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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동물이 따로 있나…멸종하면 모두 상상 속으로

등록 2014-04-22 19:43수정 2014-04-23 10:55

전설로 전해지는 대표적인 신비동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다는 ‘빅풋’, 영국 네스 호수의 공룡 ‘네시’(이 사진은 나중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반인반어의 ‘인어’와 몽골 사막에 사는 거대 벌레 ‘몽골리안 데스 웜’의 상상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전설로 전해지는 대표적인 신비동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다는 ‘빅풋’, 영국 네스 호수의 공룡 ‘네시’(이 사진은 나중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반인반어의 ‘인어’와 몽골 사막에 사는 거대 벌레 ‘몽골리안 데스 웜’의 상상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이언스 온] ‘멸종시대’에 다시 보는 신비동물학
‘자연사’(natural history)라는 과학 분야가 있다. 자연에 있는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탐구하는 아주 오랜 전통의 학문이다. 근대 과학이 태동하면서 우리는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자연은 여전히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자연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중에는 유사과학으로 외면받는 분야도 있다. 신비동물학(cryptozoology)이 그중 하나이다. 신비동물학은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동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린이들이나 열광할 법한 인어와 유니콘을 비롯해 전설에 등장하는 빅풋, 레프리콘, 늑대인간, 그리고 이미 멸종한 공룡의 목격담에 이르기까지 신비동물학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두산 천지 괴물’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신비의 동물이었다가 발견된 동물들

자연사 이야기를 하면서 “유치하게 웬 괴물 타령인가” 할 것이다. 나 자신도 신비동물학의 신봉자가 아니므로 신비동물학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또한 신비동물학을 신랄하게 비판해 동심의 환상을 깨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신비동물학을 통해 과학으로서 자연사 연구가 무엇이고 ‘멸종의 시대’에 그 소임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사실 신비동물학이 자연사 연구와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물도 과거에는 ‘신비동물’이었던 적이 있다. 신비동물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면서 ‘약방의 감초’처럼 꺼내드는 예가 있다. 바로 원시 물고기 실러캔스이다.

이 신비스러운 동물은 계통적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물고기보다는 폐어나 양서파충류에 가깝기 때문에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이 무리는 원래 백악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193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있던 마저리 코트니래티머가 인도양의 코모로제도에서 한 어부가 잡은 물고기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러캔스를 발견해 당시 동물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다른 좋은 예로 대왕오징어를 들 수 있다. 이 거대 동물은 기원전 4세기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헌에 이미 기록했지만, 그 실체는 뱃사람 사이의 전설로 치부돼 왔다. 한동안 이 동물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증거는 주요 천적인 향유고래의 몸에 난 빨판 자국뿐이었다. 과학적 문헌을 통해 대왕오징어가 신화 속 동물에서 현생 종으로 인정받은 것은 1850년대 무렵이었다.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원시 물고기 실러캔스는 한때 상상의 동물이었다가 1938년 실제로 발견돼 동물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원시 물고기 실러캔스는 한때 상상의 동물이었다가 1938년 실제로 발견돼 동물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실증 표본 대신 흔적 표본을 찾아

신비동물학이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검증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이다. 실러캔스와 대왕오징어는 실증 표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빅풋이나 네시와 다르다. 이처럼 과학으로서 자연사 연구는 언제나 표본을 그 시작으로 한다. ‘~라더라’ 식의 목격담이나 어렴풋한 사진 몇 장으로는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부족한 증거에 의존하는 한 신비동물학은 유사과학일 수밖에 없다.

빅풋을 비롯해 인류형 신비동물을 연구하는 신비동물학자들은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보면, 전설의 인어나 늑대인간을 좇는 신비동물학자들과 분명 차이가 있다. 이들은 물리적 증거로서 실증 표본이 아닌 발자국 같은 흔적 표본에 주목한다. 수집한 발자국을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자료는 과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것은 고생물학에서 흔적화석을 바탕으로 과거 생물의 모습과 생활을 유추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최근 복간한 <신비동물학 저널>의 편집장인 칼 슈커는 “신비동물학이라고 해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에 따른다면 더 이상 유사과학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학술지는 주류 학술지와 마찬가지로 동료심사 방식으로 사전에 엄선한 신비동물 논문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일하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얼마 전 박물관의 문서창고를 정리하다가 나온 귀한 자료를 잠시 공개해 전시한 적이 있다. 그중에는 페리 터너라는 오래전 미국의 자연사 연구자가 남긴 아주 흥미로운 미발표 논문 원고가 포함돼 있었다. 그의 서류 상자를 열면 여러 편의 파일이 보이는데 ‘빅풋 산사람’(Bigfoot Mountainman)이라는 표지를 붙인 것이 단번에 눈에 띄었다.

그중 한 편은 장문의 원고답게 긴 제목을 달고 있었다. 제목을 대강 번역하면 “원시 잠자리의 포식자이며 태평양 연안 북미에 고유한 원시 인류의 신아과, 신속, 신종인 빅풋”이다. 요컨대, 미국의 ‘빅풋’ 또는 ‘새스콰치’라 불리는 신비동물을 새로운 종으로 기재하는 내용이었다. 원고를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지만, 제목이 보여주는 세부묘사를 고려할 때 이쯤 되면 신비동물학을 마냥 유사과학이라고 싸잡아 흠을 낼 수만도 없을 것 같다.

고래를 공격하는 대왕오징어의 모습을 표현하는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
고래를 공격하는 대왕오징어의 모습을 표현하는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

목격담 통한 서식지 예측…때론 순기능

신비동물학자는 과학계에서 ‘변두리 자연사 학자’일지 모르지만 일반인에게는 슈퍼스타이다. 실제로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신비동물을 좇는 사람들이 자주 소개된다. 가끔 신비동물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론의 탈을 쓴 허무맹랑한 이론을 들이대는 것만 뺀다면, 자연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순기능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신비동물학은 신비동물의 존재 근거로 “지구상에는 인류의 발길이 제한된 곳이 여전히 많이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물도 많이 있다”는 점을 든다. 이것은 사실 자연사 연구도 그 궤를 함께하는 부분이다. 신비동물을 찾기 위해 신비동물학자들은 미답의 자연을 밤낮으로 감시한다. 박물관 표본에만 의존하는 자연사 연구자들에게는 귀감이 될 만하다.

신비동물학의 또 다른 순기능은 보전생물학적 관점에서 엿볼 수 있다. 신비동물학자들은 신비동물의 서식지로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자연의 생태계를 지목한다. 그래서일까? 부탄에서는 미국의 빅풋과 유사한 전설적 동물인 예티를 보호하는 자연보호 구역이 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지만 서식지 보전을 통한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일반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신비동물이 깃대종(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중요 동식물)이 되면 또 어떤가?

2009년 저명 학술지 <생물지리학 저널>에 다소 생뚱맞은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제목이 흥미롭게도 ‘북미 서부에서 새스콰치의 분포 예측’이다. 아마도 신비동물을 주류 학술지에서 다룬 유일한 예가 아닐까 한다.

논문 저자들은 일반인의 목격담을 동물의 분포 예측 모델링에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새스콰치 또는 빅풋이라 불리는 신비동물의 사례를 통해 연구했다. 연구팀이 새스콰치의 발자국 흔적과 목격담을 바탕으로 이 동물의 분포 예측 모델을 구축해보니, 미국 흑색곰의 분포 예측 모델과 겹쳐 나타났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런 점을 들어 대부분의 새스콰치 목격담이 곰을 오인해서 생긴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논문에서 새스콰치의 존재를 증명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수소문에만 의존해야 하는 희귀 동물의 서식지 예측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신비동물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도운’ 셈이다.

손재천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연구원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실린 글을 필자가 줄이고 다듬어 다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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