 정도의 성과를 남기는 학자도 많다. 게다가 학문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다. 이렇듯 복잡한 층위 속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고서 살며 연구한다는 것은 쉽잖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터넷에 유행하던 시각물(그림)이 하나 있다. 그림이 보여주듯이 학문의 길에 처음 발을 내딛는 물리학 학부생은 아인슈타인을 꿈꾸며 공부를 시작하곤 한다. 나도 중고교 시절에는 하이젠베르크나 파인먼 같은 대가가 쓴 책을 읽으며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다. 풋내기일지 모르지만 야망이 가득한 모습은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은 박사학위를 받고서 박사후연구원이 되면 자신을 ‘주야장천 일만 하는 가축’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 옛날 과학에 혁명을 일으킬 만한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던 꿈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진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주야장천 하는 일 자체를 즐길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시절부터 학계를 뒤흔들 혁명만을 꿈꾸는 것은, 엑스트라나 조연 시절 없이 주연만을 꿈꾸는 연기자 지망생과 같지 않을까?

물론 일 자체를 즐기는 데까지도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한 분야를 창시한 대가라 해도 풋내기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스스로 인정할 때 제대로 알기 위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이고, 그때에야 비로소 일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엔 아인슈타인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모습이 동경의 대상과 멀어지더라도 연구 생활을 제법 즐길 수 있으리라. 단, 지금 매달리고 있는 물리학 연구에서 계산 작업의 답이 빨리 나온다면 말이다.

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소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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