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쓰기 전에 동료들과 많은 토의를 하기도 한다.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하며 칠판에 가득히 적은 수식들. 김민규 제공
살며 연구하며
정보량은 급격히 늘었지만 신뢰하기 힘든 정보도 함께 늘어난 정보화 시대에, 과연 올바른 정보란 무엇일까? 과학 현장에서도 정보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연구자는 과학 연구논문을 대할 때 일단 신중함을 유지한다. 연구논문에 담긴 계산 결과나 실험 과정이 늘 완전무결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신중하다면 연구 활동은 답보 상태에 빠질 것이다. 언론의 과학 뉴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곡이나 오류를 될수록 피하면서 현재 시점에서 생동감 있는 지식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학 논문이나 언론 뉴스에서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과학 대가들은 논문에서 원대한 주장을 펼 때엔 그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후속 연구 방향도 함께 제시하는데, 그래야 다른 연구자들이 그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할 수 있다. 요즘엔 정식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출판 전 논문’(프리프린트)이라는 형식으로 온라인에 먼저 공개하기도 하는데, 그 덕분에 많은 연구자들이 빠르게 새 연구 결과를 검증하는 후속 확인 작업을 벌일 수 있다.
과학에서도 정보의 층위는 다양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과학책도 있고 전문가 동료심사를 거쳐 지식의 최전선에 나오는 연구논문도 있다. 과학 논문은 갓 태어난 과학 지식으로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어찌 보면 ‘날것 그대로의 지식’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나중에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와 폐기될 수도 있고, 거꾸로 더 많은 후속 연구를 낳으면서 가치가 높아져 빛나는 업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첫 연구논문을 쓰던 때였다. 당시에 주목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예측 가설을 하나 제시한 적이 있다. 수학적으로 얻어져 물리학적 해석은 아직 명백하지 않았지만 첫 논문인지라 나름 애착을 두던 아이디어였다. 판정은 2년 뒤 다른 그룹의 후속 연구에서 나왔다. 후속 연구자들은 내가 제시한 가설이 특별한 상황에만 들어맞는 우연의 일치였다고 발표했다.
그 연구진의 논문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아쉬운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들의 분석이 올바름을 깨달았기에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으로 보면, 전문가 동료심사를 거쳐 정식 학술지에 실린 논문도 사실 방법과 논리, 결과가 올바름을 검증받은 것이지, 그 결과의 해석과 의미, 영향까지 모두 다 확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구를 거듭할수록, 논문에 실린 문장이 모두 다 몇 십 년 동안 검증된 지식처럼 지나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더러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과학자 사회에서 연구논문이 많아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수많은 실험과 이론이 상호작용하며 버려질 것은 버려지고 남을 것은 남으면서, 더 나은 지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과학자 사회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에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쓰고 있는 나의 논문이 어디에선가 출판된다면 이 결과도 역시 작건 크건 새로운 과학 지식이 될 것이다. 연구 현장의 과학 지식은 현재 진행 중인 살아 있는 것이기에 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적어도 올바른 정보를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소 연구원(이론물리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