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 과학

끔찍한 공포에 맞서 뇌는 두께를 늘려 싸운다

등록 2014-05-06 19:57수정 2014-05-07 16:20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는 피해자와 가족들한테 길고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던져준다. 이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며 보듬으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사진은 세월호 사고 엿새째인 4월21일 경기도  안산시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모임에서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시민들. 
 안산/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는 피해자와 가족들한테 길고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던져준다. 이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며 보듬으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사진은 세월호 사고 엿새째인 4월21일 경기도 안산시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모임에서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시민들. 안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사이언스 온] 뇌 과학으로 보는 ‘외상 후 스트레스’
4월16일 병원에서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텔레비전 속보 뉴스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들었다. 400명 넘는 탑승자들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뉴스에 놀랐고,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에 잠깐 안도했지만 오보였다는 소식에 다시 좌절했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구조된 생존자는 없고 갈수록 사망자 수만 늘어갔다.

어처구니없는 엄청난 재난 앞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향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 참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상처의 그림자를 드리울지 내다보기는 어렵다. 지난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으니, 11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남긴 상처를 돌아보며,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처하는 지혜를 찾아보도록 하자.

깊고도 긴 고통, ‘외상 후 스트레스’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들어오던 열차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미숙한 초기 대응으로 여러 인재가 겹치면서 화재는 대형 참사가 됐고 450여명 승객 중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수습이 끝난 뒤에도 상처는 계속됐다.

생존자들이 구조 뒤에 느낀 안도는 잠시뿐이었다. 이들은 신체 부상과 함께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가장 큰 고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었다. 두 달 뒤인 2003년 4월 생존한 부상자 12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0%에 달하는 64명이 이런 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비율은 보통의 경우에 나타나는 20~40%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대형 참사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었다. 심리적으로 정상인 이는 13%(17명)에 불과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자연재해나 화재, 전쟁, 사고, 폭행, 학대 같은 신체 손상이나 생명 위협의 사건을 당한 뒤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을 일컫는다. 피해자들은 사건의 공포 회상, 사건과 관련한 행동 회피, 인지와 정서의 부정적 변화, 그리고 과도한 각성을 경험하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대구지하철 화재의 생존자들은 유독가스가 가득 차고 어두웠던 참사 현장이 시시때때로 떠올라, 작은 불조차 피하고 어둡거나 밀폐된 곳에는 가지 못했다. 또한 분노, 죄책감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울분으로 힘들어했고, 마음을 집중하기 힘들고 쉽게 놀라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1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생존자들의 뇌 신경회로에선
공포 처리 과정이 작동 안했다
뇌는 위쪽 맨앞부분 두껍게 해
심리적 고통 억제에 나섰다
5년 뒤에야 뇌는 정상 회복했다

뇌 변화시킬 만큼 큰 마음의 고통
장기간 보살피고 다독여주는
사회적 지원과 도움 절실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심리적 고통은 사라졌을까? 화재 참사 뒤 1년 6개월과 2년 8개월이 지나고서 다시 생존자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두 차례의 조사에서 53명 중 37명(70%)과 37명 중 21명(57%)이 여전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심리 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족도 심각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 유족 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유족이 겪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경고’와 ‘위험’ 수준을 넘어 거의 2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 12명을 불안장애·기분장애 환자들과 비교한 다른 조사에서도, 유족들은 이들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생존자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존자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점점 지쳐갔으며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이들도 역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은 생존자의 뇌에서 5년에 걸쳐 두께 변화가 나타난 배외측 전전두엽 부분(주황색). 엄습하는 공포 기억을 극복하려는 우리 뇌의 처절한 싸움의 흔적이다. 
 출처: 류인균 교수 논문(2011)
대구지하철 참사 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은 생존자의 뇌에서 5년에 걸쳐 두께 변화가 나타난 배외측 전전두엽 부분(주황색). 엄습하는 공포 기억을 극복하려는 우리 뇌의 처절한 싸움의 흔적이다. 출처: 류인균 교수 논문(2011)
기억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뇌의 노력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 이들은 시간이 흘러 참사 당시의 상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주변에서 가족이 든든하게 지켜주는데도 불안을 느끼곤 한다. 가장 힘든 것은 당시의 공포스러운 기억이 시도 때도 없이 되살아나 찾아온다는 점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사람은 위험에 노출되면 뇌의 공포 회로가 활성화하면서 불안을 느끼는데, 이때 뇌의 다른 영역들이 공포 회로를 억제하면 마음은 다시 편한 상태를 회복해간다.

그런데 대구지하철 화재의 생존자들에선 뇌의 공포 처리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류인균 당시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그 이유는 뇌에서 과도하게 활성화한 공포 회로를 조절하는 신경회로의 이상 때문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전두엽 한가운데에 있는 전측 대상회 영역의 백질에서 구조적인 특징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신경세포를 서로 이어주는 신경섬유망 구실을 하는 백질의 이상이 클수록 생존자들은 더 자주 화재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뇌 영상 연구를 통해 확인되듯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막연한 불편함이 아니라 실재하는 고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 참사의 피해자를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막연하게 심리적 어려움이 나아지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의 조처가 필요하다.

엄습하는 공포의 기억에 맞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뇌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5년 동안 생존자들의 뇌 영상을 추적 조사한 류 교수 연구팀의 2011년 연구 결과를 보면, 초기에는 이들의 뇌에서 배외측 전전두엽의 영역이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더 두꺼워져 있었다. 뇌의 맨 앞부분 바깥쪽의 상단에 있는 이 영역은 두께가 두꺼울수록 생존자는 심리적 고통에서 더 빠르게 벗어나고 있었고, 5년 뒤에는 이곳의 두께가 거의 평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런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배외측 전전두엽은 부정적인 기억을 다시 평가하면서 불쾌한 기억은 억제함으로써 우리의 인지과정에서 나쁜 감정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기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존자의 뇌에서 이 영역이 두꺼워진 이유는 화재의 끔찍한 기억이 과도하게 활성화시킨 공포 회로를 억제하고 조정하느라 이 영역이 크게 노력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뇌의 두께를 변화시킬 만큼 이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은 컸던 것이다. 그러다가 생존자들이 심리적 외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이 영역도 점차 얇아지다가 원래 상태의 두께로 돌아갔다.

지금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것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처럼 인재의 성격이 강해 피하거나 줄일 수 있었던 참사였기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석연찮은 초동 대응과 구조 과정으로 인해 희생자뿐 아니라 가족과 친지, 친구, 그리고 지역사회 구성원까지 우울, 불안, 분노, 공포, 수치심, 죄책감, 무력감 같은 여러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감정 반응은 엄청난 재난 뒤에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지만, 일부에서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종자 수색 활동이 끝나지 않은 마당에 생존자와 유족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염려하는 것은 성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구지하철 참사 그 이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심각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하며 보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진행되는 피해자들의 심리 건강에 대한 지원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하는 정책적 배려와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사고 원인의 정확한 규명과 함께 상처 입은 마음을 서로 다독이는 사회적 노력도 이뤄져야 하겠다.

최강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실린 글을 필자가 줄이고 다듬어 다시 썼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1.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2.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3.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4.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5.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